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대국민호소문
체포 정국서 나름의 해법 제시했단 해석
"제3장소 조사·방문조사 등 모두 검토"
"尹, 고성낙일"…지지층 결집 전략 분석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이르면 15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한 가운데,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통령에 대한 제3의 장소에서의 조사 또는 방문조사 등을 모두 검토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대국민호소문을 발표했다.
대통령경호처가 동요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수처와 경찰의 영장 집행을 끝까지 저지하기 쉽지 않고,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타협점을 찾겠다는 의지를 밝힌 동시에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는 분석이다. 또 윤 대통령의 현재 상황을 '고성낙일'(孤城落日·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사정)이라고 빗대는 등 절절한 호소를 통한 지지층 결집도 유도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진석 실장은 14일 오전 6시 11분께 발표한 대국민호소문을 통해 "대통령실은 경찰 공수처와 협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중지되었다 해도 여전히 국가원수이자 최고 헌법기관인 윤 대통령을 마치 남미의 마약 갱단 다루듯 몰아붙이고 있다"며 "언제든 성벽을 허물고 한남동 관저에 고립돼 있는 윤 대통령에게 수갑을 채워 끌고 나가려고 한다. 경찰과 공수처는 마약범죄 수사대원들까지 동원한다고 한다"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에게 특례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자기 방어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어 "우리 헌법은 모든 형사 피의자가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한다고 천명하고 있고, 형사소송법은 모든 피의자가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받는 것을 원칙으로 명시하고 있다"며 "사실을 호도하는 정파적 선동, 수사기관의 폭압으로, 자연인 윤석열의 입을 틀어 막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 "야당의 유력 정치인은 이런 사법 체계를 교묘히 이용해서 재판을 한없이 지연시키고 있다.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고, 사법 처리를 모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정조준한 것이다.
정 실장은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을 겨냥하기도 했다. 정 실장은 "이른바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에 연루된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1년이 넘도록 소환에 불응하고 있다. 수사기관들은 그 의원들에게 무슨 조치를 했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왜 윤 대통령만 우리의 사법체계 밖으로 추방돼야 하느냐. 무죄 추정의 원칙,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윤 대통령에게만 적용되지 않아야 할 무슨 이유가 있느냐"며 "지금 경찰과 공수처는 대통령을 향해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순순히 무릎 꿇고 오랏줄을 받아라'라고 외치고 있다. 국민 여러분께서 판단해달라"고 했다.
정 실장은 윤 대통령의 현재의 상황과 관련해 "지금 윤 대통령의 처지는 고성낙일"이라며 "외딴 성에 해가 기울고 있다. 도와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정 실장은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경찰 병력과 경호처 경호원 사이의 충돌 가능성"이라며 "지금 이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행정부의 수반을 맡고 있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뿐이다. 경찰과 경호처는 행정부의 수반인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지침과 지휘를 따라야 한다"고 했다.
최 대행은 전날(14일) "모든 법 집행은 평화적이고 절제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관계기관 간에 폭력적 수단과 방법을 사용하는 일만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정 실장은 이날 대국민호소문을 발표하기 전 윤 대통령이나 변호인단과 사전에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이날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첫 변론기일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이 제3의 장소에서 조사할 수 있다'는 정 실장의 언급에 대해 "저희들과 상의가 없던 부분"이라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날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정 실장의 대국민호소문은 현재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며 "나름대로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한 것 같다"고 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계속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대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권 관계자는 "정 실장 명의로 대국민호소문이 나왔지만, 사실상 윤 대통령의 말씀이라고 봐야 한다"며 "타협점을 찾아서 조사를 받겠다는 의지를 이렇게 피력했는데, 공수처와 경찰이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강행한다면, 상당한 역풍이 불 것"이라고 했다.
한편 공수처·경찰·경호처는 이날 3자 회동을 1시간가량 했지만 2차 체포영장 집행 관련 입장차는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3자 회동은 경찰의 제안 공문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경찰은 "경호처에 안전하고 평화적 영장 집행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경호처는 이날 오후 입장문을 통해 "대통령 관저를 포함한 특정경비지구는 경호구역이자 국가보안시설, 국가중요시설,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출입을 위해서는 반드시 책임자의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며 "사전 승인 없이 강제로 출입하는 것은 위법한 것으로 이후 불법적인 집행에 대해서는 관련 법률에 따라 적법한 경호업무 매뉴얼대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체포영장 집행 시 어떠한 경우에도 물리적 충돌을 막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