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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쇼트 시네마⑰] '앰부배깅', 탄생과 죽음의 경계에서


입력 2022.12.15 08:15 수정 2022.12.15 08:15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박정민 출연

OTT를 통해 상업영화 뿐 아니라 독립, 단편작들을 과거보다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그 중 재기 발랄한 아이디어부터 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메시지까지 짧고 굵게 존재감을 발휘하는 50분 이하의 영화들을 찾아 소개합니다.<편집자주>


ⓒ왓챠

의사인 민지는 86세 이숙자 환자가 생사를 오가자 앰부배깅(호흡을 유지하기 위해 기도 마스크 백을 짜주는 행위)을 시도한다. 민지는 사실 동생이 출산에 임박한 상태라 마음이 급하다. 선배 의사는 바쁘다면서 퇴근해야 하는 민지에게 앰부배깅을 부탁하고, 환자의 손자는 아무리 방송으로 찾아도 감감무소식이다.


후배에게 잠시 앰부배깅을 부탁한 민지는 병실을 나서는데, 환자 보호자를 찾겠다며 나간 간호사는 식사를 하고 있다. 민지는 자신의 상황은 고려해 주지 않고 각자의 일을 보는 사람들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결국 딸이 도착한 후 이숙자 환자는 숨을 거둔다. 민지는 어떻게든 호흡을 늘려보려 최선을 다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유족의 울음 소리가 울려퍼지고, 민지는 엄마로부터 동생이 아이를 낳았다고 전화를 받는다. 수화기 너머로 아이의 힘찬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후 그토록 방송으로 찾던 이숙자 환자의 손자로 보이는 남자가 등장한다. 남자는 할머니 병실을 찾아왔지만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문의한다. 환자의 이름이 어떻게 되냐고 묻는 남자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할머니의 이름을 몰랐던 것이다. 남자는 태어난 순간부터 할머니를 할머니라고 불러왔을 뿐이다. 할머니의 이름을 모르니 '이숙자 환자 보호자분은 빨리 병실로 오라'고 반복해도 그는 자신을 찾는 것임을 몰랐다.


영화는 탄생과 죽음이 교차하는 병원에서, 일상적이면서 비인간적인 순간들을 보여준다. 죽음을 앞둔 환자를 두고 밥을 먹으러 가는 간호사, 위급한 할머니를 찾아온 병원에서 자신의 업무에 바쁜 손자, 엄마의 임종 날 늦어버린 딸, 그리고 환자를 살리는 직업을 가졌지만, 자신의 일을 우선시한 의사 민지까지, 인간의 이기심들이 이 병원에 쉴 새 없이 교차한다. 병원이 아닌 보통날이었다면 이들의 행위는 이렇게까지 이기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돌아간다. 자신의 이름도 모르는 손주를 가진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이제 막 손자의 탄생을 맞이한 할머니는 어느 때보다 감격스럽다. 러닝타임 23분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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