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사태 이후 각종 경제지표 악화
일 저지른 보수는 책임감 無…수습도 나 몰라라
트럼프 취임식서 "야당의 내란 선동 고자질" 하겠다니...
새해 경제지표가 극악으로 치닫고 있다. 원화 가치는 추락해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을 위협하고 있고, 가뜩이나 2%대가 무너지며 충격을 안겨줬던 경제성장률 예측치는 한층 더 낮은 1%대 중반까지 하향 조정되는 분위기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득세로 이미 비관적이었던 한국의 경제지표는 지난해 12월 3일을 기점으로 더욱 악화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있었던 날이다.
한국은행은 계엄 사태가 원/달러 환율을 30원 추가 상승시킨 것으로 추산했다. 한은은 또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9%에서 1.6~1.7%로 하향 조정하면서 계엄 사태로 촉발된 정치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경제 심리 위축이 올해 성장률을 0.2%포인트 하락시킬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 체감경기도 바닥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집계한 올해 1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는 전분기 대비 24포인트 하락한 ‘61’로 나타났다. BSI가 100 이하면 해당 분기의 경기를 이전 분기보다 부정적으로 본 기업이 많다는 의미다. 61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됐던 2020년 4분기 이후 최악의 수치다.
대한상의는 당초 올해 1분기 BSI를 72로 집계했었다. 지난해 11월 19일부터 12월 2일까지 조사한 전망치였다. 하지만 계엄 사태로 상황이 급변함에 따라 올해 1월 6일부터 15일까지 2차 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11포인트 추가 하락한 61이라는 수치가 나온 것이다.
계엄 선포의 당사자인 윤석열 대통령과 그를 비호하는 여당의 주류 세력은 부정선거를 밝혀내고 종북‧반국가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계엄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보수 정권이 정치적, 이념적 이유로 경제를 이 정도까지 뒤집어놓았다는 게 충격적이다.
보수의 가치는 ‘안정’이며 ‘결과에 대한 책임’에 있다. ‘이게 옳다고 생각되니 뒷일이 어떻게 되든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진보의 소아병적 무책임함과 차별화되는 가치다. 이는 정치‧경제적 안정을 추구하는 전통적 보수 세력의 요구이자 양극단 정치세력의 극성맞음을 혐오하는 중도층을 끌어안을 원동력이기도 하다.
나라 곳간이 비든 말든 탈탈 털어 돈을 뿌리고,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 기업의 배를 갈라 나눠먹자는 진보의 폭주를 저지하며 경제를 지켜왔던 게 보수다.
낡고 불합리한 관행조차 바꾸지 않으려는 고리타분함으로 욕을 먹을지언정 최소한 이념적 충동으로 민생을 뒤흔들어놓는 무책임한 짓은 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보수에게는 있었다.
계엄 사태는 이 믿음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경제가 이 정도로 망가질 것이라는 걸 모르고 저지른 무지의 소산이었든, 그걸 알고도 저지른 무책임의 소산이었든 보수의 가치는 무너졌다.
계엄 사태 이후의 수습 과정은 어떠한가. 구심점을 잃고 허둥대는 정부야 그렇다 쳐도 여당의 경제에 대한 무책임은 한숨을 자아내게 만든다.
줄탄핵 사태로 정부의 외교통상 기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하면서 우리는 전 세계적 이벤트인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기업인들과 경제단체장들이 나서 해외 협력 라인과 개인 인맥을 총 동원해 “한국의 경제시스템이 정상 작동하고 있다”고 해명하고 나서는 형편이다.
이 와중에 여당 정치인들이 한다는 행동이 트럼프 취임식에 가서 야당의 내란 선동을 고자질하겠다는 유치한 수준이다. 그들이 취임식장에는 들어가지도 못한 채 인근 체육관에서 영상으로 시청하고 돌아왔다는 걸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는 게 안타깝다.
지금 보수 정치인들의 행보가 보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것인지, 집단적 이익을 지키기에 급급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무조건 우리 편의 잘못이 없다며 경제야 망가지건 말건 패싸움에만 몰두하는 두 진영의 모습에 국민들은 가슴이 철렁하다.
차 안에서 싸움이 붙으면 운전자를 발로 차는 한이 있더라도 이기려고 하는 게 진보고, 두들겨 맞으면서도 사고로 다 같이 죽을 수는 없다며 운전대를 붙잡고 있는 게 보수 아니었던가. 지금의 보수는 운전하다 대형 사고를 낸 주제에 사고 수습은 제쳐 놓고 싸움에 몰두하고 있다. 이런 모습의 보수는 처음이라 몹시 당황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