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 탈락 단지 속출, 추진 예정 단지 줄줄이 '속도조절'
"민간 제외한 공급확대…주거환경 악화, 시장불안 초래"
정부와 서울시가 주택공급 활성화를 위해 상호지원하기로 손을 맞잡았지만, 민간 재건축은 답보상태에 놓여 있다.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시점을 앞당기는 것으로 시장 과열에 대한 선제조치를 취했지만 안전진단 규제 완화에 대해선 정부가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어서다.
24일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서울 강동구 일원 고덕주공9단지는 2차 정밀안전진단에서 최종 탈락했다. 지난해 12월 1차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조건부 재건축)을 받았으나 2차에서 C등급(재건축 불가) 판정을 받아 결국 안전진단 문턱을 넘지 못했다.
앞서 2차 안전진단을 신청한 양천구 목동9단지와 11단지도 고배를 마셨다. 이처럼 연달아 안전진단에 탈락하는 단지들이 속출하는 데는 2018년 안전진단 평가 기준이 강화돼서다.
당시 정부는 주거환경 비중을 기존 40%에서 15%로 줄이고 구조안정성을 20%에서 50%로 높였다. 재건축 연한 30년을 충족하더라도 부실시공 등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는 단지가 아니면 통과하기 힘들어진 셈이다.
실제 평가 기준이 강화되기 전 안전진단 절차를 밟은 목동6단지는 인접한 9·11단지와 비슷한 점수를 받았음에도 2차에서 D등급을 받아 조건부 재건축이 가능하다.
서울시는 대규모 주택공급을 위해선 안전진단 세부 기준을 변경 이전으로 되돌려 민간 재건축을 추진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해당 규제가 완화되면 목동신시가지를 비롯해 여의도, 압구정 등지의 5만가구 규모 재건축 추진이 가능해진다.
정부가 규제 완화에 따른 시장 과열을 우려하는 만큼 서울시는 조합원 자격을 강화해 투기세력 유입을 차단하는 규제 방안을 내놨다. 기존 조합설립인가 이후 조합원 지위 양도가 제한되던 것을 안전진단 통과 이후로 앞당기는데 합의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인 셈이다. 하지만 정부는 안전진단 완화에 대해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가 여전히 민간 정비사업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자 도심 내 빠른 주택공급을 공언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 지도부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지난 22일 오 시장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회동에서 안전진단 제도 개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며 입법 지원 등 협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기수요 유입을 차단하는 동시에 정비사업 규제를 풀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겹겹이 규제만 남게 되자 안전진단을 앞둔 노후 재건축 단지들은 줄줄이 속도조절에 들어간 모습이다. 2차 정밀안전진단에서 떨어지면 처음부터 다시 단계를 밟아나가야 하는 만큼 서두르지 말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차 정밀안전진단을 준비 중인 목동7단지는 지난 4월 공공기관이 요청한 보완 보고서를 하반기 들어 제출하는 것으로 일정을 연기했다. 1차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은 노원구 상계주공6단지는 규제 완화 움직임을 지켜본 뒤 2차에 도전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주택공급 확대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상 민간을 제외하고 진행할 경우 효과적인 공급 효과를 거두기는 힘들 거란 견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이처럼 정부에서 당근책을 주겠다고 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면 국민 여론이 악화할 가능성이 커 내부적으론 고민이 많을 것"이라면서도 "결국 지금처럼 줄다리기만 하고 실질적인 규제 완화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안전진단은 정부의 고시여서 야당에서 입법이 되더라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라며 "재건축을 막으면 단기적으론 거래절벽이 일어나 가격이 안정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선 주거환경 악화와 공급 축소로 시장이 더 불안정해진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