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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명대사⑭] 비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로맨스의 고전


입력 2021.08.25 13:30 수정 2021.08.26 09:54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클래식' 스틸컷. ⓒ이하 시네바서비스 제공

“아우~ 촌스러워. 좋아, 클래식하다고 해두지!”


엄마(성주희, 손예진 분)가 해외여행 간 사이 집 안을 정리하던 대학생 지혜(손예진 분)가 엄마의 옛 편지를 보며 하는 말이다.


편지는 윤태수(이기우 분) 이름으로 쓰였지만 실제로는 오준하(조승우 분)가 쓴 것이었고, 함께 있던 일기장 역시 한때는 태수가 주희에게 보내는 대필 편지를 써야 했고 한때는 태수의 이름을 빌려 편지를 부쳐야 했던 준하의 절절한 사랑 기록이다. 편지 겉봉에 적힌 윤태수라는 이름은 주희와 준하 사이의 얽히고설킨 애잔한 사연을 담고 있기도 하고, 결과론적으로는 “아빠와 엄마의…”라는 지혜의 내레이션과 만나 태수가 지혜의 아빠가 되리라는 스포일러가 되기도 한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나오는 “클래식하다고 해두지!”라는 말은, 1960~70년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촌스럽다기보다는 고전적 관점에서 봐달라는 곽재용 감독의 희망도 읽힌다. 실제로 영화 ‘클래식’(감독 곽재용, 제작 에그필름, 배급 시네마서비스)은 멜로의 고전, 로맨스의 클래식 작품이 되었다.


“정말 많이 보았는데, 계속 봐도 너무 감동적입니다.”

“10년 전에 봤는데 지금 봐도 재밌어요!”

“10번 봐도 최고다. 15년 후에 봐도 좋네.”

“영화관에서 못 본 게 한이 돼서 이번에 꼭 봐야지 하고 봤습니다. 명장면들은 유튜브에서 수도 없이 봤고 내용도 이미 다 알고 봤음에도 눈물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로맨스, 멜로, 다 싫어하는데 ‘클래식’만큼은 정말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명작은 쉽게 잊히지 않네요.”


포털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관객들의 평이다. 2003년 영화인 걸 생각하면, 십 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사랑받았고 오늘도 여전히 누군가의 가슴을 두드리고 있다.


첫사랑의 화신, 배우 손예진 ⓒ

영화는 오준하-성주희-윤테수의 삼각관계가 펼쳐지는 과거, 마치 평행이론이 적용된 듯 지혜-상민(조인성 분)-수경(이상인 분)의 또 다른 삼각관계가 그려지는 현재를 오간다. 특히 손예진과 조승우가 열연을 펼친 과거 이야기가 가히 ‘사랑의 고전’이라 할 만하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영화 원작)처럼 시골 친척 집에서 만난 소년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로 가는 친구의 연애편지를 대필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쓴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거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끝을 맺는 듯한 이야기 구조도 그렇지만. 제대로 입 한번 못 맞추고도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인생을 거는 모습, 내 사랑이 소중하면서도 다른 이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해 쓰린 가슴을 안고 물러서는 모습,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첫사랑을 간직하는 모습에서 ‘참사랑’의 면면을 발견할 수 있다.


“나 정말 바보인가 봐. 널 좋아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


사랑하는 주희를 위해, 주희가 처한 난감한 상황을 해결해 주고 싶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하는 준하. 그러면서도 결코 주희를 포기할 수 없었던 준하가 하는 말이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바라는 말 아닐까. 모든 생각이 오직 한 사람에게 집중돼 있고 모든 행동의 원인과 결과가 한 사람을 향해 있을 때 할 수 있는 말. 로맨틱하기 그지없다.


