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상승 수출 호재·수입 악재 공식 깨져
국제 유가·원자재값 상승에 무역적자 확대
수입물가 증가로 국내 물가 부추길까 우려
추경호 부총리, TF 구성해 선제 대응 준비
정부가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상황에서도 신중한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 상승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재 추세대로 환율이 계속 상승할 경우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이 불가피하다며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19일 현재 원·달러 환율은 1270원을 오르내리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1300원 이상 상승할 수 있다고 예측한다. 환율이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하는 이유는 미국이 물가상승을 이유로 기준금리를 계속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병목현상 등으로 불안정한 세계 경제 상황에서의 안전자산 선호도 원인이다.
환율은 서로 다른 통화의 교환비율이다. 환율 상승, 즉 달러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은 우리 원화 가치의 하락을 의미한다. 1달러를 원화로 바꿀 때 더 많은 돈(원화)을 줘야한다.
이 때문에 환율이 상승하면 일반적으로 수출에는 긍정적이고 수입은 부정적이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기업 수입은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같은 양을 수출했을 때 외국에서 달러로 받는 돈은 같은데 원화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에 국내에서 원화로 바꿀 때 수입(환차익)은 그만큼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다른 국가와의 가격 경쟁력에서도 앞서게 된다.
반대로 수입 경우 환율이 오르면 원화 대비 더 비싸게 달러를 주고 물품을 사들여야 한다. 환율 상승이 수익 감소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이런 ‘공식’을 벗어난다. 국제 정세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이 치솟아도 수출 경쟁국인 일본(엔화)과 중국(위안화)도 약세라 경쟁력이 없다. 수입 측면에서는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충격이 두 배로 쌓인다. 환율 상승이 득보다는 실이 큰 상황이다.
환율 영향은 지표로도 확인된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까지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37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달 전체 무역수지 적자가 26억6000만 달러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이달에는 10일 만에 더 큰 적자가 난 셈이다.
업종별로 차이는 있다. 발주 계약을 달러로 하는 조선업계는 수익성 개선이 예상된다. 완성차와 반도체, 배터리 기업도 원화 가치 하락에 제품 가격 경쟁력 강화를 기대한다. 특히 현대·기아자동차 등은 가격 경쟁력 확보로 미국 내 판매량 호조를 내다보고 있다.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는 기업은 수익성 악화를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철강업은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아 생산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항공업계도 국제 유가 상승 등으로 실적 악화가 예상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거리두기 완화로 호황을 기대했던 해외여행 업계도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환율 상승이 수출에 호조이기는 해도 원자재 가격 고공 행진과 고유가 흐름은 이를 상쇄한다”며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국내외 금융 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달러 유동성을 늘리는 등 환율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일단 관망하는 상황이다. 환율이 어느 정도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섣부른 개입으로 시장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정부를 조심스럽게 만든다. 환율 상승이 우리나라만 국한한 것이 아니라 세계적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정부가 개입해도 효과가 미미하거나 일시적일 것이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볼 보는 것이란 의견도 있다.
다만 정부가 계속해서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특히 환율이 물가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취임 직후 ‘비상 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TF는 방기선 기재부 1차관(팀장)을 중심으로 기재부 차관보(부팀장), 경제정책국장, 국제금융국장, 국고국장, 대외경제국장, 예산총괄심의관, 조세총괄심의관 등으로 구성해 현 경제 상황을 살피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추 부총리는 “TF를 중심으로 실물경제와 금융·외환시장 등 경제 상황 전반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선제 대응 조치를 마련해 빈틈없이 관리하겠다”고 말했다.
관계 부처와의 공조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추 부총리는 16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조찬 회동을 하고 환율과 물가 관련 의견을 공유했다. 추 부총리는 회동 후 기자들에 “외환시장의 안정이 필요해 중앙은행과 정부가 긴밀히 공조해 나가기로 했다는 수준의 합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환율과 물가가 상승하면서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 카드를 고민하자 전문가들은 소비 둔화와 투자 위축 악순환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스태그플레이션(경제불황 속에 물가상승이 일어나는 상태)이 심화하고 있다”며 “물가상승에 따른 기준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인데 그 과정에서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성 교수는 “그런 불안이 외환시장으로까지 확산하는 상황”이라며 “문제는 현재 불확실성이 줄어들 것이라 기대하기 어렵다고, 오히려 불확실성이나 위험 요소가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미국이 내년 상반기까지 기준금리를 높이면 자본유출이 발생하고 환율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으니 그에 따라 인플레이션도 영향을 받는다고 봐야 한다”며 “내년까지 당분간은 물가상승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국내 경기와 물가 상황이 다소 나빠지더라도 무역수지를 회복하고 환율을 방어해 대외 균형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환율폭주③] 인플레 수출하는 미국...자이언트 스텝 쫓다 가랑이 찢어질라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