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삼성·LG디스플레이, 전 세계 LCD 시장 주도
후방산업인 편광필름 시장도 LG화학 등 국내기업이 선두 달려
정부 보조금 등에 업은 中에 韓기업, LCD·편광필름 사업 철수
한국은 ‘액정표시장치(LCD) 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해당 시장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지녔었다. 삼성·LG디스플레이가 만든 LCD 패널은 전 세계 어떤 브랜드의 TV에건 달려 나왔고, 그건 우리 국민들에게도 자랑이었다.
전방산업인 LCD가 잘 나가니 후방산업도 따라 고성장했다. LCD의 핵심부품 중 하나인 편광필름이 그 대표적인 예다. 편광필름은 TV, 모니터 등 가장 앞쪽에서 화면 전체를 덮고 있는 검은색 필름으로 LCD 등 디스플레이의 빛의 투과도, 반사율을 조절하는 핵심 소재다.
2010년대까지 편광필름 시장은 한국과 일본 업체가 양분해 주도했다. 특히 국내 화학기업인 LG화학이 2010년대까지 30%에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며 전 세계 편광필름 시장 1위를 달렸다. 삼성SDI도 지난해 연간 기준 전 세계 편광판 시장에서 11.4%의 시장 점유율로 3위를 했다.
그러나 이런 LCD왕국의 영광도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중국이 정부의 보조금을 등에 업고 무서운 속도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자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은 하나둘씩 철수 수순을 밟았다. 2022년 삼성디스플레이는 LCD 패널사업을 철수했다. 적자에 시달리던 LG디스플레이도 국내에서 TV용 LCD 생산을 중단하고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던 중국 광저우 공장까지 매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전방산업이 무너지자 후방산업도 흔들리고 있다. 편광필름 시장의 최강자였던 LG화학은 중국의 저가공세에 이기지 못하고 2020년에 손을 들고 중국 업체에 매각했다. SKC도 2022년 모태 사업인 필름사업을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에 넘겼다.
그리고 지난 10일 삼성SDI도 중국 업체에 편광필름 사업을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국내에서 편광필름 사업을 영위하는 대기업이 모두 사라진다는 점에서 삼성SDI의 편광필름 사업 철수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편광필름 사업에서 손을 뗀 기업들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혹은 배터리 등 다른 유망사업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LCD 시장은 OLED 시장의 급성장으로 사양길을 걷는 추세다.
결국, 어떤 산업이건 성숙산업이 되면 중국 등 후발국에 내주고 신사업으로 갈아타야 할 운명이다.
다만, 워낙 탄탄했던 ‘LCD 왕국’의 아성이었던지라, 너무 쉽게 중국에 내주는 걸 지켜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편광필름 사업 매각을 결정한 삼성SDI의 모습이 마지막까지 왕국을 지키다 역부족으로 철수하는 군대만큼이나 쓸쓸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