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입다 온라인 투표 부쳤다가 부결
'당원 뜻' 빙자 사당화 시도에 제동
"'거수기'처럼 통과 기대했었나…
'사당화 진영'의 오만함이 느껴졌다"
'나치당' '히틀러'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던 권리당원 전원투표 관련 더불어민주당 당헌 개정안이 중앙위원회의에서 극적 부결됐다. 사당화(私黨化) 시도에 제동이 걸리는 한편, 향후 '민주회복 진영'이 자신감을 갖고 당내 노선투쟁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민주당 중앙위원회는 24일 온라인투표에 부쳐진 당헌 개정안을 부결했다. 함께 상정된 의장·부의장 선출의 건과 강령 개정안은 무리없이 의결됐으나, 당헌 개정안만은 재적 중앙위원 566명 중 찬성이 268명으로 47.3%에 불과해 부결됐다.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부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찬성이 많았는데도 재적 과반수 의결 요건을 못 갖춰서 부결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당헌 개정안 부결을 단순히 중앙위원의 투표 참여 부족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함께 상정된 의장·부의장 선출의 건과 강령 개정안이 여유 있게 의결된 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헌 개정안을 향해 기권이라는 형태로 중앙위원들의 반발이 표출된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당헌 개정안은 권리당원 전원투표를 전당대회보다도 상위의 의사결정기구로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를 변경하려는 시도였다. 평소 '여의도의 마음과 당원의 마음이 다르다' '당원투표는 많이 할수록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이재명 의원의 의중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를 변경하는 중차대한 내용인데도 비대위와 당무위를 연이어 통과할 때까지 전혀 알려지지도 않았다가 대뜸 중앙위에 상정됐다. 이러한 과정을 보면 '확대명(확실히 당대표는 이재명)' 기류를 타고, 당내 일각의 사당화 시도에 가속도를 붙이려 한 의도가 읽힌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이처럼 중대한 내용을 찬반토론조차 불가능한 온라인 투표에 바로 부쳤다는 점에서 '사당화 진영'의 오만함이 느껴졌다"며 "중앙위가 '거수기'처럼 당헌 개정안을 통과시켜줄 것이라고 사당화 진영이 생각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도 "반발이 예상됐더라면 중앙위를 대면 방식으로 소집해 공기를 읽으면서 '심상치 않다' '부결 가능성이 있다' 싶으면 수정안을 만들었을 것"이라며 "그런 준비조차 없이 통과를 낙관하고 비대면으로 중앙위를 소집했다는 것은 당이 이미 특정 진영의 뜻대로 좌지우지 된다는 마음가짐이 바탕에 깔려있던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중앙위에서 당헌 개정안이 부결된 직후 민주당은 긴급 비대위원회의를 소집했다. 비대위 논의 결과, 권리당원 전원투표를 최상위 의사결정기구로 하려는 당헌 제14조의2 개정은 이번에는 단념하기로 했다.
대신 △부정부패 혐의 기소 당직자의 직무정지 해제권한을 당무위에 부여 △예비당원제 폐지 △비대위 체제로의 전환 근거규정 마련 △시도당위원장연석회의의 상설기구화 △인재(영입)위원회·소상공인위원회·탄소중립위원회의 상설위원회화 △경선불복 탈당자 복당 불허기간 10년에서 8년으로 단축 등의 내용을 담은 당헌 개정안은 재상정하기로 했다. 이미 토론·숙의를 거쳐 절충안이 마련돼 특별한 당내 이견이 없는 내용들이다.
신현영 민주당 대변인은 "일사부재의 원칙에 따라 기존 원안을 다시 (당무위에) 올릴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25일 오후 3시에 당무위, 26일 오전 10시에 중앙위가 소집된다. 오는 28일 전당대회가 열리기 때문에 그 전에 중앙위 의결까지 마치기 위해서는 더 이상의 논란 촉발은 불가능하다. 결국 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를 '권리당원 전원투표'로 하려는 시도는 현 '우상호 비대위'에서는 일단 좌절된 셈이다.
