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정부가 당겨쓰면 ‘로맨스’ 국민이 당겨쓰면 ‘불륜’ [박상인의 마부작침]


입력 2022.05.25 07:00 수정 2022.05.25 05:40        박상인 기자 (si2020@dailian.co.kr)

신뢰잃은 무능 기재부…세금 대출엔 ‘당당’

아파트 사전 청약제…‘눈 가리고 아웅’식 행태

‘내로남불’식 사고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최근 적자 국채 없는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새 정부가 기존 추경과 다르게 53조원의 ‘초과세수’를 활용하는 것으로 추경재원을 대부분 마련하기로 하면서다.


여기서 말하는 초과세수는 2021년 세금을 많이 걷어 남아서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2022년 연말 기준 초과세수가 발생할 것으로 기대해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직은 없는 돈을 당겨쓰겠다는 정부의 세금 ‘대출’이라 할 수 있겠다.


이 같은 과정에서 두 가지의 문제가 대두됐다.


첫 번째는 나라 살림 사정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아야하는 집단 중 하나인 기획재정부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50조원 이상의 초과세수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무능’의 문제다.


이어 역대 최대치의 세수 오차율을 기록한 기재부가 추경 편성에서 추계한 53조원 규모의 초과세수는 과연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두 번째다.


만약 올해 하반기에 경기가 예상보다 좋지 않다면, 추경 재원이 부족하게 될 것이고 최악의 경우 적자 국채 없는 추경의 의미가 퇴색될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허풍은 아니다. 하지만 기재부는 이번 추계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세금을 당겨쓰는 것에 당당한 모습이다.


사전청약 상담하는 모습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이와 비슷한 불확실한 미래를 당겨쓰는 정부의 ‘대출’ 사례가 또 있다. 바로 아파트 ‘사전 청약제’다. 사전 청약제는 주택 수요를 제어해 가격을 잡겠다는 좋은 취지로 시작했다. 그러나 취지만 좋았다.


아파트를 지어야할 토지에 보상이 완료되지 않아 입주 시기가 늦어지고 이에 따라 물가와 각종 비용 등을 산정하지 못해 본 청약 때 분양가가 더 오르는 등의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만 믿고 있는 국민들은 언제 지어질 지도 모르는 아파트를 기다리며 하염없이 떠돌이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정부가 불확실함 속에서도 아파트 값을 막기 위해 짧으면 6년, 길면 10년 넘게 국민의 미래를 당겨다 쓰는 ‘눈 가리고 아웅’식의 행태인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사전 청약제 수정 움직임은 아직 없다. 오히려 치적 사업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이렇게 미래를 당겨쓰고 있는 정부가 오히려 당겨쓰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국민들의 ‘대출’이다. 특히 가계부채를 걱정하면서 개인별로 대출 총량을 규제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물론, 최근 금리 인상이 심화되면서 가계 대출 관리 측면에선 일부 규제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무주택, 1주택 실수요자들이 이미 올라버린 집값에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며 시간만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DSR 규제를 피해가기 위해 은행권에선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만기를 40년, 50년으로 늘리는 등의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국민들은 만기를 늘리면 부담해야하는 이자 총액이 늘어난다는 점을 알지만 방법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대출을 실행하고 있다. 반면 10~20년 이자를 더 받을 생각에 은행들은 함박웃음 일색이다.


정부가 아직 걷히지 않은 세금을 추계해 가져다 쓰고, 토지 보상이 끝나지도 않은 아파트를 사전 분양해 깜깜이 청약을 받는 것은 옳고, 가계 대출 관리 명목하에 본인 연소득의 40% 이상 대출을 하는 국민은 틀리다는 못된 심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당겨쓰면 ‘로맨스’고 국민이 당겨쓰면 ‘불륜’인 ‘내로남불’식 사고에서 반드시 벗어나길 기원해본다.

박상인 기자 (si2020@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박상인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