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국가 모아 '美 견제' 中 야망, 일단 실패

中-남태평양 10개 국, 안보·경제 협의체 논의

일부 국가 이견 표출

미크로네시아 반대 "최악경우 세계대전 초래"

中 "개발도상국 오랫동안 옹호해온 것뿐"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왼쪽)이30일 피지 수바에서 프랭크 바이니마라마 피지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AP/뉴시스

중국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맞서기 위해 남태평양 10개 국가들과 안보·경제 협의체를 확대 구상하겠다는 계획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일부 국가들이 지역 안보가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은 이들 도서국과의 논의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AP통신, 알자지라 등은 중국이 30일(현지시간) 남태평양 10개 국가와 경제, 안보 협력 관계를 맺는다는 내용을 담은 '포괄적 개발 비전' 협정을 체결하려 했지만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날 피지에서 제2차 중국-태평양 도서국 외교장관회의를 주재했다. 참석 국가로는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사모아, 피지, 통가, 바누아투, 파푸아뉴기니, 니우에, 쿡제도, 미크로네시아 등이다.

포괄적 개발 비전은 남태평양 10개국과 경제부터 안보까지 협력 관계를 맺고 확대한다는 중국의 구상이 담겼다. 협정안에는 10개 도서국에 수백 만 달러의 경제적 지원과 자유무역협정(FTA), 참치 어획과 같은 자원 공동개발 등의 방안이 포함됐다. 또 중국 공안을 파견해 해당 국가의 경찰을 훈련한다는 내용도 있다.

이를 두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4박 5일간 아시아 순방과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출범에 중국이 맞대응 행보를 보인다는 해석이 나온다.

CNN에 따르면 미국, 호주, 일본, 뉴질랜드가 지난달 솔로몬제도와 중국이 체결한 안보 협정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왕 부장의 남태평양 순방 소식이 전해지며 호주는 피지에 외무장관을 급파하는 등의 조치에 나섰다. 또 지난 27일 미국 백악관은 피지의 IPEF 가입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중국은 이날 회의에서 태평양 도서국들의 다자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AP는 입수한 문서를 통해 왕 부장은 10개국이 사전에 작성된 합의서를 승인하기를 희망했지만 원했던 합의를 얻을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왕 부장과 프랭크 바이니마라마 피지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회견장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알 자지라는 회의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는 지에 대한 세부사항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각국이 중국의 계획을 지지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고 풀이했다.

바이니마라마 피지 총리는 "항상 그렇듯, 우리는 새로운 지역 협정에 대한 모든 논의에서 국가 간 합의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일부 남태평양 도서국가가 중국과의 관계 강화에 이견을 표출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앞서 데이비드 파누엘로 미크로네시아 대통령이 다른 태평양 도서국 지도자들에게 보낸 서한에 따르면, 미크로네시아는 이 협정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파누엘로 대통령은 이 계획이 불필요하게 지정학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지역 안정을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누엘로 대통령은 "중국의 제안이 언뜻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남태평양 도서국을 종속시키고 최소 신냉전 시대를, 최악의 경우 세계대전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AP는 중국이 이날 대규모 다자간 협정에 대한 계획을 실패했지만, 왕 부장의 순방 기간 동안 매일 태평양 국가를 방문하며 소규모 양자 협정을 이끌어냈다고 보도했다.

앞서 왕 부장이 27일 키리바시를 방문하며 키리바시 정부는 양국이 경제부터 건설 및 방재·인프라·관광 분야에 이르는 10개 협정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키리바시 정부는 협정의 세부 사항을 제공해달라는 AP 요청에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지난달 솔로몬제도에서 중국은 현지 물류 보급 확보, 중국 함정과 중국군 부대를 파견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안보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날 왕 부장은 기자 회견에서 "일부 국가는 중국이 태평양 섬 국가들을 지원하는데 적극성을 띄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며 "중국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철도 건설을 도운 1960년대부터 태평양과 전 세계의 다른 개발도상국을 오랫동안 옹호해 왔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내 조언은 너무 불안해하지도 긴장하지도 말라는 것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왕 부장은 지난 26일부터 6월 4일까지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사모아, 피지, 통가, 바누아투, 파푸아뉴기니, 동티모르 등 8개국을 공식 방문한다. 피지는 4번째 순방국이며 통가, 바누아투, 파푸아뉴기니, 동티모르 방문 일정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