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 집단행동에 '의료대란' 현실화…정부 "PA간호사 적극 활용" "양성화 방안 검토"
현장 간호사들 "음성적으로 행해지던 것을 아예 제도화 할 수 있다면 간호사 지위 향상될 것"
"간호사에게 전공의 업무까지 몰아준다는 얘기?…간호사, 의사보다 인건비 싸니 괜찮다는 건가"
전문가 "정부가 정말 PA 양성화 의지 있다면…국회와 논의해 의료법 개정에 착수하면 될 것"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지난 20일부터 전공의들이 집단으로 의료현장을 떠나자 곳곳에서 의료공백이 속출하고 있다. 이에 그동안 음성적으로 행해지던 'PA'(Physician Assistant, 진료지원인력) 간호사의 의료행위를 공식적으로 허용해 그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런 주장에 대해 일부에서는 '제도적 근거가 갖춰진다면'이라는 전제를 달아 긍정적으로 보기도 하지만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이 공포되지 못한 것처럼 이번에도 힘들 것'이라는 부정적인 반응이 우세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PA간호사를 통해 현재의 의료공백에 대처한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불법행위를 묵인하겠다는 것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정말 의지가 있다면 당장 국회와 논의해 의료법 개정에 착수하면 된다"고 촉구했다.
◇ 전공의들 10명 중 7명 의료현장 떠나…수술지연만 44건
2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는 전날 오후 10시 기준 9275명이다. 전체 1만3000명의 75%에 달하는 숫자다. 실제 출근하지 않은 전공의도 8024명으로 64.4%에 달했다.
이처럼 전공의들이 환자 곁을 떠나자 곧바로 의료공백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공식 접수된 신규 피해 사례는 전날 총 57건으로 집계됐다. 수술 지연 44건, 진료 거절 6건, 진료 예약 취소 5건, 입원 지연 2건이었다. 센터 운영 첫날인 19일 34건, 20일 58건까지 포함하면 150건에 달한다.
이에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방송인터뷰를 통해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향후 심화할 경우 PA 간호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역시 같은 날 "의사 파업이 장기화할 조짐이 보이면 PA 양성화 방안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정부의 입장을 거들고 나섰다.
◇ "수술실 전문 간호사들, 이미 전공의처럼 여겨져" vs "환자들이 항의하면 딱히 할 말도 없어"
현장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생각은 어떨까. 서울의 한 종합병원 간호사 A씨는 "미국처럼 PA면허가 따로 있으면 간호사들도 법적 보장 받으면서 일할 수 있을 것이고 병원도 불법 의료행위 문제에서 자유로울 것"이라며 "특히 PA 중에서도 수술실 전문 간호사가 있는데, 거의 수술 보조하는 전공의처럼 여겨지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그는 "음성적이긴 하지만 지금도 실력만 좋으면 PA는 대우를 잘 받는다"며 "음성적으로 행해지던 것을 아예 제도화 할 수 있다면 간호사 지위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경기도 남부의 한 종합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B씨는 "PA를 적극 활용해 의료 공백을 메운다는 이야기는 간호사들에게 전공의의 업무까지 몰아준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며 "간호사가 의사보다는 인건비가 싸니까 사고만 안나면 괜찮다는 생각으로 지금도 원래 간호사가 하면 안 되는걸 PA한테 맡기는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간단한 봉합이나 드레싱같은건 워낙 일상이라서 환자들도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데 만약 환자한테 왜 의사가 안 해주느냐고 항의가 들어오면 딱히 할 말도 없다"며 "의료법을 개정해야 해결될 일이지만 의사들이 그렇게 둘 것 같지는 않다. 간호법도 다 제정돼 국회 통과까지 됐지만 의사들이 파업하면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하지 않았나"라고 성토했다.
◇ 의료분쟁 전문가 "법 개정 선행되지 않으면 불법행위 묵인에 불과"
의료분쟁 전문가인 정현진 변호사(법무법인 안팍)는 현 상황과 관련해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정부가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뛰어넘는 의료행위를 단속·적발했다"며 "그런데 이제 전공의들이 떠나 의료 공백이 생기니 간호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 변호사는 "의사에게 허용된 의료행위를 PA도 할 수 있다고 법에 명시되지 않은 이상 PA들이 그에 협조해야 할 이유는 없다"며 "보건복지부 차관이 말한 대로 PA들에게 전공의들의 업무를 맡긴다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의료현장에서의 불법행위를 묵인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PA양성화에 적극적인 의지가 있다면 곧바로 국회와 논의해 의료법 개정에 착수하면 된다"며 "이런 법적 뒷받침이 없는 이상 실현 가능성은 희박한 얘기"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