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삼성, 4위 스텔란티스와 잇따라 합작법인 MOU
토요타도 4조 투자…中 CATL도 현지 공급능력 확대
늘어나는 美 전기차 니즈에 한·중·일 기업 속속 진출
시장 성장세 따라갈 기술·인재·자원 확보는 '필수 과제'
미국이 전기차 시장 문을 크게 열어젖히자 한·중·일 완성차-배터리업체들의 시장 선점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이들은 현지 기업과 합작사를 설립하거나 자체 투자를 하는 방식으로 영토 확장에 나서고 있다. 날로 가팔라지는 전기차 시장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기술 개발, 원자재 공급망 구축, 인재 양성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세계 4위 자동차업체인 스텔란티스(Stellantis)와 북미에 합작회사를 설립키로 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스텔란티스와 북미 지역에 연간 40GWh(기가와트아워)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셀, 모듈 생산능력을 갖춘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공장 부지는 현재 검토중으로, 내년 2분기 착공해 2024년 1분기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합작법인에서 생산되는 배터리는 스텔란티스 미국, 캐나다, 멕시코 공장에 공급돼 스텔란티스 산하 브랜드의 차세대 전기차에 탑재된다.
스텔란티스는 이탈리이아와 미국이 합작한 자동차업체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프랑스 자동차업체 '푸조시트로엥(PSA)'이 합병해 올해 1월 출범했다. 2025년까지 전기차 전환에 약 41조원(300억 유로)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SDI도 스텔란티스와 북미 지역에 배터리 공장을 신설한다. 구체적인 투자 및 생산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조 단위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
이에 질세라 일본 완성차인 토요타도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확정했다. 토요타 북미법인은 2030년까지 미국에서 차량용 배터리 개발·생산에 34억 달러(약 4조283억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토요타가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짓는 것은 처음으로, 이대로 가다간 뒤쳐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상세한 투자 계획은 밝히지 않았지만 새 배터리 공장에선 순수전기차(EV)와 하이브리드차(HEV)에 탑재되는 배터리가 생산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CATL도 최근 상용 스타트업 일렉트릭 라스트 마일 솔루션스(ELMS)와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으며 배터리 공급여력을 확대했다. CATL은 이번 계약으로 ELMS에 소형 전기 밴 '어반 딜리버리'에 들어갈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2025년까지 공급할 예정이다.
ELMS는 제너럴모터스(GM) 출신 제임스 테일러가 작년 미시건주에서 창업한 전기차 회사다. 로이터 등 외신은 CATL이 미국 현지 공장 설립도 검토중이라고 보도했다.
한·중·일 3국은 미국이 본격적으로 전기차 시장을 확대함과 동시에 공격적으로 영토확장에 나서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내연기관차 배출가스 기준을 강화하는 한편 전기차 판매 비중을 늘리는 방식으로 전기차 시장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전기차 배터리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공급부족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30년 글로벌 배터리 수요는 4028GWh이나 공급량은 이에 못미치는 3843GWh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미국 시장은 배터리 부족으로 수요-공급 균형이 2025년 마이너스 50%, 2030년 마이너스 45%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위기감을 느낀 미국과 영토 확장을 노리는 완성차-배터리 기업들의 니즈가 맞아떨어지면서 미국을 겨냥한 투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은 승용차 보다는 경트럭, 중대형 트럭, 버스 등 상용차 비중이 커 배터리 기업들은 이를 집중 공략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작년 북미 내수 판매 비중은 상용차가 77%로 승용차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실제 포드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SK온은 포드의 전기트럭 F-150 사전계약 주문이 예상치를 넘어서자 투자 계획을 상향 조정한 바 있다. CATL이 최근 계약한 ELMS도 상용차를 주로 생산한다.
진출 기업들이 보유한 배터리 기술도 서로 달라 주도권 다툼은 한층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CATL이 내세우는 LFP 배터리는 철을 양극재로 하기 때문에 생산 비용이 낮으며, 폭발 위험도 적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단위 면적당 에너지 밀도가 낮고 무거워 일반 승용차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 효율적이지만 고가의 광물을 활용하기 때문에 생산 비용이 높다는 것이 단점이다. 각 기업들은 기술 보완을 통해 경쟁력을 적극 어필해 나가는 한편,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 배터리 기업이 제대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공급망 확충에 더욱 공을 쏟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 수요 급증으로 광물 가격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내기업들이 기술 개발(R&D)과 광물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중국, 미국 등 경쟁국과 비교하면 취약한 수준"이라며 "한국이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세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R&D와 인재 육성, 광물 확보에 좀 더 전략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