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0원선 오가는 환율…10년래 최고치
2009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
촉각 곤두세운 정부, 시장 개입은 ‘신중’
향후 전망 엇갈려…통화스와프 논의도
미국이 물가상승을 이유로 강도 높은 고금리 정책을 이어가면서 원·달러 환율이 치솟고 있다. 세계적인 달러 강세 흐름에 우리나라는 경제당국과 금융당국 수장이 회동까지 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대응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18일 현재 원·달러 환율은 1270원대를 오르내리는 중이다. 1100원 초반대를 유지하던 1년 전과 비교하면 16% 이상 상승했다. 10년 이내 최고치인 것은 물론이고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일시적으로 환율이 1995원까지 치솟았던 것과 2009년 세계 금융위기 때 기록한 1293원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수준이다.
환율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다. 미국이 자국 물가상승 억제를 위해 금리 인상과 긴축을 진행하면서 달러 가치가 상승을 불렀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이 계속되면서 안전자산인 달러화 수요가 많이 늘어나 환율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환율이 오르는 게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수출에서는 환율이 오른 만큼 추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마진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해운이나 항공 등 해외 수출입 운임도 마찬가지다.
수입 경우에는 반대다. 같은 제품을 더 비싸게 구매해야 한다. 국내로 들어오는 제품 가격이 높아지니 물가상승이 뒤따른다. 기업이나 정부가 달러로 빌린 돈에 대한 부담도 늘어난다.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 자본이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다.
이 때문에 정부도 최근 환율 추이에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지난 11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비상경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13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추 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참석하는 거시금융상황 점검회의를 열었다.
특히 지난 16일에는 추 부총리와 이 총재가 만나 환율 관련 정책 공조를 약속했다. 두 사람은 우리 경제가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주요국 통화 긴축 등 대외 불확실성 확대 등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크게 확대된 가운데,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고조되고 성장 둔화 가능성도 커진 위중한 국면이라는 상황을 공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추 부총리는 환율 상황에 대해 “(이 총재와) 외환시장 안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같이했고 앞으로 중앙은행과 정부가 긴밀히 공조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다만 두 사람 회동 이후 아직 환율 대응을 위한 정책적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달러화 강세가 세계적인 현상인 만큼 정책 개입 효과가 일시적으로 그치거나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분석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미국 정책 기조상 달러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예상 가능한 범위”라며 “아직까지는 예상 가능한 수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는 “아마 (추 부총리가) 아직은 우리 경제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이라고 판단한 게 아닌가 싶다”며 “현재 물가와 함께 가장 많이 신경 쓰는 부분이니까 필요한 때에 정책을 내놓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책 당국이 환율 방어에 신중론을 펼치는 가운데 전문가들 전망은 엇갈린다. 최근 환율 상승세가 주춤하면서 고점을 찍었다는 주장과 물가상승이 계속되는 만큼 환율이 최고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최근 장중 1290원대까지 오르면서 올해 고점 수준이 이미 확인된 것으로 보인다”며 “환율이 1290원대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유럽중앙은행 등의 긴축 의지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 경기 둔화 우려가 소화되면서 강달러 압력이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라졌다”고 분석했다.
반면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물가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몇 번 더 연고점을 찍을 수도 있다고 본다”며 “미국 물가가 전년동월대비 6%대 정도는 나와줘야 정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적어도 6~7월까지는 떨어지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환율이 치솟자 한미 통화스와프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통화스와프는 두 국가가 현재 환율(양국 화폐의 교환 비율)에 따라 필요한 만큼의 돈을 상대국과 교환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에 최초 계약 때 정한 환율로 원금을 재교환하는 거래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31일로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를 종료한 상태다.
김정식 연세대학교 교수는 “미국 금리가 더 높아질 수 있는 상황에서 환율이 급등하는 등 외환시장이 불안정한데 통화스와프가 있으면 외환시장이 안정될 수 있으니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추 부총리도 긍정적이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우리가 기축통화국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과 같은 기축통화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는 것은 외환·금융시장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언급했다.
반면 통화스와프가 실제 기대만큼 환율 방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최우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과거에) 한미 통화스와프가 체결되면 환율이 안정되기는 했는데 그건 공포를 안정화하는 것이지 실질적으로 들어오는 자금이 환율을 안정시키는 것은 아니다”며 “과거 상황과 비교했을 때 지금 통화스와프가 최우선으로 활용돼야 하는 외환위기를 방지하는 그런 절대적 역할은 아니다”고 말했다.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국제거시금융실장 또한 “장기적인 측면에서 안전망 구축이라면 모를까 단기적으로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환율폭주②] 수출·수입 손익계산 복잡…물가 자극할까 걱정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