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반도체 자국주의 내세우며 패권 경쟁 가시화
日·臺·EU, 산업 육성 위한 다양한 방안 적극 강구
주요 기업 효율적 경쟁력 강화 수단으로 M&A 추진
지난해 말 차량용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전 세계 각국이 반도체를 미래 국가 산업뿐만 아니라 안보의 핵심 자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나서서 반도체 자급론을 바탕으로 자국 중심 공급망 구축에 전력하고 있고 중국도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일본과 타이완, 유럽연합(EU)도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대규모 투자와 함께 인력양성과 세제혜택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산업 주도권 다툼이 점점 심화되면서 무한경쟁과 합종연횡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이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난해 말 차량용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가 빚어진 이후 글로벌 반도체 시장 주도권을 선점하기 위한 전 세계 각국의 무한 경쟁 체제가 한층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반도체가 전략적 물자이자 국가 핵심 안보 자원으로 급부상하면서 전 세계 각국이 반도체 자국주의에 기반해 공급망 주도권 확보를 위해 뛰어들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전자산업의 쌀’로 불릴 만큼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는 반도체의 특정 국가와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국을 중심으로 공급망을 구축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미래 산업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패권 경쟁이 점점 가시화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효율적인 경쟁 강화를 위한 최적의 방안으로 인수합병(M&A)이 부상하면서 각 기업들간 합종연횡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산업 주도권 선점 위한 글로벌 경쟁 심화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6월 반도체 등 4대 품목의 공급망 점검 보고서를 발표하고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우선순위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발맞춰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강화를 위한 반도체 설비투자액의 40% 세금면제해 주는 내용을 골자로 한 반도체 산업 육성정책을 발표했다.
이어 미 의회도 향후 5년간 527억달러(약 61조원)를 투자하는 반도체 제조 인센티브 법안(CHIPS for America Act)도 추진 중이다.
중국도 반도체 국산화를 최우선 목표로 국가적으로 대규모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오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를 목표로 170조원 규모의 투자를 추진할 계획으로 앞서 지난해 8월에는 중국 국무원이 자국 반도체 기업들에 최대 10년까지 법인세를 면제하고 수입관세를 경감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미국과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일본과 타이완, 유럽연합(EU) 등도 투자와 함께 인력양성과 세제혜택 등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있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에 밀리며 침체를 겪고 있는 반도체 산업 경쟁력 회복을 위해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을 기반으로 생산기반 강화와 수요 산업과의 연계 등을 통해 재도약을 꾀하고 있다.
타이완도 TSMC가 보유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의 경쟁우위를 바탕으로 소재·장비 국산화를 통해 반도체 자급론 구현에 나섰고 EU는 제조업 강국 독일을 중심으로 반도체 연구개발(R&D) 프로젝트에 적극 투자해 기술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5월 반도체 경쟁력 제고를 위해 국내 반도체 인프라 구축, 각종 세제혜택 및 기반시설 지원 등을 망라한 ‘K-반도체 전략’을 발표하면서 경쟁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오는 2030년까지 약 ‘510조원+α’에 달하는 기업 누적 투자 계획과 세제 혜택을 골자로 한 이 전략에는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K-반도체 벨트’ 조성 ▲반도체 제조 중심지 도약을 위한 인프라 투자 확대 ▲인력·시장·기술 등 반도체 성장기반 확보 ▲국내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반도체 위기대응 강화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오는 2024년까지 투자분을 대상으로 연구개발(R&D)에서는 최대 40~50%, 시설투자에 있어서는 최대 10~20%를 공제하는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제공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 지원 등에 업은 기업들, M&A로 경쟁력 강화 추진
전 세계 각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과 함께 주요 기업들도 경쟁력 강화 행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보다 효율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수합병(M&A)을 통한 합종연횡도 활발해지고 있다.
M&A를 통한 합종연횡은 미국 기업들이 앞장서고 있다.
낸드플래시 3위 업체인 웨스턴디지털은 2위 키옥시아(구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추진 중이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들은 웨스턴디지털이 키옥시아와 200억달러(23조1400억원) 규모의 M&A를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르면 이달 중 협상이 타결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종합반도체 1위 경쟁을 펼치고 있는 인텔은 앞서 지난 3월 파운드리 사업 재진출을 선언한 뒤 세계 4위 파운드리 업체인 글로벌파운드리스(GlobalFoundries)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최근 글로벌파운드리스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기업공개(IPO) 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수 시도가 사실상 무산됐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인텔이 언제라도 적극적으로 M&A를 추진할 수 있는 기업임을 분명히 했다.
또 앞서 지난해에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설계전문(팹리스·Fabless) 기업인 엔비디아가 영국 반도체 설계전문기업 ARM 인수를 발표하고 이를 추진 중이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9월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ARM을 400억달러(약 46조3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는 반도체 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M&A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국과 패권경쟁을 하고 있는 중국도 M&A에 적극 나서고 있다. 중국계 사모펀드 와이즈로드캐피털은 지난 3월 14억달러(약 1조6200억원)에 매그나칩반도체를 인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뒤 미국과 한국 등 경쟁당국의 심사를 진행해 오고 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이들 기업들의 M&A들이 미국과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국주의 전략의 일환으로 판단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간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 양국 대표기업들의 합종연횡 시도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주요국 경쟁당국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만큼 M&A의 최종 성사 여부는 미지수지만 미국 기업을 중심 축으로 한 이러한 합종연횡 시도는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SK하이닉스가 지난해 10월 낸드 경쟁력 강화를 위해 90억달러(약 10조4000억원)에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를 발표했다. 현재 심사 절차가 진행 중으로 중국 당국의 승인만을 남겨두고 있다.
삼성전자도 올 초 3년 내 대규모 M&A를 공식화한 상태다. 지난 2019년 4월 ‘반도체 비전 2030’을 통해 오는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 달성이라는 목표를 제시한 만큼 반도체 분야에서 대규모 M&A가 기대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산업 자원으로서 반도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여 세계 각국의 주도권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시장 변화 속도가 타 산업에 비해 유난히 빠른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효율적인 경쟁력 강화 수단으로 M&A를 선택하는 기업들도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②]에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