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상환 쫓기는 소상공인·자영업자는
보온병에 커피 담아 출근하는 현실인데
이재명 "댓글 한 개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 맹종 무리들이 '진짜 서민 처지' 알까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나경원 국민의힘 전 원내대표가 홍대 거리를 방문했을 때다. 서교동 패션잡화점의 한 30대 청년창업주는 나 전 원내대표를 향해 "지난해 코로나가 시작되자 자영업자들이 3~6월에 집중적으로 신용보증재단에서 대출을 받았다"며 "1년 거치 4년 상환인데 당장 3월부터 갚을 형편이 안된다"고 울상을 지었다.
코로나19가 시작될 때 이렇게 오래 갈지는 아무도 예상 못했던 시절이었다. 하소연을 하던 청년창업주는 카운터 뒷편에서 보온병을 꺼내들었다. 보온병 안에는 커피가 담겨 있었다. "커피를 너무 마시고 싶은데 당장 내달 돌아올 신보 대출도 못 갚는 처지에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주문은 손이 덜덜 떨리더라"며 "아침에 출근할 때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가지고 와서 마신다"고 했다.
오랫동안 정치를 하며 어지간한 사연은 많이 들어봤던 나 전 원내대표에게도 꽤나 충격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나 전 원내대표는 이후 오세훈 서울특별시장과의 당내 경선 후보 토론에서 자신의 '숨트론' 공약에 부정적인 오 시장을 향해 "지금 이 코로나 위기 속에서 자영업자 분들은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오시는 상황인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스타벅스는 서민들이 쉽게 찾는 곳은 아니라는 듯한 말로 논란이 되는 것을 보며, 문득 청년창업주의 '보온병의 커피' 기억이 떠오른다.
한동훈 위원장은 지난 5일 경동시장 내에 있는 스타벅스 경동1960점을 찾았다. 이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스타벅스는 사실 업계의 강자다. 여기가 서민들이 오고 그런 곳은 아니다"라면서도 "이곳이 모든 아이템당 300원씩을 전통시장 상인회에 제공하는 상생협약을 맺은 곳이라 들었다. 그런 차원에서 여기를 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동시장도 코로나19로 휘청할 정도의 어려움을 겪었다. 전통시장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의 오랜 터널은 지났지만, 기지개를 켤 날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코로나19 시절에 쌓였던 대출도 아직까지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기도 하다.
과연 경동시장 상인들 중 누가 식후에 자기네 시장 안에 있는 스타벅스 경동1960점에 흔쾌히 들어가 아메리카노를, 아니면 자몽허니블랙티를 시켜먹을 여유를 누릴 수 있을까.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은 대출 상환에 쫓기며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오는 게 현실인데, 생기기만 하면 망할 일이 없는 '업계의 강자' 스타벅스는 공간적으로 같은 전통시장 안에 있다고 해도 전혀 남남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소 닭 보듯 하는 관계인 스타벅스와 전통시장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300원 상생협약'으로 비로소 하나가 됐다. 한동훈 위원장은 바로 그 점을 평가한 것이다.
식후에 한가롭게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댓글 한 개, 카톡 한 번이 세상을 바꾼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주문에 따라 정치 기사에 댓글을 달고 특정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론몰이에 나서는 분들이,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 출근하는 진짜 서민들의 처지를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이제는 지난 8일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있었던 한동훈 위원장의 연탄 자원봉사를 가지고 여론몰이의 군불을 뗀다. 실상은 정치인도 아닌 연탄은행 전국협의회장이 주변의 웃음 속에 콧등에 검댕을 묻혔고, 오히려 한 위원장은 "일부로 안 묻혀도 된다"며 몸을 슬쩍 피했다.
발언의 맥락과 전체 과정을 살펴보면 전혀 문제 없는 것들을 가지고 흠집내기에 나서는 목적은 분명하다. '희화화 공세'인 것이다. 막 정치에 입문해 참신하고 신선하지만 아직 이미지가 고착화되지 않은 보수정당 정치인을 상대로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리는' 희화화 공세로 재미를 본 사례라고 하면 국민 누구나 몇 명은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한동훈 위원장을 상대로 기회만 노려온 특정 세력의 희화화 공작은 그리 쉽게 성공할 수 있을까. 2008년 광우병 선동은 나라를 뒤집어놓을 듯한 기세였지만, 2023년의 오염수 선동은 힘을 잃었다. 경동시장 스타벅스 서민 논란, 연탄봉사 검댕 논란 등 총선을 앞두고 어떻게든 예전에 재미봤던 희화화 공작에 매달리는 특정 세력의 창의성 고갈이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