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격리 낙찰률 72.6%
40kg당 6만4000원대, 시장가 보다↓
“자동시장격리제 강제해야”
지난해 풍년으로 쌀값 하락을 우려해 시장격리를 요구하던 농민단체들이 정작 정부의 시장격리가 시작되자 격리 시기와 방식을 문제 삼으면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쌀 시장격리, 20만t 우선 시행됐지만 역공매입찰 논란
쌀값 안정과 관련해 30여 년간 일부 쌀값을 보존해주던 목표가격제는 변동직불제가 폐지되면서 사라졌고 대신 쌀 시장격리제도가 2020년 도입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변동직불제를 폐기하고 대안으로 이른바 ‘쌀 시장격리제’를 도입하면서 쌀 수급 안정방안으로 일정 기준의 초과 생산물량을 시장에서 자동 격리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생산량이 수요량 3% 이상 초과하면 격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지난해 추수를 끝낸 상황에서 농민들은 쌀 생산량이 전년 보다 증가해 쌀값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만큼 30만t을 시장에서 격리해야 한다면서 정부를 압박했다.
이에 정부는 현지 생산량과 판매가격을 모니터링하고 있어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을 보였다.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쌀 과잉생산에 따른 시장격리는 수급 상황뿐 아니라 시장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은 모니터링하고 있다"며 "혹시나 그 과정에서 필요한 시기가 되면 즉시 격리하겠다”고 했다.
결국 올 들어 지난달 말 농식품부는 2021년산 쌀 20만t에 대한 시장격리 매입 절차를 추진한다고 결정하고 초과생산량 27만t 중 20만t을 우선 시장격리한다고 알렸다.
매입대상은 농가·농협·민간 산지유통업체(RPC)가 보유하고 있는 2021년산 벼이며, 도별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하겠다고도 공표했다.
이는 정부가 시장격리를 단행하면서 수매방식을 역공매 입찰제로 설계한 데 따른 것으로, 입찰에 응해 낙찰되려면 정부가 정해 놓은 입찰예정가격 이하로 낙찰가를 써야 하고, 그중에서도 가장 최저가격을 써낸 농가부터 낙찰되는 방식이다.
지난 8일 인터넷조곡공매시스템을 통해 3시간 동안 진행된 2021년산 시장격리곡 입찰 결과는 20만t 중 14만5280t이 낙찰돼 72.6% 낙찰률을 기록했다. 농협경제지주에 따르면 낙찰업체 수 198곳, 낙찰금액은 3215억원, 평균 낙찰가는 40kg 1포대 기준 6만3763원이었다.
정부의 이 같은 시장격리에 힘을 보탰던 여당 의원들은 개정된 양곡관리법에 쌀값 안정장치인 ‘자동시장격리제가 실현됐다’며 정책활동 성과 홍보에 적극 나섰고, 대선을 앞둔 선거전을 의식한 듯 거리 곳곳에 현수막이 나붙기도 했었다.
농민단체들 반발, “최저수매 100t, 예정입찰가도 공개 안돼, 개선돼야”
하지만 이를 두고 농민단체들은 “정부가 두 달이나 늦은 12월 말에 시장격리를 발동했으며, 방식 또한 역공매 입찰방식으로 쌀값을 안정시켜 적정한 소득을 보장해야 할 정부가 최저가입찰 방식으로 지역 간, 농민들 간의 갈등을 불러일으킨다”며 거세게 비판했다.
농민단체들은 “역공매 수매는 농민 참여가 보장된다지만 최저 수매단위가 100t이고 예정입찰가 아래로 써내야만 낙찰되는 구조”라면서 “농민 스스로 쌀값을 포기하게 만드는 제도로, 쌀값을 안정시켜야 할 시장격리가 오히려 쌀값을 낮추게 된다”고 주장했다.
15일 이들은 세종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장격리 방식인 역공매 입찰방식의 개선을 촉구하면서 톤백 수십 개에 벼를 싣고 와 농식품에 앞에 적재하며 반발했다.
또한 각 지역 농민들은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최소한 정부에 예정입찰가를 공개할 것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2차 시장격리를 앞두고 있다며 입찰예정가격을 공개하지 않고 경매를 진행해 ‘깜깜이 공매’라는 논란을 불렀다.
