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법정’ 추악한 사건들, 깊지만 마냥 무겁지만은 않게
장나라→정려원·문소리,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
<편집자 주> 작가의 작품관, 세계관을 이해하면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매 작품에서 장르와 메시지, 이를 풀어가는 전개 방식 등 비슷한 색깔로 익숙함을 주기도 하지만, 적절한 변주를 통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의외의 변신으로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현재 방영 중인 작품들의 작가 필모그래피를 파헤치며 더욱 깊은 이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정도윤 작가는 장르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다. 공동 집필로 데뷔한 ‘구미호: 여우누이뎐’을 통해 공포물을 선보였던 정 작가는 이후 ‘동안미녀’를 통해 노처녀의 애환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면모를 보여줬다. 최근에는 ‘마녀의 법정’과 ‘미치지 않고서야’에 이르기까지, 다소 불편할 수 있는 현실을 단순하지 않게 담아내면서도 이를 밝은 톤으로 그려내는 장점을 보여줬다.
특히 현재 방송 중인 MBC ‘미치지 않고서야’에서 이 면모가 빛나고 있다. 격변하는 직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n년 차 직장인들의 치열한 생존기를 그린 드라마로, 직장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 위해 중년 직장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퇴근했는데 다시 출근한 것 같다’는 평을 받을 만큼 실감 나는 묘사로 호평을 받고 있다.
◆ 불편한 현실, 무겁지 않게 담아낸 ‘마녀의 법정’
정 작가는 지난 2007년 방송된 ‘마녀의 법정’을 통해 추악한 범죄 사건들을 적나라하게 다뤄 많은 이들의 분노를 유발했다. ‘마녀의 법정’은 출세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뜻밖의 사건에 휘말려 강제 유턴 당한 검사 마이듬(정려원 분)과 의사 가운 대신 법복을 선택한 훈남 초임 검사 여진욱(윤현민 분)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여성아동범죄전담부에서 앙숙 콤비로 수사를 펼치며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 메인이었다.
절대 악 조갑수(전광렬 분)를 향한 복수극이라는 큰 줄기는 있었지만, 여성과 아동 성범죄라는 추악한 사건들의 면면이 현실적인 톤으로 그려졌다. 직장 내 성추행 사건과 학내 성폭행 등 일상에서 벌어지는 범죄들을 적나라하게 다루는가 하면, 답답함을 유발하는 시스템에 대한 지적 등 현실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들이 호평의 원인이 됐었다.
특히 불편한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루는 드라마임에도 분위기가 무겁지 않았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독종 마녀라는 수식어를 가진 마이듬의 거침없는 면모가 시원함을 선사했으며, 초임 검사 진욱 역시 강단 있는 모습으로 그 뒤를 든든하게 받쳤다.
‘미치지 않고서야’가 기대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현재 ‘미치지 않고서야’는 차원이 다른 공감을 유발하겠다는 포부답게 초반에는 인원 감축이 시작된 진하시 디스플레이 사업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희망퇴직을 강요받는 직원과 22년 차 엔지니어 최반석(정재영 분)이 엉뚱한 부서로 발령을 받는 과정까지, 마냥 즐기며 볼 수만은 없는 무거운 현실들이 공감을 유발한다.
분위기가 너무 어두운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답답한 현실을 깊이 있게 담으면서도 코믹과 스릴 모두를 놓치지 않은 ‘마녀의 법정’을 생각하면, ‘미치지 않고서야’가 어떤 다채로운 매력으로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할지 기대를 하게 된다.
◆ 장나라·정려원→문소리, 매력적인 여주인공의 활약
지난 2011년 방송된 KBS2 ‘동안미녀’에서는 노처녀 소영(장나라 분)이 편견을 딛고, 일과 사랑을 동시에 얻는 과정을 발랄하게 그려냈었다. 동안의 외모를 가진 34살 여성이 9살 어린 동생 명의로 의류회사에 위장 취업해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으면서 노처녀를 향한 사회적 편견을 유쾌하게 뒤집었다. 고졸 학력이라는 약점까지 가지고 있지만, 주눅 들지 않고 씩씩하게 맞서는 소영의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가 확실한 드라마였다. 동안 외모의 장나라가 이 캐릭터를 연기하며 매력은 한층 배가됐었다.
‘마녀의 법정’에서도 매력적인 마이듬 캐릭터가 단연 빛났었다. 출세만 쫓던 검사가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변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 것은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 넘치는 마이듬의 시원시원한 매력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였다. 선과 악 이분법적인 구분이 아닌, 누구나 가질 법한 감정들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마이듬을 통한 강한 몰입을 이끌어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에서는 인사팀 팀장 당자영(문소리 분)의 활약에 기대가 쏠리고 있다. 화통하고 털털하며 모든 일에 적극적인 당자영은 임원이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리는 인물이다. 이 가운데, 전 남편과 한 팀에서 재회하고, 인사 경험 없는 22년 차 개발자를 부하 직원으로 받는 등 암초를 만나 추후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이 되고 있다.
수동적이지 않고, 자신의 일을 향한 열정을 가진 당자영은 ‘마녀의 법정’ 마이듬을 떠올리게도 한다. 닥친 위기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극복하며 현실적인 히어로가 된 마이듬처럼, 당자영이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