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이후 25년 동안 28차례 추경
정치권 ‘견제’ 대신 포퓰리즘 도구화
예산 편성·심의 개선해 남발 막아야
문재인 정부가 임기 5년 동안 무려 10차례 걸쳐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는 등 방만한 재정 운영이 심화하면서 제도적 방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예산 낭비를 견제·감시해야 할 정치권마저 포퓰리즘 도구로 추경을 활용하고 있어 문제 심각성을 더한다.
우리 정부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20여 년 간 모두 28회에 걸쳐 추경을 편성했다. 문재인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약 2년 동안 7차례를 편성할 정도로 추경을 남발했다.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 상황이 추경을 편성하기에 충분한 사유라는 주장에도 설득력은 있다. 내수 경제가 무너지고 위기 때일수록 사회 취약계층의 어려움은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들의 활동이 줄어들면서 소상공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황이라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집행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이러한 추경이 효과 분석도 없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경의 효과와 필요성에 대한 깊은 분석 없이 선거 등을 고려한 정치적 도구로 사용한다고 비판한다.
김상겸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추경의 핵심은 ‘부득이한 사유’라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예상하지 못했던 부득이한 경우가 거의 매년 발생했다는 말이 된다”며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부득이한 경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추경이 집행된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평가된다”고 꼬집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또한 “(올해 경우) 본예산 집행이 사실상 시작되지 않은 시점에서 추경을 편성하는 건 매우 부적절하고 선거철 오해의 소지도 있다”며 “결국 국채 발행을 해야 하는데 국가채무가 늘어나면 금리나 여러 이슈 등으로 인해 취약계층이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도 추경 남발 책임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때론 정치권이 먼저 추경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여야는 정부가 추경을 추진한다고 하면 처음에는 반대하다 나중에는 결국 동조하고, 심지어 국회 심의 과정에서 예산액을 늘리기도 했다.
이번 추경도 마찬가지다. 지난 21일 정부가 추경안을 발표하자 여당은 곧바로 추경 증액을 거론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정부의 14조 규모 추경으로는 부족하다며 최소 35조원 이상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도 비슷하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는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지원을 이유로 추경은 최소 45조원 이상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현 원내대표도 32조~35조원 규모 추경안을 정부에 요구했다.
정치권의 이러한 행태 때문에 누가 집권하더라도 2차 추경 편성은 불 보듯 훤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나아가 정치권의 추경 증액 요구에 전문가들은 국가 재정 건전성을 고려치 않은 ‘매표 행위’라고 비판한다.
김태기 단국대 명예교수는 “눈앞의 표를 얻기 위해 국가부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여야 모두 포퓰리즘 경쟁에 나서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추경이 사실상 애초 의도를 벗어나 본래 의미가 퇴색하면서 제도적으로 손질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재정준칙 제정과 같은 제도 정비와 함께 본예산 심의 과정을 더욱 엄격하고 정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김상겸 교수는 “어떤 측면에서는 추경이 마치 회계연도 중에 실시하는 ‘중간 정산’처럼 되어버린 느낌도 든다”며 “(추경이 잦은 이유는) 예산안 작성과 이의 심의과정이 정교하고 치밀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다 현실적인 방안은 예산심의를 더욱 엄격하고 정밀하게 수행하는 것”이라며 “다음 해 경제성장률 예측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닌지, 외양상의 긴축재정이 실제로도 그런지를 진지하게 검토해 봐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중복성·낭비성·정치적 선심성 지출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지출수요를 억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며 “이러한 효율화만을 달성해도 재정지출의 상당 부분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