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차례 추경 151조 ‘빚 폭탄’ 남긴 정부
인수위 50조원 추경 편성 요청은 거부
전문가 “재정 적자 책임 회피용” 비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요구한 2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에 기획재정부가 제동을 걸자 지난 5년간 국채 발행으로 차기 정부에 빚을 떠넘겨온 정부가 임기 말 재정 적자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22일 50조원 규모 2차 추경 편성 방침을 공식화했다. 인수위는 지난 24일 기재부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소상공인에 온전한 손실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2차 추경안을 조속히 국회에 제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손실보상 문제가 가장 시급하게 다뤄져야 한다”며 “50조원 추경은 당선인이 국민께 드린 약속으로 국민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힘을 드리고 손을 내미는 당위성에 대해 현 정부도 공감하고 지원해줄 것으로 믿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재부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2차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기재부 관계자는 “홍남기 부총리가 현 정부 임기 내 2차 추경을 제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사를 여러 차례 표명했다”며 “이는 대통령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 동안 추경을 모두 10차례 편성했다. 이 가운데 3차례는 일자리 창출과 일본 경제보복 대응 등을 이유로, 나머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 대응을 위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소상공인 지원이 목적이다. 10차례 추경으로 늘어난 예산은 151조원에 달한다.
정부는 그동안 추경을 편성하며 일부 초과 세수를 활용하기도 했으나 늘어난 예산 대부분을 적자 국채 발행으로 마련했다. 결국 문 정부 5년 동안 재정 적자는 280조원 이상 늘고 국가채무는 1075조원까지 증가했다.
그동안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국채 발행에 신중해야 한다는 언론과 전문가 지적에도 불구하고 경제 위기를 이유로 추경을 주저하지 않던 정부다. 늘어난 빚은 차기 정부가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빚 폭탄 돌리기’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그런 정부가 차기 정권 추경 요청은 단칼에 거절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2차 추경은 윤 당선인뿐만 아니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요구했던 내용이다. 윤호중 당시 원내대표는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 날인 지난달 22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추경이 충분하지 않다”며 “국민의 피해를 국가가 온전히 책임을 지기 위해 대선 이후 2차 추경도 신속히 추진하고 필요하다면 긴급재정명령도 동원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기재부가 이번에 추경 편성을 거부하자 곧바로 여당 내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박홍근 신임 원내대표는 28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민생보다 나라 곳간을 먼저 생각하는 경제관료의 고질적 문제”라고 꼬집었다.
박 원내대표는 “(기재부가) 국채 발행에 부정적인 윤 당선인과 손뼉을 맞추며 등 뒤에 숨으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윤 당선인에게 진정한 추경의 의지가 있다면 인수위는 그 내역과 규모, 지원방안을 국민께 제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추경 논란에 대해 정치적 해결이 필요한 때라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여전한 상황에 재정 지원은 속도전이 중요한 만큼 현 정부에서 추경 논란을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28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50조원 규모 추경을 한다면 국채 발행 불가피하다”며 “아마 현 (홍남기) 부총리께서도 적극적이지 않고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문제는 부총리가 풀 문제는 아니고 대통령과 당선자가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또한 “소상공인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국채는 발행하지 않겠다는 것은 솔직하지 않은 것”이라며 “국민적 합의를 통해 추경 편성 방식을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경제학 교수는 “재정을 염려하는 기재부 입장은 이해하나 2차 추경은 대선 전에 이미 예고했던 것이고, 실제 소상공인 상황도 여전히 매우 심각하다”며 “그동안 확장 재정을 고수하던 정부가 정권 교체기에 갑자기 돈을 쓰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여야 정치권이 사실상 합의한 상황에 기재부가 버텨봐야 정권이 바뀌면 어차피 추경 편성을 피할 수 없다”며 “차라리 이번 정부에서 코로나19 마지막 추경이란 각오로 끝까지 책임지는 게 더 나은 모습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