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인하 8개월, 소비자 체감 안 돼
국제유가 상승보다 정유사 공급가 더 올라
유류세 인하분 제대로 반영한 곳 없어
정부가 지난해 유류세 인하를 시작한 지 정확히 8개월이 지났다. 지난해 11월 12일 20% 인하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 5월에는 인하 폭을 30%로 키웠고, 지난 1일부터는 인하율을 7%p를 늘려 법정 최대 폭으로 확대했다.
정부가 8개월 동안 유류세를 37%까지 낮췄음에도 시장 가격은 오히려 올랐다. 국제유가가 지속 상승한 탓도 있지만 국내 정유사 공급가와 주유소 판매가를 8개월 전과 비교·분석해 보니 숨은 이유가 있었다. 국내 정유사들이 유류세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국제유가 상승분 이상으로 가격을 올린 것이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유류세를 처음 인하한 지난해 11월 12일 당시 주유소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ℓ)당 휘발유 1807월, 경우 1602원이었다. 주유소에 유류세 인하 효과가 적용되는데 2주가량 걸린다는 점을 고려해 11월 26일 가격을 살펴보면 휘발유 1683원, 경유 1508원이다. 유류세 인하 2주 동안 휘발유 124원, 경유 94원 내린 셈이다. 인하율로는 휘발유 6.9%, 경유 5.9%다.
같은 기간 정유사에서 공급하는 가격은 휘발유 146원, 경유 113원 내렸다. 주유소 판매가격 인하 폭보다 20원 많다. 11월 2주 ℓ당 1706원이던 휘발유는 11월 4주 1560원으로, 같은 기간 경유는 1498원에서 1385원으로 낮아졌다. 휘발유 8.6%, 경유 7.2% 떨어지면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당시 국제유가도 하락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애초부터 유류세 인하 효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정유사가 석유를 수입하고 정제하는데 보통 2~3주 정도가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11월 12일부터 유류세 인하를 적용받는 석유는 10월 26일께 수입한 것들이다.
10월 26일 기준 브렌트유는 배럴당 86달러, 서부텍사스유는 85달러였다. 유류세 인하가 시작된 11월 12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82달러,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81달러였다. 브렌트유와 WTI 모두 4달러(4.7%) 하락했다.
8개월이 지난 현재도 비슷하다. 국제유가가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정유사 공급가가 높아지면서 유류세 인하 효과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심지어 주유소 판매가 인상보다 정유사 공급가 인상 폭이 더 큰 경우도 있어 사실상 유류세 인하 효과를 정유사가 독점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11일 현재 전국 주유소 평균 판매가격은 ℓ당 휘발유 2091원, 경유 2131원이다. 유류세 인하 효과가 실제로 처음 적용된 지난해 11월 26일보다 휘발유 408원(24%), 경유 623원(41%) 올랐다.
정유사 공급가는 지난달 마지막 주 기준 휘발유 2029원, 경유 2108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보다 휘발유 469원(30%), 경유 723원(52%) 올랐다. 주유소 판매가격 상승률보다 정유사 공급가격이 각각 6%p, 11%p 높은 것이다.
이는 국제유가 상승 폭을 웃도는 수치다. 국제유가는 지난 8개월 사이 배럴당 WTI 30달러(35%), 브렌트유 33달러(38%) 올랐다.
결과적으로 지난 8개월 동안 국제유가가 35%가량 오를 때 주유소 판매가격은 휘발유 24%, 경유 41% 올랐다. 반면 정유사 공급가는 휘발유 30%, 경유 52% 상승했다. 그 사이 37%까지 확대한 유류세 인하 효과는 사라졌다.
소비자단체, 유류세 효과 분석 나서
유류세 인하 효과를 정유사가 사실상 독식했다는 사실은 소비자단체 조사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2일 에너지·석유시장 감시단 ‘e컨슈머’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 가운데 99% 이상이 정부 유류세 인하 폭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e컨슈머는 오피넷 자료를 토대로 유류세 인하 전인 지난해 11월 11일과 유류세 30% 인하 뒤인 지난달 18일 전국 1만 792개 주유소 기름값을 비교 분석했다.
분석 결과 국내 휘발유 가격은 유류세 인하 뒤 7개월 1주일 동안 ℓ당 평균 294.52원 올랐다. 같은 기간 국제 휘발유 가격은 ℓ당 420원 상승했다. 이 과정에서 적용된 유류세 인하액은 247원이다. 국제 휘발유 가격 상승분에서 유류세 인하액을 빼면 173원이 남는다. 이는 순수한 유가 상승액이 된다.
하지만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평균 294.52원 인상됐다. 유류세 인하를 적용한 금액보다 약 121원 높다. 전국 1만792개 주유소 중 휘발윳값 인상 폭이 173원 미만인 주유소는 81개로 0.75%에 그쳤다. 173원보다 많이 인상한 주유소는 1만710개로 99.24%였다.
같은 경윳값도 마찬가지다. 유류세 인하분이 온전히 반영됐다면 국내 경윳값 인상분은 384원을 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전국 경윳값은 평균 507.25원 올랐다. 1만 792개 주유소 가운데 38곳(0.35%)만이 ℓ당 384원보다 적게 올렸고, 나머지(99.65%)는 384원보다 높게 인상했다.
특히 e컨슈머가 정유사별 가격 인상분을 따져본 결과 휘발유를 173원 이상 인상한 주유소 비율은 SK에너지 98.27%, GS칼텍스 99.73%, 현대오일뱅크 99.48%, S-오일 99.56%로 조사됐다. 특히 자영·농협·고속도로 알뜰주유소는 정부로부터 세액감면 등 재정 지원을 받으면서도 휘발유와 경유 모두 국제유가 인상분과 유류세 인하분의 차액보다 많이 인상했다.
이서혜 e컨슈머 연구실장은 “주유소 재고 소진 기간은 1~2주이기 때문에 7개월 간격의 가격 비교 결과를 두고 유류세 인하 반영에 시간이 걸린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국제유가가 오르는 시기 정유사와 주유소의 가격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유사와 주유소가 마진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휘발유보다 마진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경윳값 흐름으로 볼 때 정유사 마진이 큰 폭으로 늘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정유사가 유류세 인상 효과를 사실상 독점한다는 지적에 정부는 정유사 가격 담합을 조사하기로 했다.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와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합동점검반을 구성해 정유 업계 담합 등 불공정 행위 여부를 점검하고, 주유업계에 대한 현장점검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합동점검반을 통해 정유사가 유류세 추가 인하분을 제대로 반영했는지, 이 과정에서 정유사 간의 담합은 없었는지 등을 확인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