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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흠, 원내대표 결선 진출 '돌풍'의 배경은 '32각형'?


입력 2021.05.01 01:20 수정 2021.05.01 09:05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기호 일번 김태흠 서른 표" 순간 장내 '술렁'

'김기현·권성동 양강 구도' 보란듯이 뒤엎어

원외 인사의 개입 등 계파 정치 거부감 작용

"나는 특정 인물, 계파에 매이지 않은 사람"

김태흠 국민의힘 의원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김태흠 의원이 국민의힘 원내대표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결선에 진출했다. '김기현·권성동 양강 구도'라는 관측을 보란듯이 뒤엎었다. 구태 계파 정치에 대한 거부감에 김 의원 특유의 스킨십이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김태흠 의원은 30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치러진 국민의힘 원내대표 경선 1차 투표에서 30표를 획득했다. 이에 따라 34표를 얻은 김기현 의원의 뒤를 이어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권성동 의원은 20표, 유의동 의원은 17표에 머물렀다.


이같은 김 의원의 선전은 예상을 뛰어넘은 것이다. 경선관리위원장을 맡은 김성원 의원이 "기호 일번 김태흠 후보 서른 표"라고 호명하는 순간, 장내가 크게 술렁였을 정도다.


선전의 배경으로는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 원내대표 경선이 구태 계파 정치의 옛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는 점이 꼽힌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은 막판 판세가 초박빙으로 접어들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원외(院外)에서 여러 옛 거물급 인사들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전직 당대표나 그 목소리를 사실상 대변하는 전직 의원,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원외 인사 등이 현역 의원들에게 연락을 취해 특정 원내대표 후보 지지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개입'은 오히려 해당 후보들에게 감표(減票) 요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며칠 전 유력 원내대표 후보에게 "○○○ 대표가 끼어드는 게 역풍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며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라"고 조언했지만 분명한 답을 듣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경선에 도전한 네 명의 후보 중에 김태흠 의원은 전혀 '뒷배'가 없다는 점에서 이런 우려로부터 가장 자유로운 후보였다. 김 의원 본인도 여러 차례 "나는 특정 인물, 특정 계파에 전혀 얽매이지 않은 사람"이라며 "누구로부터도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강단 있게 행동할 수 있다"고 자처해왔다. '장외 개입'에 거부감을 느낀 의원들이 이런 점에서 1차 투표에서 김 의원에게 표를 던졌다는 관측이다.


김태흠 의원 특유의 '1대1 맨투맨 스킨십' 또한 돌풍의 배경에서 빼놓을 수 없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3선 이상 의원들은 모두 험지에 출마하거나 용퇴하라는 '정풍 운동'을 촉발했다. 그 자신이 3선 반열에 오른 이번 21대 국회 들어서는 처음부터 초선 의원들과 1대1로 자리를 갖고 '누가 크게 될 인물인지' 살피는데 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은 "아무리 훌륭한 인물이더라도 재선 이상은 탄핵 과정에서 전부 흙탕물이 튀었다"며 "나를 포함해 재선 이상들은 전부 큰뜻이 있었더라도 접고, 초선 중에서 누가 크게 될 재목인지 살펴 키우는데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과 자리를 가진 한 초선 의원도 "김태흠 선배가 정말 사심 없이 우리 초선들 중에서 '누가 크게 될만한가'만 보고 다니는 것 같더라"고 전했다.


경선 직전의 '벼락치기'식 만남이 아니라 평소부터 초선 의원들을 자주 만나고 다닌 결과, 상대적으로 진정성이 잘 전달됐다는 분석이다. 또다른 초선 의원은 "원내에 들어오기 전에 TV나 미디어를 통해 접했던 이미지와는 딴판"이었다며 "만나보니 굉장히 순수하고 진솔하더라"고 평했다.


김 의원 본인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신의(信義)다. 나는 사람과의 만남이나 일 속에서 신의를 가장 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며 "나를 아는 분들은 김태흠의 인간미를 다들 좋아한다"고 자신했다. 이같은 개인적 장점이 반영된 '예고된 돌풍'이었다는 분석이다.