태수 이름으로 쓰지만 마음은 준하의 것. 조승우의 눈빛, 표정은 영화를 풍부하게 한다 ⓒ

영화 ‘클래식’에서 소소하게 고전미를 느낄 수 있는 대목들이 있다. 문어체를 구어로 하는 듯한 문학적 말투, 부러 격앙된 듯한 감정 표현이 그렇고, 편지에 적는 서정적 문구들이 이렇다.


“태양이 바다에 미광을 비추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희미한 달빛이 샘물 위에 떠 있으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과거의 준하가 주희네 대문 앞에 놓고 간 쪽지에, 현재 시점에서 준하의 아들인 상민이 지혜에게 가길 바라며 작은 선물상자에 넣은 미니 카드에 적힌 글귀다. 태양이 있는 낮에도 달이 뜬 밤에도 너를 생각한다, 미광이 바다에서 반짝이고 샘물에 달빛이 비치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 너를 생각한다, 즉 낮이고 밤이고 언제나 너를 생각하고 좋은 걸 보면 네 생각이 난다는 얘기인데 참으로 격조 있게 표현했다.


준하가 시골 외삼촌 댁에 가 있고 주희는 할아버지 댁으로 놀러 오지 못하는 상황에서 서로 주고받는 편지를 봐도 요즘 우리가 쓰는 말투와는 사뭇 다르다. 문어체의 말투가 어딘가 더 서정적이고 글귀들은 문학적이다.


엄마는 대필 편지를 받았고, 딸은 대필 편지를 쓰고 있다. 시간은 연결돼 있다 ⓒ

“그리고, 또 놀랄 만한 사실도 얘기해 주었어. 지금까지 태수 씨 이름으로 보낸 편지들을 준하가 썼다는 거.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다 있어?”(주희)


“창밖을 봐. 바람에 나뭇가지가 살며시 흔들리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널 사랑하고 있는 거야.”(준하)


“난 준하가 너무 보고 싶어서 내일은 할아버지 댁에 가겠다는 다짐을 받아낼 작정이야. 가게 되면 미리 전보를 칠게.”(주희)


“귀를 기울여봐. 가슴이 뛰는 소리가 들리면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널 사랑하고 있는 거야. 눈을 감아봐.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면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이 너를 사랑하고 있는 거야.”(준하)


주희의 애정 어린 투정에도, 만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에도 준하는 추상과 문학으로 답한다.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는 당연한 자연현상에 자신의 사랑을 전하는 건 기본, 주희의 심장 소리와 미소마저 자신의 사랑의 증표로 얘기한다. ‘클래식’하다.


명작은 장면으로 기억된다. '클래식'을 향한 조인성의 아쉬움을 거둬도 되는 이유다. 영원한 명장면ⓒ

영화 ‘클래식’에서 비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우연을 필연으로, 사랑을 운명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주희와 준하는 빗속에서 마음이 싹트고 빗속에서 사랑을 확인한다. 지혜와 상민은 비를 계기로 운명에 용기를 낸다. 상대에게 달려가기 위해 우산이 있어도 비 맞기를 자청하는 것으로 상민은 지혜를 향한 마음을 더는 숨기지 않고, 지혜는 상민에게 그 마음이 자신에게 전해졌음을 알린다.


“우산이 있는데 비를 맞는 사람이 어디 저 하나뿐인가요?”


그렇게 해서 주희와 준하의 못다 이룬 사랑은 자식 대에서나마 이어진다. 어떻게 해서든, 조금은 늦게라도 이루어질 사랑의 운명이었던 것일까. 쏟아지는 비와 함께 가수 자전거 탄 풍경의 노래 ‘너에게 난, 나에게 넌’,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린다.


그래선지 비가 오는 날이면, 영화 ‘클래식’이 생각나고 귓전에서 두 명곡이 흐른다. 그리고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 사랑의 순수 속으로 빠져든다. 마음은 재킷을 벗어 우산 대신 쓰고 100년 넘은 교정을 뛰어다니고 싶지만, 손예진과 조인성의 빗속 달리기만으로도 행복하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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