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서 3류 변호사 신중한 연기
예능 출연만 하면 대박...코미디 장르의 대가
모든 일에는 균형이 중요하다. 하다못해 밥을 먹을 때도, 일을 할 때도, 운동을 할 때도 그렇다.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 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배우 차승원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심지어 이 두 가지와 평소 그의 성격 사이에서도 중심을 잘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1988년 모델로 데뷔해 햇수로 35년간 롱런할 수 있던 비결도 그의 탁월한 균형감각 덕분이다.
배우이니만큼 먼저 그의 최신작들을 살펴보면,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어느 날’과 영화 ‘싱크홀’이 있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차승원이 요상하지만 친근하고, 동시에 매력적인 캐릭터를 선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이전에 누아르 장르의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에선 묵직한 악역을 실감나게 연기하기도 했지만, 진짜 차승원이 빛을 발하는 건 코믹 연기에서다.
다소 무겁고, 답답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어느 날’에 차승원이 능글맞고, 능청스러운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면서 대중들이 보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무게감을 유지한다. 때로는 진심을 눌러 담은 변론으로 감정을 폭발시키고, 또 때로는 변호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엉뚱하고 능청스럽게 말이다.
차승원의 균형감각도 있지만 특히 이 작품에서 칭찬하고 싶은 건, 친근하지만 동시에 묘한 느낌까지 드러낸다는 점이다. 그는 극중 3류 변호사 신중한을 연기했는데, 어떤 배우와 붙어도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는 것 외에도 신중한의 행동이나 눈빛, 심지어 아토피로 가려운 발가락을 연필로 구석구석 긁어대며 매번 슬리퍼를 신고 등장하는 것까지도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싱크홀’에선 대놓고 자신의 장기를 표출한다. 그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85만원을 내는 집에 살면서 번듯하게 아들을 키우려 사진관, 헬스클럽 바디매니저, 대리기사까지 뛰는 인생을 사는 아머지 정만수로 등장한다. 생계형 아버지임에도 그가 그린 정만수는 여유와 패기를 잃지 않는 인물이다. 사실 우리 집이 싱크홀에 빠져버린 비극적 상황이지만, 코믹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것도 차승원이라는 배우를 잘 활용하면서였다. 묵직하게 균형을 잡아주는 차승원 덕에 정극과 코미디를 오가면서도 이질감을 느낄 새가 없었다.
예능은 또 어떤가. 지금에서야 차승원이 tvN ‘삼시세끼 어촌편’을 통해 데뷔 16년 만에 첫 예능 타이틀롤을 맡았지만, 사실 데뷔 이후 출연작 홍보를 위해 일회성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에도 매번 반응이 좋았다. 오죽하면 그가 처음으로 주목을 받은 것도 예능 쪽이었다.
최근엔 SBS 웹예능 ‘문명특급’에 출연했는데, 진행자인 재재가 워낙 게스트에 대한 조사를 성의 있게, 또 철저하게 해오는 특성 덕에 차승원이라는 사람의 꾸며지지 않은 진짜 모습들이 나오면서 구독자들의 큰 웃음을 샀다.
모델 출신답게 큰 키에 잘생긴 얼굴, 뛰어난 패션 소화력을 보이는 그가 자부심을 넘어 ‘자뻑’(자기가 잘났다고 믿거나 스스로에게 반하여 푹 빠져 있는 일)에 취한 모습도 밉지 않았던 것 역시 내면에 있는 겸손함과 진정성 그리고 위트까지 적절히 섞어가면서 균형을 맞추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