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적 금융, 금융적 복지" 말장난
전혀 다른 개념 혼용…부작용 우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내놓은 기본금융 공약을 둘러싸고 금융과 복지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해야 할 영역을 금융시장으로 끌어들이면서 역효과만 키울 수 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특히 복지적 금융정책도 있고, 금융적 복지정책도 있다는 이 지사의 주장에 대해선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마저 나온다.
12일 정치권과 금융권에 따르면 이 지사가 자신의 정책브랜드인 기본시리즈 공약으로 내놓은 기본금융의 핵심은 대출권 보장이다. 국민 누구에게나 현재 3% 안팎인 우대금리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서 최대 1000만원을 10~20년 만기 마이너스 대출 형태로 빌려 주겠다는 내용이다.
기본 저축 제도도 함께 내놨다. 500만~1000만원 한도로 일반 이자율보다 높은 금리를 설정해 주는 저축 제도를 만들어 서민의 재산 형성에 도움을 주겠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기본 저축을 기본 대출의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전문가 "금융은 금융, 복지는 복지"
전문가들은 우선 기본 금융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복지 제도를 혼용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재원 마련의 현실성과 도덕적 해이 등도 따져봐야 할 논란거리지만, 근본적으로 이 지사가 가진 금융과 복지의 관념 자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이 지사는 기본 금융을 소개하면서 "정책에는 복지와 금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지적 금융정책도, 금융적 복지정책도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금융은 금융이고 복지는 복지"라고 맞받아쳤다.
윤 의원은 "어려운 이들을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는 위선적 공약을 내면서 이를 복지적 금융정책이니 금융적 복지정책이니 하는 기본이 안 된 말장난으로 호도하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금융은 금융대로 복지와 자선의 영역은 그 영역대로 역할을 할 수 있게 잘 키워야하는데, 이를 섞어버리면 둘 다 엉망이 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금융과 복지를 연결시키려는 접근 방식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소득의 양극화를 해소하는 관점으로 금융 불평등을 해결해 보겠다는 사고가 의도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부작용만 낳을 가능성이 크다는 목소리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 지사의 기본 금융 공약에 대해 "신용이 나쁜 사람이 먼저 돈을 빌리는 역선택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평가했다.
이 지사가 말하는 기본 대출권이 금융시장으로 들어오면, 서민들을 지원하는 복지적 방식으로 활용되기 보다는 부실채권을 대체하는데 쓰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이는 결국 복지의 원리가 금융에 적용될 수 없음을 역설하는 대목이다.
이 교수는 "비현실적인 측면에서는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차라리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학 교과서에서 하지 말라는 일만 골라서 하는 중"이라고 질타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역시 "금융을 통해 일반적인 지원을 하는 건 적절하지 않고, 소득이 낮은 이들에게는 정책적 혹은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업계 "기본대출권, 금융 논리와 안맞아"
업계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기본 대출권 개념이 겉으로는 금융 정책의 탈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금융의 논리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 은행 관계자는 "개인의 빚 상환 여력과 신용도에 따라 차등해 금리를 적용하는 금융의 기본 원리를 뒤흔드는 대출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취약 계층을 도와야 한다는 복지의 개념을 개인의 신용을 평가하는 여신에 적용해 보겠다는 취지는 알겠지만, 현실적으로 금융의 불공정은 금융 정책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 기조로 자산시장이 가뜩이나 과열돼 있는 상황에서, 개인들에게 부담 없는 유동성을 추가적으로 쥐어주는 창구가 되면서 부작용이 더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