'전당원투표' 최고기구 시도 일단 단념
문제조항은 빼고 개정안 재상정하기로
'확대명'에 체념하던 당내 분위기 일변
'민주회복' 노선투쟁 계속할 동력 확보
통상적으로 '요식 절차'로 여겨지는 중앙위에서의 상정 안건 부결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기대하지 못했던 정치적 승리에 당내 민주주의와 '민주당다움'의 회복을 주장하는 '민주회복 진영'에서는 반색하는 분위기다.
박용진 의원은 중앙위 부결 직후 긴급히 국회 기자회견장을 찾아 "솔직히 말씀드리면 가결(을 전제하고) 입장문을 쓰고 있었는데, 부결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오늘 중앙위 부결 결과는 '민주당 바로세우기'에 매우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민주당 안에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투표 결과"라며 "국민의 상식,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이런 것들에 대한 우리 중앙위원들의 확고한 인식을 보여준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전날 '권리당원 전원투표'를 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로 변경하려는 시도에 대해 독일 나치당과 독재자 히틀러의 사례까지 원용하며 앞장서서 반대했던 윤영찬 의원도 이날 중앙위 극적 부결에 환영의 의사를 표시했다.
윤영찬 의원은 부결 직후 "중앙위원들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하며 이번 일이 현재 우리 당내 민주주의와 소통의 방향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당의 헌법을 바꾸는데 대부분의 중앙위원들이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가 제대로 된 토론 한 번 없이 투표에 참여했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절차적 민주주의와 멀어져 있는지를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한창 진행 중인 민주당 8·28 전당대회는 오는 27일 서울·경기 순회경선과 28일 본대회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날 현재 이재명 의원이 권리당원 누적득표율 78.4%이며, 지난 14일 발표된 1차 국민여론조사에서도 이 의원이 82.5%를 획득해 당대표 선출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번 '우상호 비대위' 체제에서는 뜻이 꺾였을지라도 향후 새로이 수립되는 지도체제에서 '권리당원의 의사'를 끌어들여 당무를 전횡하려는 당내 일부 세력의 사당화 시도가 계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중앙위에서의 극적 부결은 '확대명' 기류 속에서 체념하고 있던 당내 인사들에게 새로운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 특정 세력의 독주에 제동을 건 선례가 생기면서, 새로운 지도체제가 수립되더라도 민주당의 당내 민주주의와 '민주당다움' 회복을 바라는 인사들이 한데 뭉쳐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며 노선 투쟁을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박용진 의원이 중앙위 부결이 오는 27일 수도권 순회경선과 28일 대의원 투표의 반등 요인으로 작용할 것 같냐는 질문에 대해 "내가 단순히 전당대회에서 표를 얼마나 얻을 것이냐의 문제가 아니다"며 "선거 유불리나 영향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답한 것은 이러한 맥락이다. 당장 눈앞의 전당대회에서의 득실이 문제가 아니라, 새 지도체제 수립 이후에도 '노선 투쟁'을 계속할 동력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박 의원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상황이었는데 중앙위원들의 높은 정치적 의식과 인식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감탄하고 놀랐다"며 "노선 투쟁과 정체성 논쟁을 하겠다고 말씀드렸던 것에 충실한 결과"라고 자평했다.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된 당직자의 직무정지 해제 권한을 당무위에 부여한다는 당헌 제80조 개정안은 비대위에서 마련한 절충안에 비(非)이재명계도 어느 정도 동의를 했기 때문에 25일 당무위, 26일 중앙위 재상정 과정에서 큰 논란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날 중앙위에서 부결된 당헌 제14조의2 개정안을 누가 어떤 의도로 왜 '깜깜이' 절차를 통해 추진했는지에 대해서는 비이재명계의 엄중한 문제제기와 공세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25일 열릴 의원총회에서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