네모 깎아 32각형 만드는 '맨투맨 스킨십' 작렬
"죄송한데 1차에선 김태흠 찍겠다" 상당수 출연
경쟁 원내대표 후보 일부는 '이변 가능성' 감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다양한 진로 열려
국민의힘 김태흠 의원(왼쪽)이 30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원내대표 선출 의원총회에서 김기현 신임 원내대표와 결선 투표까지 경쟁을 펼치다가 김 원내대표가 당선을 확정짓자 단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런 점을 잘 보여주는 키워드가 '32각형'이다. 원내대표 후보들은 경선을 준비할 때, 동료 의원들 명부를 출력한 뒤 접촉하면서 ○△□× 등으로 분류한다.


그런데 김 의원의 명부에는 특이한 도형이 있었다. 특정 동료 의원을 가리키며 "이것은 뭐냐"고 묻자 "32각형"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불명'을 뜻하는 네모가 깎이고 깎여 동그라미가 될 때까지 만나고 또 통화하고 다시 만나며 공을 들여가는 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가 "32각형"이었던 셈이다.


김태흠 의원의 돌풍 가능성을 언론이나 정치권 관계자, 심지어 동료 의원들조차 내다보지 못했지만, 경쟁자인 다른 원내대표 후보들은 일부 감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원내대표 후보의 핵심 관계자는 "의원이 찾아갔을 때 '찍어드리겠다' '걱정 말라'는 말은 찍을 수도 있고, 찍지 않을 수도 있는 진의를 알 수 없는 말"이라며 "찾아갔는데 '1차에서는 김태흠 의원 찍어야 하겠다. 죄송하다'며 '결선에서는 꼭 찍어드리겠다'고 한다면 이것은 진짜"라고 귀띔했다.


이 원내대표 후보가 만난 동료 의원들 중 '죄송한데 1차에서는 김태흠 의원 찍겠다'고 말한 의원이 스무 명에 육박했다. 이에 따라 해당 의원실은 김태흠 의원의 표를 스무 표로 애초부터 계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후보가 김태흠 의원 표를 스무 표로 본다더라"는 말을 경선 이틀 전에 전해들은 김 의원은 "다들 자기 표는 최대한 늘려잡고 남의 표는 줄여서 보기 마련인데, 자기들이 보기에도 내가 스무 표라고 하면 실제로는 몇 표겠느냐"며 "나한테 '플러스 알파'가 있지 않겠느냐"고 자신감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김 의원은 이날 경선 1차 투표에서 30표, 결선 투표에서 34표를 득표하는 기염을 토했다.


'플러스 알파' 호언장담을 했지만 이날 돌풍은 본인의 예상조차도 뛰어넘은 결과였던 것으로 보인다. 1차 투표에서 30표로 결선 진출이 확정되자 김태흠 의원은 표정은 담담하게 관리했으나 몸을 심하게 떠는 것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김성원 경선관리위원장이 "그만 떠시라"고 웃으며 농담을 건넬 정도였다.


1차 투표 전의 상호 주도권 토론 때에는 농담을 섞어가며 좌중의 웃음을 자주 유도했지만, 결선 투표 직전의 3분짜리 최종 정견 발표 때에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상대 후보인 김기현 원내대표가 결선 진출을 예상한 듯 상당히 준비된 최종 정견 발표를 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김태흠 의원이 이날 비록 결선 투표에서는 졌지만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야당다움'을 원하는 전통적 우파 지지자들의 절박함을 대변할 대표주자로서의 위상을 확보한 이상, 향후 당 안팎의 문제에 있어서 목소리를 높일 기반이 확보됐다"며 "5선 정진석·4선 이명수 홍문표 등 다선 중진의원들이 많은 충남 정치권에서 존재감을 우뚝 드러내게 됐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오늘의 경험을 디딤돌 삼아 내년 원내대표 경선에 재도전하는 것도 가능하며, 내년 지방선거에서 충남도지사에 출마하라는 요구도 높아질 듯 하다"며 "다양한 정치적 가능성과 진로가 열리게 됐다"고 내다봤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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