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국이 싫어서’,
영어 타이틀 ‘BECAUSE I HATE KOREA’
한국이 싫어서 뉴질랜드로 떠난 주계나 이야기
우리 사회 속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재기발랄 작품
지난 8월 개봉하고 11월 말 여러 OTT(Over The Top, 인터넷TV)에 공개된 영화 ‘한국이 싫어서’(감독 장건재, 제작 모쿠슈라, 배급 ㈜디스테이션)가 화제다. 넷플릭스 기준, 연일 인기 영화 3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될 만큼 탄탄한 매무새, 이 시대 청년들의 좌절과 희망을 사실적으로 조명한 주제 의식, 제작 규모와 상관없이 작품성 좋은 영화를 올곧게 택하는 배우 고아성의 담담한 연기, 외국인 단역까지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한 연기 등 ‘한국이 싫어서’를 관람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지위나 나이 가릴 것 같이 내가 살아가는 세상, 살아남고 싶은 이 사회에서 실패든 좌절이든 분노든 고독감을 느껴본 이라면 큰 공감 속에 볼 수 있는 영화, ‘한국이 싫어서’이다.
주계나(고아성 분)는 출근하기 싫어 울면서 출근한다. 단지 집이 인천이라 마을버스 타고, 지하철 1호선 타고 2호선 타고 2시간을 시달려 회사에 도착할 때쯤 되면 진이 다 빠져서가 아니다. 말만 공개 입찰일 뿐 공정하게 평가한 결과대로 업체가 정해지는 게 아니라 민 과장(김태한 분)이 원하는 업체가 선정되어야 하는데 그 ‘점수 조작’은 계나의 몫이다. 일하는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사표를 내려 해도 갑자기 회사를 그만둔 부하 직원의 존재가 자신의 인사 고과 하락을 부를 것을 막으려는 과장의 막무가내 만류와 회유에 부닥친다.
대학교 과 동기였던 남자친구 지명(김우겸 분)에게 하소연하지만, 기자 시험 준비하는 ‘취준생’ 남친은 계나를 힘들게 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지 알 생각이 없는지 취업만 하면 그동안 받은 거 다 갚겠다며 다감한 잠자리와 얼렁뚱땅 프러포즈로 ‘인내’를 조언한다.
학자금 대출 다 갚고, 남친의 취직으로 ‘취준생’ 뒷바라지도 끝이 보여 이제 내가 해보고 싶던 걸 하겠다는데 남자친구는 상견례부터 추진하고. 상견례 자리에서 계나는 부모가 가난해서 회 맛도 모르는, ‘너’를 배려해 ‘우리’가 가는 청담동을 피했더니 음식 맛이 별로라는, 동정과 무시의 시선을 받는다.
뭐 하나 내 뜻대로 되는 것도 없고 뭐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한국이 싫어서’ 계나는 뉴질랜드로 향한다.
거기라고 천국일까마는. 모든 것에 급과 순위가 매겨져 서열화된 나라, 죽을 때까지 일만 하는 사람들, 김정은과 북핵 그리고 남한과 관계된 미국(트럼프)의 전략 등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한국과 한국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관한 생각들을 접하며 ‘주계나의 좌표’를 탐색하는 글로벌 관점을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그 탐색은 적어도, 나를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표현하고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해 사회나 부모가 정해주는 답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가는 여정을 겪는다. 교수와 버스 기사의 밥벌이에 차이가 적은 낯선 땅, 열린 기회만큼 생존을 위한 고된 노동과 위험도 공존하지만 계나는 회계학을 전공해 졸업을 앞둔다.
그리고 전해진 비보, 갑작스레 한국에 돌아온 계나. 계나는 가족과 지인이 있는 한국에서 다시 길을 찾게 될까, 동고동락하며 마음을 나누게 된 재인(주종혁 분)을 비롯해 ‘친구’가 있는 뉴질랜드로 돌아가 취업하고 영주권을 신청하게 될까.
많은 것을 얘기한 것 같지만 실은 아무것도 보여드린 게 없다. 독립 예술영화 ‘한국이 싫어서’의 에피소드들은 너무나 생동감 있게 구체적이고 대사 등의 표현이 현실감 넘치는 터라 직접 느껴보시길 추천한다.
그냥 스쳐 가는 장면인 듯해도 전체 구성에서 촘촘히 연결돼 있고 서로를 받치며 의미를 생성하고 있다. 유학이나 이민 등의 계획이 전혀 없어도 내 이야기로 받아들여 되짚어보고 답을 생각하게 하는 인생의 화두들이 곳곳에 밤하늘의 별처럼 박혀 있다.
특히 24시간 영업하는 한국의 버거 가게에서 나누는 이야기, ‘행복의 과대 포장’은 머리를 띵하게 만드는 명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