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5일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1심 무죄…법원 "범죄 모두 증명 안 돼"
2016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9년째 이어진 사법리스크 일단 해소…경영족쇄 푸는 계기될 것
'수사 기록만 19만 쪽' 자존심 상처난 검찰, 항소 가능성 높지만…합병 정당성 인정돼 한층 부담 덜어
이재용에 적용된 모든 혐의 무죄 판정…검찰 항소해도 실익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중론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회계부정'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2016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햇수로 9년째 이어진 사법리스크가 일단 해소됐다. 물론 자존심이 상한 검찰의 항소 가능성이 높지만 합병 정당성을 법원에서 인정받았고, 무엇보다 이 회장에게 적용된 모든 혐의가 무죄 판정을 받은 만큼 검찰이 항소해도 얻을 실익이 크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이 사건 공소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회장과 미래전략실이 합병 추진을 결정했다고 볼 수 없고 이 사건 합병은 2015년 5월 미래전략실에서 필요성과 장해사유 검토 등을 거쳤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양사 이사회의 실질적 검토 후 의결 통해 결정됐다고 본다"고 밝혔다.
또한 "이 회장의 지배력 강화 및 삼성 경영권 승계 만이 이 사건 합병 목적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합리적 사업상의 목적이 있으니 지배력 강화가 수반됐다고 해도 합병 목적이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직 검찰의 항소 가능성이 남아 있어 사법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있어 마지막 단추로 여겨졌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정당성을 1심에서 인정받으면서 이 회장도 한층 부담을 덜게 됐다.
무엇보다 미중 갈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 지정학적 리스크와 고물가·고금리 등 복합 위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불확실성이 해소되고 또다시 '경영 족쇄'가 채워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당시 사건의 수사와 기소를 이끌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수사부 부장검사)도 판결 전 기자들과 만나 "금융업무를 담당하는 공직자 중 한 사람으로서 삼성그룹과 이재용 회장이 이걸 계기로, 경영혁신이나 국민경제에 대한 기여에 족쇄가 있었다면 심기일전할 기회가 되면 좋지 않겠나 싶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이 회장 측 변호인도 이날 서울중앙지법 청사를 나오면서 기자들에게 "이번 판결로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다만 검찰로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검찰은 이 사건에 20여년 동안 수사 기록만 19만쪽을 만들었으나 결국 법원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내부 논의를 거쳐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1심 재판 무죄 판결에도 "직권남용 해석에 이의가 있다"며 항소했다.
앞서 검찰은 2015년 이 회장이 적은 비용으로 경영권을 승계받기 위해 삼성그룹 내 미래전략실과 공모해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흡수합병 추진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고 제일모직 주가를 띄운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제일모직 지분 23.2%를 가져 대주주였던 이 회장 입장에서 제일모직 가치가 높아지는 게 합병에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 측의 주장이다. 결과적으로 합병을 통해 이 회장은 삼성물산 소유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해 그룹 내 지배력을 키우는 데 성공했고 그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주들은 손해를 입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하지만 법원은 두 회사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또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