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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서병 김일호 "서울대 역사교육과 졸업해 여의도 향한 이유는…"


입력 2024.03.02 08:00 수정 2024.03.03 01:11        김은지 기자 (kimeunji@dailian.co.kr)

김일호 국민의힘 서울 강서병 후보 인터뷰

1973년생 당직자 출신 정치인으로

강서에서 초·중·고교 졸업한 동네사람

"한강벨트의 시작, 강서라는 것 보여줄 것"

김일호 국민의힘 서울 강서병 예비후보가 29일 오후 서울 강서구 선거사무소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지난 14일 국민의힘은 4·10 총선 출마 후보 가운데 25명을 '1호'로 단수 공천했다. 서울 용산 권영세 의원, 동작을 나경원 전 원내대표 등 굵직한 인사들이 공천장을 받은 가운데, 공천자 목록 중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 유독 눈에 띄었다. 불과 2주 전까지 '강서구민 중 한 명'에 불과했던 김일호 강서병 후보다.


김일호 후보의 상대는 4선 고지 등정을 노리는 '막강한 인지도'의 현역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그에 견줘 김 후보에 대한 대중의 주목도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29일 오후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선거사무소에서 데일리안과 만난 김 후보는 "사람들이 나를 아직 모르고 있다"는 말을 거듭하면서도 "나는 진짜 동네사람"임을 자임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김 후보는 당무와 행정을 넘나들며 화려한 이력을 쌓아온 중앙(發)발 인사다. '알고 보니 지역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 '동네주민, 동네사람이 국회의원을 할 때가 됐다'라는 반응은 이제야 지역에서 축적되기 시작했다.


김 후보는 그동안 당 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서울시당 사무처장, 중앙당 총무국장, 육군참모총장 정책보좌관, 국회 정책연구위원, 특임장관실 장관정책보좌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전문위원 등 요직을 두루 경험했다.


김 후보는 강서구에 위치한 화곡초와 백석중·마포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이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에 진학하면서 교사로 재직할 기회가 있기도 했다.


역사에 대한 그의 관심은 그를 교단(敎壇)이 아닌 정당으로 이끌었다. 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국민의힘 사무처 당직자로 여의도에 들어와 24년을 근무했다. '국가의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공적인 일'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그를 여기까지 오게 한 셈이다.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는 '진짜 강서사람' '서울대 역사교육과 졸업' '당직자 출신' 뿐이 아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동갑내기라는 것도 있다. 김 후보는 최근 1973년생 동갑인 한 위원장에게 '함께 가면 길이 된다'는 친필 사인을 받는 등 응원을 받기도 했다.


1973년생은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 2002년 월드컵을 모두 겪은 세대로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체감했다. 한 위원장을 필두로 한 당 지도부와 김 후보 모두 '새로운 세대에서 또 다른 세대로 가는, 또다시 새로운 이념을 가지고 정치를 해야 하는 엄중한 시기'에 서 있기도 하다. 이와 관련 김 후보는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가는 과정에서의 의미를 좀 찾아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에 실무자가 아닌 '선수'로 도전에 나서는 포부로는 "70년대생이 맏형으로 강서구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수도권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한강벨트는 강서와 김일호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드리겠다"고 역설했다.


김일호 국민의힘 서울 강서병 예비후보가 29일 오후 서울 강서구 선거사무소에서 데일리안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다음은 김일호 국민의힘 서울 강서병 후보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 아직 인지도가 높지 않다. 강서병의 '김일호'는 어떤 사람인가.


"그동안 강서구에서 출마했던 많은 분들이 있지만, 여기서 태어나고 초·중·고를 다 다닌 분이 강서구 역사 이래로 한 분도 출마한 적이 없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서 초·중·고를 나오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하고, 여기서 두 아이 아빠가 돼 두 아이를 교육하는 사람이 진짜 동네사람이고 강서 사람이 아닌가 싶다. 가슴이 아픈 게, 친구들조차 강서구가 교통이 발전돼 있지 않고 교육이 발전돼 있지 않아 옆 지역구 목동이라든지 더 나아가 강남 학군으로 이사를 갔다. 나는 끝까지 강서를 지키고 여기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 당직자의 길은 어떻게 선택하게 됐나. 이력이 화려한데, 살아온 궤적에 대한 설명부터 부탁드린다. 이번엔 실무자가 아닌 '선수'로 나선 배경은 또 어떤 것일까.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무처 공채로 들어가 당직자로 24년을 근무했다. 여러 차례의 대선과 총선·지선을 거치면서 정무적인 능력을 배양했고, 당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입법 과정, 행정부에서 행정 전반에 대해 섭렵하면서 배워왔다. 당직자가 된 계기는 역사교육과를 나왔고, 어떤 국가에 있어서 가장 근간이 되는 것은 교육이라고 생각을 한 데 있다. 좋은 사기업도 많이 있으나, 공적인 일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정당의 근본적인 중심은 '국민을 위한다'는 것이다. (국민 개개인의) 이념과 가치관이 다른 탓에,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층은 존재할 것이지만 말이다. 국민을 위한다는 측면에서, 공적인 일에 봉사하기 위해 당직자의 길을 걷게 됐다. 또 4·10 총선은 어떤 때보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로지을 중요한 기점이다. 대한민국의 운명뿐 아니라 내 고향인 강서구가 미래발전적인 곳으로 변화할지 아닌지를 결정할 중요한 기로다. 이 동네에 애정을 많이 가지고 있고, 잘 알고 있는 내가 출마를 해서 강서구 발전에 이바지를 하겠다고 생각했다."


― 2주 동안 유권자들과 접점을 넓히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지역 유권자들은 후보를 만나면 어떤 주문을 하는지도 궁금하다.


