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명의로 송금해 은행 업무방해 혐의
1·2심서 징역 3년…대법원은 파기환송 판단
대법 "은행 직원 등 타인의 업무 관여 안 돼"
한도 제한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 명의로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을 나눠 입금하는 이른바 '쪼개기 송금'을 은행에 대한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2일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원심의 징역 3년 선고를 일부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춘천지법 강릉지원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A씨는 2020년 11월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부터 건당 30만원가량을 받기로 하고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해 피해자들을 만나는 '전달책' 역할을 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저금리 대출이 가능한데 이를 위해선 상환능력 확인이 필요하니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 바로 계좌 이체하라'는 말로 급전이 필요한 피해자들을 속이는 등 피해자 12명에게서 모두 2억3000여만원을 받아낸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은행들이 보이스피싱 범죄 차단을 위해 무매체 입금 거래 한도를 '1인 1일 100만원'으로 제한했다는 점이다. 자동화기기 무매체 입금을 하려면 입금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이에 보이스피싱 조직은 A씨에게 제3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목록을 보낸 뒤 A씨가 받아온 돈을 100만원씩 나눠 입금하게 했다.
1심은 피해 회복이 안 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일부 피해자에게 배상을 명령했고 2심도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A씨의 범행 가운데 100만원씩 '쪼개기 송금'을 한 행위가 은행을 상대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를 저지른 것으로 볼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됐다.
'위계'란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부지(알지 못함)를 일으키게 하고 이를 이용해 목적을 달성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컴퓨터 정보 입력 행위 역시 업무 담당자에 대한 위계일 수 있지만, 대법원은 그간의 판례에서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킨 상대방이 없는 경우에는 위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무매체 입금 거래가 완결되는 과정에서 은행 직원 등 다른 사람의 업무가 관여됐다고 볼 만한 사정은 없다"며 "거래 한도 제한을 피하기 위해 제3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1회 100만원 이하의 무매체 입금을 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행위는 업무방해죄에 있어 위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검찰은 이런 행위 역시 은행 업무에 현실적인 지장을 초래한 것이라며 업무방해 유죄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대검찰청은 유사 사건에서 처음으로 1심 무죄 선고를 뒤집고 2심 유죄 판결을 끌어낸 재판을 지난해 9월 우수 공판 사례로 선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