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제품 공급 부족 사태로 반도체 자급론 대두
이해득실과 긍부정 영향 따라 찬반 좌지우지 될수도
삼성전자 적극적 M&A 추진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
최근 반도체업계에서 인수합병(M&A) 시도가 잇따르면서 합종연횡을 통한 지각변동 조짐이 일고 있는 가운데 중국과 일본 등 주요국 경쟁당국들의 승인 여부가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부터 차량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공급 부족 사태가 빚어지면서 반도체 자급론이 더욱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각국이 이해득실에 따라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M&A는 제동이 걸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일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90억달러(약 10조3000억원)에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 인수를 발표한 SK하이닉스는 인텔과의 계약 체결 후 주요 8개국에서 진행된 반독점 승인 심사에서 7개국 심사를 통과한 상태로 중국 경쟁당국의 심사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미 국내를 비롯, 미국·유럽연합(EU)·타이완·브라질·영국·싱가포르 등 7개국의 승인이 떨어진 상태여서 중국만 승인을 해주면 낸드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매머드급 계약은 최종 성사된다.
이번 인수합병(M&A)이 낸드업계 4위(SK하이닉스)와 6위(인텔) 업체들간 이뤄지는 것이어서 경쟁당국의 승인 불허의 단골 이유는 독과점 우려에서는 벗어나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 양사의 시장 점유율은 각각 12.3%와 6.7%로 이를 합친다고 해도 19%로 20%에 미치지 못한다.
낸드 시장에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중국 기업이 없어 자국 산업 위협이라는 점에서도 비켜나 있고 SK하이닉스(우시·D램)와 인텔(다롄·낸드) 모두 중국에 생산 공장을 두고 있는 등 지속적인 투자를 해 왔다는 점에서 승인을 거부할 당위성이 낮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다.
SK하이닉스도 올 하반기 내로 중국의 승인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중국 경쟁당국의 프로세스에 따라 승인 절차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큰 문제가 없는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자국주의 강화로 대형 M&A 민감성 높아질 듯
하지만 지난해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속에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을 겪으면서 글로벌 부품 공급망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상태라는 점은 변수다. 자국 반도체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형 M&A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은 지난 2018년 미국 이동통신 반도체 기업 퀄컴의 네덜란드 자동차 반도체 업체 NXP M&A, 2019년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의 일본 반도체기업 고쿠사이일렉트릭 M&A를 모두 불허하며 무산시킨 전력이 있다.
또 반도체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M&A으로 관심을 모았던 미국 엔비디아의 영국 반도체 설계 전문(팹리스·Fabless) 기업 ARM 인수도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무산시킬 태세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9월 일본 소프트뱅크로부터 ARM을 400억달러(약 46조60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를 감안하면 낸드업계 3위 미국 웨스턴디지털(WD)의 2위 일본 키옥시아(구 도시바메모리) 인수는 더욱 성사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각) 웨스턴디지털이 키옥시아를 200억달러(약 23조3000억원) 이상에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양사 간 협상이 수 주 이상 지속됐으며 이르면 이달 중순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우선 양사의 합병은 낸드 시장 재편의 소용돌이를 일으킬 정도로 파급력이 훨씬 커 주요 경쟁당국이 경계심이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중국은 무역분쟁에 이어 반도체 패권 경쟁도 펼치고 있는 미국의 기업이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은 일인 만큼 까다롭게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무산시킨 퀄컴-NXP, 어플라이드-고쿠사이간 M&A도 모두 미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한층 강화시킬수 있었던 딜(Deal)이었다.
또 일본 입장에서도 유일하게 남은 대형 반도체 기업이 해외로 매각되면 자국 메모리반도체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강하게 반대하며 승인을 불허할 가능성이 크다.
"3년 내 M&A" 공언한 삼성, 비메모리 경쟁력 강화에 필수적
반도체 자국주의에 기반한 주요국들의 태도는 인텔과 종합반도체 1위를 다투고 있는 삼성전자의 M&A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2016년 11월 미국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80억달러(약 9조3000억원)에 인수한 뒤 사실상 대규모 M&A의 맥이 끊긴 상태인 삼성전자는 효율적인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앞으로 적극적인 M&A를 추진할 계획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 2020년 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을 통해 "3년 내 대규모 M&A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전자가 초격차 경쟁력을 보유한 D램과 낸드 등 메모리븐야에서 추격자들의 M&A가 용이하지 않게 되는 점은 분명 긍정적인 요인이지만 반대로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비메모리분야에서는 오히려 추격이 필요한 현실에서 M&A를 통한 경쟁력 강화가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단적인 예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분야에서는 1위 타이완 TSMC와의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 2분기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17.3%로 TSMC(52.9%)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뿐만 아니라 M&A를 적기에 단행해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2019년 4월 발표한 '반도체 비전 2030'을 통해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반도체 1위로 올라서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M&A는 필수적이다. 총 171조원의 대규모 투자에서 M&A가 한축으로 작용해야만 경쟁력 강화가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M&A는 약점을 보완해 새로운 도약을 꾀할 수 있는 좋은 도구”라면서 “시장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른 반도체 업종의 특성상 투자와 마찬가지로 M&A도 선제적으로 적기에 단행하는 것이 미래 경쟁력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