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권성동 등 잇따르는 정치인들과의 만남
추경 필요성에 최상목 지지 등 업무 벗어난 발언
영향력 입증 속 중립성 필요 지적…정치인 변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잇따라 정치인들과 만남을 갖고 정치적 발언을 이어가면서 엄정한 중립성이 요구되는 한국은행에 정치색이 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만큼 이 총재가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는 현 정국에서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란 방증이라는 시각과 함께 일각에서는 이 총재가 향후 정치에 발을 들이기 위한 행보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창용 총재가 최근 우원식 국회의장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잇따라 만남을 가지면서 최근 그의 정치적 발언과 맞물려 행보에 더욱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 총재는 전날 오후 서울시 중구 한국은행에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만나 면담을 가졌다.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는 국내 경기와 금융시장 동향, 대내외 경제 환경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최근 이 총재가 필요성을 언급한 추경에 대한 대화도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날 방문에 동행한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은 면담 후 이어진 백브리핑에서 “이 총재가 추경에 대한 계획이 가시화돼야 대외신인도에 좋다고 말했다”며 “이 총재가 ‘추경을 가급적 빨리 해야한다’고 말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늘 듣기로는 대외에 알려진 바와 간극이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가 정치권과 만남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총재는 지난해 12월 19일 우원식 국회의장과 만나 비상계엄 이후의 금융시장 불안에 대한 논의를 했다. 계엄령 사태 이후로 원·달러 환율이 치솟자 우 의장은 이 총재에서 금융시장 안정화를 당부했다. 현직 국회의장이 한은을 찾아 총재와 만난 건 처음이다.
이 총재와 정치인들과의 만남이 잇따르자 엄정한 중립성을 준수해야 하는 한은에 정치적인 색깔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은은 정부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으로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인 만큼 정치적 개입을 최소화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은 측은 이 총재와 정치인들과의 만남은 국회 측에서 일정 통보를 받아 이뤄지는 외부 일정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러한 우려의 목소리는 이 총재가 그만큼 현재의 혼란스러운 정국에서 영향력을 가진 인물임이 입증됐다는 방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정치적 상황이 대내외적으로 혼란스러운 만큼 정치인들이 이 총재와의 면담에 나서는 건 정치권이 이 총재에 우호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의 행보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최근 그의 발언들 때문이기도 하다. 이 총재는 지난 16일 개최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 밑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당연히 추경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중앙은행 총재가 기획재정부의 소관 사항인 추경에 대한 언급을 한 것은 이례적인 상황이어서 그의 발언은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보다 앞서 이뤄진 이 총재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 지지 발언 역시 의외였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이 총재는 지난 3일 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을 공개 지지하고 이에 반발했던 국무위원들을 향해 “고민 좀 하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고 일갈했다.
당시 그는 “정치적 위험은 신용등급에 영향을 주는데 신용등급은 한 번 내려가면 다시 올리기 굉장히 어렵다”며 “최 대행의 결정으로 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고 우리나라를 위해 최 대행을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이 발언에 대해 정치적 메시지가 아니라 경제적 메시지라고 해명했지만 정치 권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발언은 굉장히 예외적이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일각에서는 이 총재의 이러한 행보가 앞으로 정치권으로의 입성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다소 섣부른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경제전문가 출신인 이 총재는 향후 국무총리 유력 후보로도 꼽히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창용 총재는 글로벌 감각도 있고 외국에서도 인정하는 인물이라는 평가가 많다”면서도 “이번 추경 관련 사안에 대해서도 한은 총재가 구체적인 규모까지 제시한 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근 발언과 만남들로 인해 향후 그의 행보가 더욱 주목 받을 수 밖에 없게 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