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증원분 2000명 중 18% 경인권…서울권은 배정 '0'
비수도권 국립대, 2∼4배 증원…충북대 4배 이상 가장 큰폭 확대
일부 의대들 반발 "오전·오후반 풀빵 찍어내듯 수업하라는 건가"
정부가 2025학년도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분을 비수도권 거점 국립대에 대폭 배정하면서 이른바 '인서울' 의대보다 더 큰 비수도권 의대가 탄생하게 됐다.
비수도권 거점 국립대 정원을 늘린 것은 그간 정부가 강조해온 지역의료 발전을 위한 취지로 읽힌다. 서울을 제외하고 경기·인천 지역 의대를 증원한 것 역시 '지역 간 의료 여건 격차'를 줄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20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 정원 증원분 2000명 가운데 18%인 361명은 경인권에, 82%인 1639명은 비수도권에 배분됐다. 서울 지역에 배정된 증원분은 없었다.
이에 따라 경인권 의대 정원은 5개교 209명(6.8%)에서 570명(11.3%)으로, 비수도권 의대 정원은 27개교 2천23명(66.2%)에서 3천662명(72.4%)이 됐다.
비수도권 의대 정원이 70% 선을 넘게 되는 셈이다.
서울 지역 의대 정원은 8개교 826명으로 그대로지만, 전체 의대 정원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은 27.0%에서 16.3%로 10.7%포인트 축소됐다.
늘어난 정원을 비수도권에 집중시킨 것은 정부가 그간 강조해온 '지역의료 강화' 차원이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사직과 의대생 수업 거부, 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 결의까지 이어진 의료계의 거센 반대에도 2000명 증원을 밀어붙였다. 위기에 처한 지역의료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가 일관되게 펴왔던 주장이다.
이날 의대 증원분을 '비수도권 거점 국립대'에 집중시키면서 정부는 지역의료 강화를 지원 사격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피력했다.
비수도권 거점 국립대 9곳 가운데 경상국립대(현 입학정원 76명), 전남대(125명), 경북대(110명), 충남대(110명), 부산대(125명), 전북대(142명), 충북대(49명) 등 7곳은 정원이 200명으로 늘어난다.
대학별로 현 정원의 1.4배∼4.1배 정원이 늘어나는 셈이다.
정원이 49명인 충북대는 200명으로 늘어나 4배 이상으로 정원이 확대됐다.
지방 거점 국립대 의대가 서울대(135명), 연세대(110명) 등 서울 주요 대학보다 훨씬 큰 규모의 정원을 갖게 된 것이다.
지역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강원대(49명)는 132명으로, 제주대(40명)는 100명으로 늘어난다.
정부는 지방 거점 국립대의 의대 정원과 교수, 시설 등을 대폭 확충해 '빅5' 병원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제시했다.
이외에도 비수도권 의대 중 정원이 40명으로 가장 작았던 대구가톨릭대의 정원은 80명, 건국대(충주)·을지대 정원은 100명, 울산대·단국대(천안) 정원은 120명이 됐다.
가톨릭관동대·건양대·동아대 정원은 각각 49명에서 100명으로 늘었고, 동국대(경주)는 49명에서 120명이 됐다.
경인권 의대 정원은 2.7배가 됐다.
정원 40명이던 가천대는 130명, 성균관대·아주대는 각각 120명, 차의과대는 80명으로 늘었다. 49명이던 인하대 정원도 120명으로 늘었다.
반면 서울지역 의대 증원은 정부가 내세운 지역의료 강화 취지와 맞지 않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인구 1만명당 의대 정원은 서울이 약 0.9명이지만, 경기는 0.1명, 인천은 0.3명으로 차이가 난다.
인구 1천명당 의사 수 역시 서울 지역의 경우 3.6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7명)에 가깝다.
반면 경기는 1.80명, 인천 1.89명으로, 전국 평균(2.23명)에도 못 미친다.
다만 의학계에선 현재보다 1.7배가량으로 의대 정원이 급증하면서 시설, 기자재 부족이 심화해 의학 교육의 질이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비수도권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크다.
충북대학교의과대학·충북대학교병원 교수 160여명으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달 초 충북대가 교육부에 현 정원(49명)의 5배에 달하는 250명을 증원해달라고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비대위 측은 "250명 의대생을 가르치려면 1970년대 국민학교 수업처럼 '오전반·오후반'으로 나눠서 강의해야 하는데 이는 풀빵 찍어내듯이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의대생들은 교육의 질 하락으로 피해를 볼 당사자인 자신들이 정부 증원 논의에서 배제됐다며 불만이 큰 상황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19일부터 전날까지 전국 의대생의 절반 가까이인 8360명이 정상적인 절차를 지킨 '유효' 휴학계를 제출했다.
대부분은 '동맹휴학'을 위한 휴학계 제출로 보인다.
전국 40개 의대·의전원 학생 대표들은 정부 발표 직후 공동 성명서를 내고 "증원이 이뤄진다면 학생들은 부족한 카데바(해부용 시신)로 해부 실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실습을 돌면서 강제 진급으로 의사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대학에 휴학계 수리를 강력히 요구할 것이며 휴학계를 반려할 경우에 대비해 행정소송에 대한 법률 검토도 마쳤다"며 정부를 향한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한편 증원에서 배제된 서울 지역에서는 역차별이라는 반발이 나온다.
서울지역 학부모, 수험생들은 의대 증원·배정 방침을 취소해달라며 이날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을 제기했다.
증원분 배분 심사가 '속도전'으로 이뤄지면서 졸속으로 치러졌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초 의대 정원 배분은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총선 직전 공개될 것으로 점쳐졌으나, 예상보다 더 빠르게 마무리됐다.
정부는 지난 4일까지 전국 40개 의대로부터 증원분에 대한 수요 조사를 마치고 배정위원회를 꾸렸다. 첫 회의는 지난 15일 열렸다.
정부는 증원분의 배분을 심사한 배정위와 관련해 교육부, 보건복지부 관계자, 전문가 등으로 구성됐고, 세 차례 회의를 열었다는 사실 외의 사안은 모두 비밀에 부쳤다. 사안의 중대성과 민감성을 고려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배정위 첫 회의 이후 불과 '5일' 만에 의대별 증원 배분을 공개하면서 제대로 된 심사가 이뤄졌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된다.
실제로는 정부가 의대별 증원분 배정을 결정하고, 배분위는 '거수기' 역할을 한 데 그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의정 대치가 이어지면서 시민들의 피로도가 쌓이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증원분 배분을 빠르게 발표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