68분 동안 탄핵심판 최후 진술
'계엄, 대국민호소용' 재차 강조
"임기 연연 안해"…개헌 등 약속
여론 지형 유리하게 가져가겠단 포석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최후 진술에서 12·3 비상계엄은 야당의 횡포를 알리기 위한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 통합 의지를 드러내며 직무 복귀 시 개헌과 정치개혁에 나서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탄핵 인용 및 조기 대선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던진 정치적 승부수로 해석된다. 다만 헌재가 어떤 판결을 내리든 승복하겠다는 메시지는 부재해 "아쉽다"는 평가가 정치권 안팎에서 나왔다.
윤 대통령은 25일 서울 종로구 헌재에서 열린 자신의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1만9000여자 분량의 최후 진술문을 68분 동안 읽어내려갔다.
윤 대통령은 "거대 야당은 제가 취임하기도 전부터 대통령 선제 탄핵을 주장했고, 줄탄핵·입법 폭주·예산 폭거로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켜 왔다"며 "12·3 비상계엄 선포는 주권자인 국민들께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리고, 국민들께서 매서운 감시와 비판으로 이들을 멈춰달라고 호소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또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잔여 임기에 연연해하지 않고 개헌과 정치개혁을 마지막 사명으로 생각하여 87(년) 체제 개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국민의 뜻을 모아 조속히 개헌을 추진해 우리 사회 변화에 잘 맞는 헌법과 정치구조를 탄생시키는 데 신명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정치권에 거론되어 온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다.
윤 대통령의 개헌 승부수와 관련해 여권 일각에선 헌재 재판은 여론 재판 성격이 짙은 만큼, '윤석열 대통령도 싫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싫다'는 국민을 끌어안아 여론 지형을 유리하게 가져가겠다는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어 "개헌과 정치개혁 과정에서 국민 통합을 이루는 데도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결국 국민 통합은 헌법과 헌법가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만큼, 개헌과 정치개혁이 올바르게 추진되면 그 과정에서 갈라지고 분열된 국민들이 통합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국정 업무와 관련해선 "대통령은 대외관계에 치중하고 국내 문제는 총리에게 권한을 대폭 넘길 생각"이라며 '책임총리제'를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국민들을 향해선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계엄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불편을 끼쳐드린 점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특히 윤 대통령은 "저의 진심을 이해해주는 우리 청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청년 지지층을 향해선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저의 구속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년들도 있다"며 "옳고 그름에 앞서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에 대한 반발의 의미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해 구속·기소된 청년 지지자들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계엄 사태로 구속된 장성 등 공직자에 대해서 선처 부탁은 없었지만 "내란 몰이 공작에 의해 지금 고초를 겪고 있는 것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다만 윤 대통령은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승복하겠다는 언급은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탄핵심판 최후 진술에 나섰지만, 정치권의 평가는 엇갈렸다.
신동욱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국가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으로서 고뇌에 찬 결단을 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다시 한 번 국민 앞에 진솔하게 변론했다"고 평가했고,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내란 수괴 윤석열은 마지막까지 파렴치한 거짓말과 억지 주장으로 탄핵 심판정을 더럽혔고, 개헌·선거제 운운하며 복귀 구상을 밝힌 대목은 섬뜩하기까지 하다"고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탄핵 찬성·반대 집회로 심화되고 있는 국론 분열에 대한 우려와 진심 어린 국민 통합 메시지,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 메시지 등이 부재해 아쉽다"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계엄 사태에 대한 진솔한 대국민사과, 계엄 연루 공직자들에 대한 선처 요청, 국민 화합, 헌재 판단 승복 메시지 등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개헌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선 "(지난해 12월 7일 탄핵소추 의결 전) 자신의 임기를 포함해 앞으로 정국 방안은 당에 일임하겠다고 했을 때 개헌 승부수를 던졌어야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