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 특검' 단식 투쟁이 공천 부적격 사유인가 [기자수첩-정치]

김성태, '드루킹 특검' 이후 '먼지털이

수사'…'김명수 대법원'서 유죄 판결

건강도 명예도 당을 위해 던졌는데,

돌아온 것은 스산한 공천 부적격 판정

조건없는 '드루킹 게이트' 특검 수용을 요구하며 6일차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018년 5월 8일 국회본청 앞 농성장에 누워 있다. ⓒ데일리안

2018년 5월 8일 어버이날, 문재인정권 시절의 엄혹함 때문이었을까. 5월인데도 좀체 봄날씨 같지가 않았다. '드루킹 특검'을 받으라며 6일차에 접어든 국회본청앞 김성태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단식농성 천막은 얇은 비닐막 하나로 여의도 강바람을 막고 있었다.

가족들이 카네이션을 들고 단식투쟁 6일차인 아버지를, 어버이날이라고 농성 천막으로 찾아왔다. 지금은 대통령실 행정관이 돼있는, 당시 원내대표실 근무 사무처 당직자는 그 장면을 보며 비감을 감출 길이 없었다.

돌연 돌계단 위로 성큼성큼 걸어올라가 국회본청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 이 XX들아, 특검 받아!" 멀쩡한 사무처 당직자가 벌인 돌발 사태에 놀란 국회 경위는 물론, 동료 사무처 당직자들이 달려들어 진정시키면서 몇 안되는 사람들만 아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만큼 김 원내대표의 단식에는 진정성이 있었다.

6년이 다 돼가는 지금도 김성태 원내대표는 여름철에 에어컨 나오는 실내 공간에서 자켓을 걸치고, 겨울철에 한기가 느껴지는 창가 자리에 못 앉는다. 젊었을 적 중동 건설근로자로 일했던 그가 원래 이런 체질이었을 리 없다. 모두가 단식 이후에 생긴 일이다.

2014년부터 국회를 출입한 이래 10년간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 '선당후사(先黨後私)'라는 단어를 아마 500번은 들었을 것이다. "밀알이 되겠다" "당을 위해 이 한몸을 던지겠다"는 말도 익숙하기만 하다. 하지만 실제로 자기 한몸을 당을 위해 던진 경우를 본 것은 김 원내대표 사례가 아직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소수 야당 원내대표의 '진짜 단식'은 아쉬울 것 없던 원내 다수 집권여당으로부터 '드루킹 특검'을 이끌어냈다. 자신만만하던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이듬해 1월 30일, 1심에서의 유죄 판결과 동시에 법정구속됐다.

대선 불법댓글 여론조작이 인정된 것이다. 문재인정권의 도덕성을 허물어뜨리는 첫 단초였다. 이후 '조국 사태' '박원순·오거돈 사건' '대장동 의혹' 등으로 이어지면서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드루킹 특검'을 이끌어낸 김 원내대표의 단식은 곧 정권교체의 첫걸음이었다.

적폐청산의 칼날을 휘두르던 서슬 퍼렇던 문재인정권의 '정통성'이라는 수염을 불살라버린 대가는 컸다. 김 원내대표는 건강 뿐만 아니라 많은 것을 내놓아야 했다. 그 이후 돌연 KT 회장을 구속하고 비서실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할 정도로 '먼지털이식 수사'가 시작됐다.

1심에서는 무죄를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판결이 엇갈렸다. 2022년 2월 '김명수 대법원 체제'에서 최종 유죄 판결이 떨어졌다. 상고심 주심 대법관은 민변 회장을 지냈으며 통진당 해산 사건에서 통진당측 변호인단장을 맡았고,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노무현정권 청와대에 재직했던 인물이었다.

김성태 원내대표가 '드루킹 특검'을 이끌어내기 위한 단식 투쟁을 하지 않았더라면 '먼지털이식 수사'를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나왔을지도 의문이다. 인과관계로 보면 국민의힘의 공천 부적격 판정이란 곧 '드루킹 특검 단식이 부적격 사유'라고 판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문재인정권을 상대로 대선 불법댓글 여론조작 특검을 관철하기 위해 야당 시절 원내대표가 목숨을 건 단식 투쟁에 나섰던 것이 공천 부적격으로 되돌아오는가. 5월 8일 어버이날 그날만큼이나 스산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