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한 사람으로선 천운이었다…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는 느낌이라 좋았다.”
“너무 떠 있지 않으려 노력 중…평생 직업을 삼으려고 하는데. 한, 두 작품 잘됐다고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배우 최영준은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하게 된 것을 ‘천운’이라고 표현했다. 시청자로서 ‘인생 드라마’를 만난 기쁨은 물론, 호식을 통해 삶의 애환을 표현한 것도 만족스러웠다. 여기에 평생 함께 갈 친구 박지환을 만난 것까지. 최영준에게 ‘우리들의 블루스’는 작품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 됐다.
최근 종영한 tvN 주말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를 배경으로, 삶의 끝자락, 절정 혹은 시작에 서 있는 모든 사람들의 달고도 쓴 인생을 응원하는 드라마다. 최영준이 이 드라마에서 딸 영주를 홀로 키우는 살갑고 정 많은 아버지 호식을 연기했다.
고등학생 딸이 임신을 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큰 위기를 겪는 아버지의 감정을 연기하는 것도 물론 특별한 일이었지만, 최영준은 사람을 향한 노희경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담긴 이 드라마의 ‘착한 매력’에 가장 먼저 만족을 했다.
“참여한 사람으로선 천운이었다. 이런 나이 든 배우에게 언제 이런 기회가 오겠나. 행복했다. 요즘 자극적이고, 막장인 드라마가 많다. 이렇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많지 않다. 1회를 보고 ‘어이없네’라고 생각했다. ‘지금 끝난다고?’라는 생각이 들 때 끝이 나더라.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는 느낌이었다. 자극적이지 않고.”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작품에서 대다수의 배우들은 능숙한 제주 사투리 연기를 통해 작품에 생동감을 부여했다. 최영준 또한 유튜브 영상 등을 참고하며 사투리를 연습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사투리가 그 지역 정서를 담아내는 하나의 장치였던 만큼 제주 문화와 정서를 대사 안에 담아내기 위해 거듭 신경을 썼다.
“사투리는 처음에 훨씬 더 진하게 쓰여 있었다. 연습해서 가지고 오면 연변 말을 하고 있더라. 연변과 강원도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감수하시는 선생님이 타지 사람은 제주 말을 못 해도 제주 사람은 타지 말을 한다고, 편하게 해도 된다고 하셨다. 또 하나 합리화를 한 건 딸을 키우는 아빠이니, 사투리가 좀 덜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유튜브로 (사투리) 리뷰를 찾아봤었다. ‘이렇게 써도 된다’, 또는 ‘이 지역 사람들 같다’는 평이 있었는데, 그런 평이 오히려 더 좋았다.”
딸의 임신 사실을 알고 갈등하는 과정을 연기하는 것도 물론 쉽지는 않았다. 딸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됐을 때의 충격부터 결국 아이를 책임지겠다는 딸의 선택을 응원해주기까지. 이 과정에서 호식이 느끼는 격한 감정들을 표현해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최영준은 이러한 고민의 과정들을 거칠 수 있어 오히려 행복함을 느꼈다.
“격한 감정씬들은 일주일 정도에 걸쳐 다 찍은 것 같다. 내내 괴로운 상태, 답답한 상태로 있어야 해서 그런 게 힘들긴 했다. 하지만 그것도 배우만 할 수 있는 일이지 않나. 실제로 있지는 않은 사람의 이야기지만, 그런 감정과 마음을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하는 게 오히려 행복인 것 같다. 배우들이 받는 돈은 다 고민 값이라고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것도 내 일이니까.”
노 작가의 섬세한 대본도 도움이 됐다. 사람의 마음을 다양한 시선에서 들여다보는 노 작가의 역량에도 감탄을 했지만, 섬세한 지문으로 캐릭터의 마음을 단번에 이해하게 하는 필력에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들의 블루스’가 최영준에게 더욱 특별할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다.
“대본을 소설을 보는 느낌으로 봤다.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 정말 문학책을 보는 것 같았다. 시집 같기도, 에세이 같기도 했다. 너무 영광스러웠다. 지문이 다섯 문장 정도 된다. 그걸 읽는 매뉴얼까지도 있을 정도다. 처음에는 어렵기도 했는데, 첫 지문은 첫 번째 문장, 두 번째 지문은 두 번째 문단 이런 식으로 읽어나가는 방식이 있었다. 되게 세밀한 작업을 해놔야 할 수 있는 대사들이 꽤 있었다. 그럼에도 ‘대사는 나오는 대로, 너네 마음대로 읽으’라고 해주신다. 주옥같은 대사를 써두고도, 힘을 주지 말라고 하셨다.”
긴 시간 걸쳐 갈등을 하다가, 결국 사돈이 된 인권(박지환 분)과의 호흡 또한 특별했다. 연기적 호흡도 물론 찰떡같았지만, 자신에게는 없는 ‘순수함’을 가진 박지환의 매력에 제대로 매료가 됐다. ‘평생 갈 친구’를 만난 것도 ‘우리들의 블루스’가 최영준에게 남긴 또 하나의 성과였다.
“전화해서 ‘내 사랑’이라고 부른다. 이 작품을 하면서 그만큼 가까워진 거다. 미팅 날 만나서 당장 싸우는 장면을 리딩하고 집에 갈 때 ‘너무 좋았다’고 생각했다. 같이 하면 재밌게, 잘, 좋은 것들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하게 돼서 좋았다. 예전부터 물론 ‘이 작업(연기)은 재밌는 거다, 내가 행복해야 좋은 연기가 나온다’라고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는데, 지환이는 이미 그렇게 연기를 하고 있더라. 그런 부분들을 많이 배웠다. 지금도 뭔가가 어려우면 지환이에게 전화를 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곤 한다. 나한테는 좋은 선배이자 친구가 생겼다. 평생 같이 오래, 길게 같이 가고 싶은 친구가 생긴 거다.”
최영준에게 많은 것을 남긴 ‘우리들의 블루스’지만, 그럼에도 들뜨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평생을 해야 하는 연기인 만큼, 특정 경험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롱런’을 꿈꾸는 최영준이 또 어떤 다채로운 캐릭터로 즐거움을 선사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너무 떠 있지 않기 위해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진행하고 있는 일정들이 있어서 열심히 마무리를 해야 하는 것도 있다. 현장에 가도 ‘우리들의 블루스’ 이야기를 많이 해 주고 하신다. 그럼에도 휘둘리지 않으려 애를 많이 쓰고 있다. 한, 두 해 하고 말 것도 아니고. 평생 직업을 삼으려고 하는데. 한, 두 작품 잘됐다고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