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도시장 수제맥주집 '슈가맨' 김성현 대표 인터뷰
전통시장 특성 살린 '상생메뉴' 인기
한때 동대문시장·남대문시장과 함께 서울의 3대 시장으로 불릴 만큼 번영했던 성동구의 뚝도시장은, 1968년 개설돼 지금까지 50여 년 동안 성수동 한 켠의 역사를 지켜오고 있다. 여전히 130여개 점포가 성수동의 오랜 세월을 이어오고 있지만, 과거의 명성을 찾긴 힘들었다.
그러던 중 뚝도시장에도 변화가 생겼다. 자생적으로 모여든 청년점포들이 창업하면서 뚝도 청춘몰, 청년상인 협동조합 등 뚝도시장 번영회와 함께 활발한 네트워킹을 해오고 있다. 최근엔 가수 딘딘, 최강창민, 은혁 등 연예인들이 방문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고, ‘뚝도청춘시장’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젊은이들과 윗세대들을 한 데 아우르는 청년창업의 선전지로 부상하고 있다.
그 중심엔 현재 청년상인 대표이자 번영회 이사, 그리고 뚝도시장 내에 수제맥주집 ‘슈가맨’을 운영 중인 김성현 대표가 있었다. 그는 지난 2016년 성동구가 중소기업청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뚝도시장번영회와 함께 진행한 ‘뚝도시장 청년상인 창업지원사업’을 통해 1기 청년상인으로서 이 곳에서 수제맥주집을 오픈했다. 시장 내 빈 점포를 활용해 19~39살 청년 창업가의 자립을 돕는 지원 사업이었다.
“저 역시 흔히 ‘경리단길’ ‘망리단길’ 등으로 통하는 인기 상권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그러나 경제적 여건 등 주요 도심의 상권에 들어갈 상황이 되지 못했고, 전통시장 안에서도 빈 점포가 없을 정도로 붐비는 곳이라면 제가 장사를 할 기회조차 얻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처음 뚝도시장에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땐 주변의 쓴 소리도 들어야 했어요. 미술만 하던 사람이 무슨 재주로 맥줏집을, 그것도 전통시장 안에서 오픈하느냐고요.”
김 사장은 대학시절 조각을 전공하고, 전공을 살려 가구 공방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미술학도였던 그가 수제맥주에 눈을 뜨게 된 건, 프리랜서 시절 인사동에 위치한 수제맥주집 '슈가맨' 인테리어 공사를 맡으면서다. 문득 그 가게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인테리어 시공이 끝난 뒤 가게의 매니저로 3년여를 일했다. 당시의 경험이 '성수제맥주-슈가맨' 창업에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3년여간 맥주집에서 일을 하고 공부를 했기 때문에 맥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어요. 수천가지가 넘는 수제맥주를 공부하고 손님들에게 맞는 맥주를 권하는 방법 등도 배웠죠. 물론 지금도 공부는 계속하고 있고요. 또 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매장 인테리어는 물론 식탁배치, 메뉴판 디자인 등도 직접 할 수 있었어요.”
김 대표는 테이블을 돌며 손님 취향에 맞는 맥주를 권한다. 그의 남다른 영업 전략 덕에 이곳을 찾는 손님 중 상당수는 단골들이다. 문제는 술과 함께 곁들일 ‘안주’였다. 고민 끝에 생각해 낸 방법은 ‘상생메뉴’다. 김 대표의 선택은 지금의 ‘슈가맨’이 뚝도시장의 핫플레이스로 거듭날 수 있었던 가장 주효한 이유가 됐다.
순대, 보쌈, 회, 통닭 등의 상상 메뉴들은 모두 시장 내 가게들에서 가져온다. 수제맥주와 시장의 먹거리,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조합은 젊은 세대들은 물론 윗세대들까지 사로잡는 이색적인 재미로 작용했다. 더해 시장 상인들의 매출도 올려주면서 기존 상인들과의 유대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상생 메뉴를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제가 전통시장에 들어온 이유를 찾게 됐어요. 또 가게의 경쟁력에 이 상생 메뉴가 주는 효과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요. 그때부터 주변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이 음식을 안주로 사용해도 되겠냐’고 직접 여쭸고, 기존 상인 분들도 대부분 좋아해주셨죠. 그들에게 없는 술이 저희 가게엔 있고, 저희 가게에 없는 맛있는 안주들이 시장엔 넘쳐나니까요.”
수제맥주집의 상생메뉴를 시작으로 현재는 뚝도청춘상인회 협동조합을 만들고 '뚝도청춘회관'이라는 공간도 운영하고 있다. 이 곳은 시장의 모든 음식을 함께 즐길수 있는 공간이다.
창업 전 주변 사람들이 말한 ‘전통시장이라는 불리한 입지’를 김 대표는 현명하게 활용한 셈이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전통시장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고, ‘슈가맨’만의 특별한 개성까지 더해지면서 전통과 트렌디함을 동시에 잡은 것이다. 그 결과 ‘슈가맨’은 뚝도시장의 핫플레이스, 맥덕(맥주덕후)들의 성지로 거듭났다.
그러나 모든 청년상인들의 창업이 성공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실제로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조사한 올해 3월 기준 전국 전통시장과 상가의 청년몰 현황에 따르면, 전국 39곳 672개 점포 가운데 현재 175개(26%)가 문을 닫았다. 점포 4개 가운데 1개꼴로 문을 닫은 셈이다.
보통 청년상인들에 대한 지원은 1년치 임차료와 인테리어 비용 지원, 창업 관련 교육 등을 받을 수 있다. 소자본으로 창업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이후에는 자체적으로 사업을 영위해야 한다. 맛, 가격, 서비스 등 손님을 사로잡을 수 있는 차별화된 경쟁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상당수 청년상인들이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떤 아이템이든 창업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해요. 저 역시 충분히 공부를 했고, 우리 가게에서만 즐길 수 있는 개성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처음 방문한 손님을 어떻게 다시 붙잡을 수 있는가, 즉 재방문율을 높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준비된 상태에서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는 식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준비가 되어 있는 청년들에 대한 지원이 되면 지속 가능성이 커지고, 거기서 고용창출, 시장 발전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