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우 감독 연출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남쪽으로 가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정했다"
어떤 사연인진 모르겠지만 자전거를 타고 추운 날씨에 여행하는 구병. 결국 추위와 체력적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군산에서 자전거를 팔고 기차로 교통 수단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자전거 가게 고물상에 5000원에 팔라는 말만 듣고 거절 당한다.
자전거 가게에 있던 노인 조송(문창길 분)은 구병에게 자전거를 사줄테니 자신의 집에 가서 밥 한 끼 먹고 가라고 제안한다. 조송은 집에 가는 길에 만난 동네 사람들에게 구병을 자신의 아들이라고 소개 한다. 이해가 되지 않지만 구병은 노인의 장단에 맞춘다.
따뜻한 밥 한끼, 소주 한 잔을 하며 조송은 과거 뱃일을 하며 고래를 맨손으로 때려잡던 시절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자라면 칼 한 자루는 쥐고 있어야 한다며 칼과 몸에 좋은 버섯까지 선물로 건넨다. 밥을 먹고 이제 떠날 채비를 하는 구병에게 조송은 친한 이웃에게 인사를 하고 가라고 권한다. 구병은 조송이 술을 너무 많이 먹는다며 이웃들이 걱정하거나 무시를 하는 걸 목격한다.
이젠 정말 떠날 시간, 구병은 조송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한 뒤 편의점에 뛰어가 소주 세 병을 사온다. 그러면서 한 번에 다 마시지 말고 아껴먹으라는 말을 건넨다.
우연히 만난 시작된 조송과 구병의 가짜 부자놀이지만, 두 사람이 짧은 시간이 주고 받는 감정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구병과 조송의 짧고도 강렬한 교류를 통해 외로움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조송이 왜 구병에게 밥을 먹고 가라했는지, 왜 아들이라고 부르는지 이유가 나오지 않아도 고독함 때문이라는 걸 유추할 수 있다. 청년의 외로움, 노인의 고독함이 만나니 서로에게 따뜻한 온기가 된다. 각자의 고단한 일상 앞에서 꼭꼭 숨겨놨던 외로움이 타인의 말 한 마디, 손길에 이렇게도 쉽게 겨울잠에서 해제된다. 마지막 소주를 사들고 오는 구병과 얼른 패딩 주머니 속으로 넣는 조송의 모습은 주변의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과 다를게 없다. 구병과 조송의 짧은 만남은 겨울잠에서 깨어나면 봄이 온다는 신호가 된다. 러닝타임 29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