"정치 초년생인 나를 많은 주민들이 '도대체 누구냐'라고 궁금해하고 계시더라. 국민의힘 후보자로 결정되고 나서 한 분 한 분 찾아뵈면서 내가 살아온 모습을 말씀드리니까 '어? 화곡초 나왔냐, 백석중을 나왔냐, 마포고냐, 집은 어디냐'라고 물으신다. 그러면서 '진짜 동네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러 나왔구나'라며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시더라. 그런 것을 볼 때마다 내가 올바른 선택을 했고, 또 '정치를 해야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된다.


오늘 뵌 분 중에선 재래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분이 있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더니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나랑 다른 사람이지 않나. 선거 때만 와서 필요한 것을 묻고 끝나면 가버리는 사람들이다. 당장 선거운동복을 입은 사람들과 나는 달라 보인다'라고 하시더라. 그래서 선거운동복을 벗고 그분과 말씀을 나눴다. 그제야 '무엇이 필요하며, 무엇은 어렵다'는 말씀을 주셨다. 그만큼 정치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국민과 많이 괴리돼 있다. 그 분께 감사한 게 내가 정치를 해야 하는, 국회의원 돼야 하는 중요한 이유를 주셨다.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분들과 같이 살았던 동네주민이었다. 동네주민이 이제 국회의원을 할 때가 된 것 같다."


― 한동훈 비대위원장과는 1973년생 동갑내기다. 한동훈 위원장과 어떤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최근 인사를 했다. 우리가 플랜카드 하나를 가져갔다. 그래서 '국민의힘은 한동훈 강서는 김일호' 이렇게 하고, '함께 가면 길이 된다'라고 하는 한 위원장의 친필 사인을 받았다. 힘을 받아 더욱 열심히 하려고 한다. 한 위원장과는 같은 1973년생이다. 아무래도 한 위원장이 하는 일이 대한민국을 바꾸고,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개조해 가는 모습이다. 나 또한 동조해 강서도 함께 바뀌게 할 것이다.


비대위원장은 세대교체를 많이 얘기한다. 새로운 세대에서 또 다른 세대로 가는, 또다시 새로운 이념을 가지고 정치를 해야 하는 시기가 딱 73년생 출생자와 맞물린다. 1986년도에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때 아시안게임이 열렸고, 중학교 때는 88 올림픽을 겪었던 세대다. 2002년에는 월드컵이 있었다. 그땐 사회에 막 진출해 사회생활을 한 분들이 있다. 나는 2001년 사회에 진출해 이듬해에 월드컵을 봤다.


대한민국 발전 과정에 있어 그것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역사 속의 흐름에 있던 세대다. 이전 운동권 세대는 민주화에 애를 썼고, 그것과는 다르게 민주화세력이 만든 토대 하에서 대한민국이 글로벌하게, 세계적으로 가는 과정에서의 의미를 좀 찾아볼까 한다. 그 시기를 같이 겪어온 70년대생이 맏형으로 강서구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다만 국민의힘에서 말하는 한강벨트에는 강서가 빠져있다. 여기에 대해선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한강벨트는 주로 마·용·성(마포·용산·성동)을 이야기하는데 사실은 강서에서부터 한강벨트가 시작되는 것이고, 강동구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처음에 워낙 마포나 용산·성동에 언론의 관심이 많아서 부각이 됐는데 강서에서 한강벨트가 시작된다는 것을 열심히 노력해 보여드리려고 한다. 강서구라는 곳은 그동안 사실 많이 소외되고 발전이 더딘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강벨트에서 많이 강조되지 않고, 부각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물길로는 강동구가 시작이지만, 서해로부터 보면 강서가 한강벨트의 시작이다. 내가 열심히 해 한강벨트는 강서이자, 김일호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드리겠다."


― 김일호는 앞으로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나.


"오늘 아침에 증미역에서 인사를 하면서 출근하는 분들의 눈을 봤다. 아침식사도 못하고 젖은 머리카락도 제대로 말리지 못하고 출근을 하는데, 문득 많은 정치인들이 그분들에게 피로를 유발하고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됐다. 이렇게 해도 되나. 내가 느낀 마음은 미안함이었다. 힘들고 지친 국민을 위로해주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이다. 그렇다고 사명감이라고 지칭하기는 너무 거창하다.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들인가.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표를 달라고 유권자에게 다가서는 이 순간과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의 상황이 달라지면 안 되겠다는 것이 나의 가장 굳은 신념이다."


― 이번 총선에 임하는 포부 등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강서구가 흙길이었을 때부터, 아스팔트가 깔리기 전부터 살았다. 깊은 인상을 받았던 날은 5호선이 동네에 들어오는 날이었다. 온 주민이 5호선 개통역에 나간 기억이 있다. 그런 시절을 겪으면서 우리 동네가 발전하겠구나 생각을 했는데, 발전이 안되고 있다. 지난달 24일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나서 강북횡단선 조기 건설 그리고 염창나루역 신설도 강력하게 요청을 했다. 정부와 서울시, 국회의원이 같은 라인에 있어야지 강서구가 발전할 수 있다.


강서병은 갑을에서 병으로 20대 총선 때 분구됐다. 그리고 나서 민주당의 한정애 의원이 두 번 다 당선이 돼, 비례 의원까지 합치면 3선을 했다. 교육과 교통·인프라 등 강서구의 정체된 문제가 많다는 말씀들을 하시는데, 사람을 바꿔야지만 강서구가 바뀌고 발전을 할 수 있다. 동네사람이, 나랑 똑같은 동네주민이 국회의원이 이번에 될 수 있고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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