이들 농민단체들은 입찰예상가격 공개, 100t 단위 최소응찰 방침 철회, 2021년산 쌀 초과생산량 27만t 전량 수매, 쌀 시장격리제 강제 의무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시장격리가 강제 규정이 아닌데다 시기와 물량, 방법 모두 정부 주도로 하다보니 입법 취지인 쌀값 안정과 농가소득 안정을 달성할 수 없는 구조로, 양곡관리법의 개정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그 근거로 “낙찰결과를 보면 65%가 농협 물량으로, 결국 정부가 책임져야 할 쌀값 하락의 부담을 농민과 농협이 떠안은 상황”이라며 “최소한 수확기 산지 평균가격이 보장돼야 하는데 이번 낙찰가는 시세 사격에도 미치지 못했다”라고 제시하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시장격리제 논의 때도 수급량계측·발동기준가격·적절물량 등 문제점 도출돼
쌀 자동시장격리제를 두고는 정부와 정치권 등 변동직불제 폐지 전부터 법제화 필요성을 현안으로 제시하고 토론과 세미나를 여는 등 논의를 거듭한 바 있다.
지난 2019년 쌀 자동시장격리제 입법화 필요성을 두고 열린 국회 세미나에서 당시 농식품부 식량정책관은 “직불제를 개편 중으로, 개편 시 벼 재배면적 감소로 쌀 가격등락 폭은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농업인 단체와 대규모 농가의 경우 수확기 쌀값 하락을 우려하며 쌀 수급안정장치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고 거론했다.
이어 “필요성은 있으나 시장격리가 제도화되면 WTO 규정과 쌀 생산 과잉 지속 우려에 대한 사전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전문가 그룹에서도 제도적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법제화는 매우 강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어 철저한 검토와 분석을 거쳐 신중히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도 피력됐다.
WTO 농업보조금 관련 국제규율을 분석해야 하며, 정부 시장격리를 통한 가격지지는 감축대상정책으로 분류되고 있어 우리나라가 줄 수 있는 전체 농업부문 감축대상 보조상한(AMS)이 1조5000억원 규모라는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는 것으로, 자동시장격리제로 시장격리 비용까지 포함되면 정책적 신축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도 지적했다.
또한 법제화가 되더라도 매년 큰 변화를 보이는 국내외 쌀 수급관련 여건과 동향을 볼 때 자동격리제 시행을 위한 정확한 수급물량 계측과 격리를 위한 합리적 발동기준 가격, 적정 시장격리물량 산정 등 난제가 많다고도 우려하면서 다양한 측면에서의 사전준비를 시사했다.
이 같은 여러 지적에 정부도 고심 끝에 생산비연계 방식의 직불제 도입을 추진했고 큰 의미에서 공익형직불제를 시행하게 된 것이다. 또 쌀에만 적용되던 한계를 다른 주요 농작물까지 확대하면서 정책 대상을 늘려간다는 의미도 부여했다.
또 다른 현장 의견으로는 쌀이 남아도는 구조적 공급과잉 상황의 해소를 위해 선제적이고 예측가능하며 확실한 쌀 수급과 가격안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제조적 장치로 쌀 자동시장격리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다만 본격 수확기 이전에 생산량과 신곡수요량을 정확히 추정해 실시하고 전문가가 참여하는 수급안정위원회를 통한 신속한 격리물량을 결정하는 등의 전제를 달았으며, 통계불일치와 격리물량 환산에 대한 제도적 보완도 동시에 주문했다.
과거 시장격리 실시까지 시간 소요에 따른 효과와 신곡 수요물량 추정에 통계오차로 익년 수확기까지 전년산 잔여물량이 재고로 남아 추가격리를 시행한 때도 있었다.
그간 수확량에 대한 통계청의 발표와 현장에서의 체감량은 달랐기 때문에 정부 정책에 대한 결정과 확신이 어려웠고 대책의 효과도 떨어지는 등의 개선이 부족했다.
때문에 수급안정대책도 선제적으로 이뤄지지 힘들었고 격리 물량 또한 공급초과량에 미치는 괴리가 나타나는 것이다.
정확한 수급물량 계측과 시장격리를 위한 합리적인 기준이 제도 도입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불거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