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 등에 들끓던 계파 신경전
총선 국면 접어들며 최고조…친명횡재 공천 논란 확산
李, 국면 전환 시도하지만…당내선 野 심판론 역공 우려
선거 결과 따라 유력 대권주자 李 정치적 명운 갈릴 전망
4·10 총선을 30일 앞둔 더불어민주당에 비상이 걸렸다. 총선 국면 본격화 전부터 들끓던 계파 간 신경전이 공천 과정에서 폭발하면서 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비명횡사 친명횡재' 요약되는 공천 파동이 유권자의 뇌리에 남아, 민주당의 총선 프레임인 '윤석열 정권 심판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10일 민주당에 따르면, 당 공천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민주당은 시스템 공천으로 혁신과 통합이 달성됐다고 자평 중이다. 이재명 대표는 8일 "시스템에 의한 혁신 공천, 혁신을 넘어서서 공천 혁명"이라고 자찬했다. 이 대표는 전날에도 공천 논란에 대해 "위대한 국민과 당원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공천 업무를 주관한 공관위도 이 대표와 별반 다르지 않은 평가를 내놨다.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은 8일 "현역 의원 기득권 타파를 위한 경선 원칙, 양자 경선 및 결선 제도 도입 등으로 시스템 혁신 공천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혁신'의 근거로, 경선 지역의 현역 교체율(45%), 3선 이상 의원 교체율(38%)을 들었다.
비명계 의원들이 대거 공천 배제되고, 친명계 원외 인사들이 그 자리를 꿰차면서 계파 갈등이 폭발해 지지율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 지도부가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민주당의 공천 파동은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9월 이 대표의 '병상 부결 메시지'에도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친명계는 '가결파 색출'에 나섰고, 이를 계기로 총선 공천에서 비명계가 직·간접적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친명계가 주도적으로 나서 향후 전당대회에서의 대의원 권한을 약화하고 권리당원의 비중을 강화하는 안을 의결하면서 당내 갈등은 심화됐다. 비명계는 총선과 관계없는 전당대회 룰을 개정한 건, 이 대표가 총선 이후 차기 당 권력도 확실히 장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했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더해 '사당화 논란' 등으로 인한 당 분열 상황이 지속되면서 당대표의 리더십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이재명 얼굴로 총선을 치를 수 있겠느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비명계 내에서는 이 대표의 2선 후퇴와 통합형 비상대책위원회 필요성이 제기됐다. 비명계 4인(김종민·윤영찬·이원욱·조응천 의원)이 꾸린 정치적 결사체 '원칙과 상식' 등과 이낙연 전 대표는 이 대표가 제안을 수용하지 않자, 탈당했다. 이 대표가 대선 경선 당시 정책자문그룹에 참여한 임 공관위원장을 기용하면서, 이 대표의 통합 의지가 말뿐 만이라는 지적이 나온 상황이었다.
본격적인 공천 국면에 들어선 뒤 계파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임 위원장이 지난달 6일 1차 경선 지역 후보자를 발표하면서 "본의 아니게 윤석열 검찰정권 탄생의 원인을 제공하신 분들 역시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시기 바란다"고 언급하면서다.
특히 현역 의원 평가 하위 20% 31명 중 대다수가 홍영표·전해철 의원 등 친문(친문재인)계 핵심 인사를 비롯한 비명계로 알려지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여기에 더해 일부 비명계 중진 의원 지역구와 호남 지역을 대상으로 현역 교체 여론을 파악하는 '정체불명의 여론조사'도 실행됐다.
비명계는 당 안팎의 예상대로 경선 참여 자격도 얻지 못하고 컷오프되거나, 경선에서 친명계에 밀려 탈락했다. 민주당 공천 파동의 하이라이트는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홍영표 의원 컷오프였다. 이 과정에서 당 지도부 중 유일한 비명계인 고민정 의원이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했다. 지난 6일 발표된 4~6차 20곳 지역구 경선 발표에서도 강병원·박광온·윤영찬 의원 등 비명계가 대거 패배해 '비명횡사 친명횡재' 해석에 힘이 실렸다.
공천 파동은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됐다. 엠브레인리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4~6일 100% 무선 전화면접 조사 방식으로 정당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민주당 지지율은 29%로 나타났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37%로 8%p 앞섰다. 민주당 지지율은 올해 1월 2주차 조사에서 33%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공천 국면에 들어선 2월에는 30%대를 유지했지만 3월 2주차 조사에서는 20%대로 주저앉았다.
민주당 공천 과정에 대해서도 부정 여론이 높았다. 같은 조사에서 '민주당 후보 공천과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3%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민의힘 공천과정에 대한 부정평가가 42%라는 것과 대비된다. 해당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종근 시사평론가는 민주당 공천 과정에 대해 "너무 거칠고 밀어붙이기만 한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볼 때 혁신이 아니라 상대파, 정적을 제거하는 것처럼 여겨지게 만들었다"라며 "혁신이라고 해놓고 내놓는 상품들은 '용비어천가' 쓰는 사람, '차은우보다 이재명이 낫다'라고 하는 사람들이었다"라고 비판했다.
당내에는 이런 상태로 총선을 제대로 치를 수 있느냐는 의구심이 팽배하다. 당이 그 어느 때보다 통합해 정권 심판론에 힘을 실어야 함에도 오히려 분열 양상을 보이면서 여당의 '야권 심판론' 프레임에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전보다 높아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민주당의 총선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일단 이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공천 논란을 극복하기 위해 김건희 여사 일가의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등 정권 심판론 되살리기를 시도하고 있다.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서 '공천과정이 시끌시끌해도 공천이 다 끝나고 총선 국면에 들어가면 정권심판론이 다시 작동할 것'이라는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해 "착각"이라고 비판했다.
이 평론가도 "'인물·바람·구도' 선거의 3요소 중 인물·바람은 이미 물건너갔다. 만회해야 될 '구도'가 정권심판론인데, 네거티브로 정권을 심판하거나 김건희 여사, 윤 대통령 음모론으로 접어들면 필패"라며 "그런데 민주당은 네거티브, 음모론 선거 전략에 너무 많이 의존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의 지지율 하락은 지지층이 분산되거나 지지를 유보하는 것"이라며 "이제는 유권자를 설득할 포지티브 전략을 내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유력 대권주자인 이 대표의 정치적 명운이 갈릴 전망이다. 이 대표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는 기준은 국민의힘에 과반 허용 또는 민주당 확보 의석수 120석 이하라는 분석이다. 둘 중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대권 재도전뿐 아니라 당대표직을 유지하는 것도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