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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주재자 동의 없는 파묘, 가족이라도 유골손괴죄…도굴과 다름 없어" [디케의 눈물 320]


입력 2024.10.31 05:08 수정 2024.10.31 05:08        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대법, 유골손괴죄 무죄 판단한 2심 파기 환송…"물리적형상 함부로 변경시 감정 해치는 손괴"

법조계 "이장해도 자연적 태세 변경하지 않는 게 관행…유골서 일부 분리했기에 손괴 해당"

"제사주재자 동의 없는 파묘, '관습적 예' 갖췄다고 보기 어려워…도굴과 다름 없다고 느낄 것"

"형식적인 절차 뿐만 아니라 유족들의 감정까지 고려해 판단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판결"

ⓒ게티이미지뱅크

제사주재자 동의 없이 다른 형제가 조상의 묘를 발굴해 화장했다면 유골손괴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제사주재자 동의 없는 분묘 발굴은 사자(死者)에 대한 '관습적인 예우'를 갖췄다고 볼 수 없기에 유골손괴죄가 성립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판결의 내막에는 새롭게 변모된 가족관계, 가문 등에 대한 인식이 반영됐을 것이라며 유골손괴죄 성립 여부를 형식적인 절차 뿐만 아니라 유족들의 감정까지 고려해 판단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정모(51)씨와 장모(77)씨의 분묘발굴 유골손괴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을 지난 8일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들은 2020년 7월 천안의 한 임야에 있는 분묘를 발굴하고 유골을 추모 공원에서 화장해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해당 묘에는 정씨의 증조부모와 조부모, 삼촌 등이 매장돼 있었다. 이들은 장지를 타인에게 매도하면서 민법상 제사주재자인 사촌 형제 등 다른 자손들의 동의 없이 묘를 발굴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의 쟁점은 정씨와 장씨의 행위를 유골 손괴로 보고 처벌할 수 있는 지였다. 1심 법원은 이들의 혐의를 전부 유죄로 인정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각각 선고했다. 반면 2심 법원은 유골손괴죄는 적용할 수 없다고 보고 분묘발굴죄만 인정해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씩을 선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했다. 대법원은 "함부로 유골의 물리적 형상을 변경하는 등으로 훼손하는 것은 사자에 대한 경애·추모 등 사회적 풍속으로서의 종교적 감정 또는 종교적 평온을 해치는 손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적법한 장사의 방법인 화장 절차에 따라 유골이 안치됐다는 등 이유만으로 손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본 원심 판단은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덧붙였다.


ⓒ게티이미지뱅크

검사 출신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는 "앞선 판례에 따르면 시신이 부패해 자연적으로 분골이 된 경우라도 생전 위치와 순서를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며 "또한 이장하더라도 자연적 태세를 변경하지 않는 것이 고래(古來)의 관례이므로 유골에서 일부를 분리한다면 이는 손괴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연적 태세를 변경하는 경우에도 유골손괴라고 판단하는 입장인 만큼, 임의로 화장해서 물리적 형상을 변경했기 때문에 유죄가 인정된 것"이라며 "피고인들이 아무리 화장 절차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제사주재자 등 관련자 동의를 받지 않고 물리적 형상의 변경을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라고 덧붙였다.


곽준호 변호사(법무법인 청)는 "현행법상 유골손괴죄는 '관습적 예'를 갖출 경우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본안과 같이 제사주재자 동의 없는 납골당 이전을 두고 고인에 대한 예우를 갖췄다고 하는 것은 '사회적 풍습'에 맞지 않다"며 "유골손괴죄 성립 과정에서 '종교적, 관습적 예우'는 형식적인 게 아닌 실질적인 것이어야 한다. 제사주재자 입장에선 피고인들의 행동이 도굴과 다름 없다고 느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유골손괴죄 성립 여부를 형식적인 절차 뿐 아니라 유족들의 감정까지 고려해 실질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점에 진일보한 판결로 보인다. 대법원이 이런 판단을 내린 내막에는 새롭게 변모된 가족관계, 가문 등에 대한 인식도 반영됐을 것"이라며 "과거엔 가문의 맏아들, 즉 장손이면 가문 전체의 결정권이 있었지만 요즘엔 사촌들끼리 교류는 커녕 형제들 사이에서 상속도 인정해주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대법원은 '삼촌 쯤 되면 이젠 남의 묘로 봐야 하며 자손들의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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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우 기자 (sangwoo@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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