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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니면 돼'…김정은의 보신주의 [기자수첩-정치]


입력 2023.06.22 07:00 수정 2023.06.22 07:00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사람은 밥을 먹고 크고,

과학은 실패서 솟구친다"더니

김정은 발언과 현실은 정반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tv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대면했던 한 인사는 김 위원장의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북한 관료들이 업무에 적극성을 띠기보단 보신주의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보신주의는 '책임 안 지기'의 다른 말이다. 자리를 지키려면 성과를 내기보단 책임과 거리를 두는 편이 안전하다. 삐끗하면 아오지 탄광으로 가야 하는 북한 사회에선 더더욱 그럴 법하다.


북한 당국이 지난달 31일 서해상에 추락한 군사정찰위성의 책임을 일선 간부들에게 떠넘겼다. 추락 당일 대외적으로 신속히 실패를 인정한 것과 달리, 대내적으론 관련 사실을 함구해 북한 당국이 어떤 수습책을 꺼낼지 주목되던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위성 발사는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상반기에 직접 챙겨온 거의 유일한 이슈였다. 백두혈통 딸까지 대동해 위성 발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만큼, 담당자들의 어깨는 무거웠을 것이다.


한국 누리호 성공에 자극을 받아 서둘렀든, 자체 계획에 따라 예정된 일정에 발사했든, 김 위원장의 상반기 업적으로 위성을 내세우려던 계획은 어그러졌다. 김 위원장이 상반기 성과를 되짚고 하반기 정책 노선을 결정하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침묵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김 위원장은 2가지 선택지를 두고 고민했을 것이다. 우선 경제 목표 달성 실패를 인정했던 2021년처럼 위성 추락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선택은 책임 전가였다. 물론 과학기술 인력풀이 한정적이라는 점에서 "신랄한 비판" 이상의 조치는 삼간 모양새다.


한 번의 실패로 조리돌림당한 간부들은 두 번의 실패를 피하려 온갖 궁리를 다 할 것이다. 북한 당국이 '빠른 재발사'를 공언한 데다 김 위원장이 '위성 다각 배치'를 여러 차례 주문한 바 있어, 실무자로선 '안전지향적 접근'이 불가피하다. 새로운 기술을 과감히 시험하기보단 이미 검증된 기술을 최대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김 위원장은 "사람은 밥을 먹고 크고, 과학은 실패 속에서 솟구쳐 오른다"고 했다. 하나 북한은 정반대로 굴러가고 있다. 주민들은 '원수님' 치하에서 배를 곯다 스러지고 있고, 과학자들은 책임을 뒤집어쓴 채 주저앉고 있다.


김 위원장은 어떤가. 꽉 끼는 양복, 초췌해진 안색, 거칠어진 피부 말고 무엇을 감당하고 있나. 북한에서 보신주의에 가장 함몰된 인물은 다름 아닌 김 위원장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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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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