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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이 부르는 악마의 노래 '태움' ③] "오늘도 태움은 계속되고 있다"


입력 2021.03.14 00:00 수정 2021.03.14 08:50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업무 중압감, 폐쇄적 문화, 인건비 절감, 개인 일탈 복합된 '난제 중에 난제'

'열악한 근무환경'에 '사라진 마음'…"병원 돌아가려면 태움 당연한다" 경연진도 외면

충분한 인력확보, 교육전담간호사 배치 의무화, 폐쇄적인 조직문화 개선 '절실'

(자료사진) ⓒ연합뉴스

"연차가 어린 간호사들은 오늘도 병원을 떠나고만 싶다."


지난 2016년께부터 중대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유래에서 짐작할 수 있듯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교육하는 과정에서 가하는 지속적인 괴롭힘을 의미한다. 그동안 수많은 피해 사례들이 전해졌지만, 아직도 태움은 전국 병원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게 현직 간호사들의 호소다.


만연한 태움의 흔적은 통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가 36개 병원을 대상으로 간호사 이직률 실태를 조사한 결과, 2018년 한 해 동안만 간호사 이직률은 15.5%에 달했다. 이는 간호사를 제외한 직원의 이직률 6.67%의 2.3배에 해당하는 것으로, 특히 이직한 간호사 가운데 1~3년 저연차 간호사 비중이 66.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조사인 보건의료노동자 3만5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 보건의료노조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66.6%는 '이직을 생각해봤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직을 하고 싶은 이유는 '열악한 근무조건 및 노동강도', '낮은 임금수준', '직장문화 및 인간관계(괴롭힘 등)' 순으로 답했다.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열악한 근무환경"


전문가들은 태움이 발생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열악한 근무환경을 꼽고 있다. '열악한 근무환경 → 빈번한 이직 발생 → 신입 간호사 배치 → 신입 간호사의 부족한 업무능력으로 인한 업무 과중 → 열악한 근무환경' 이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나아가 '환자의 안전이 직결됐다'는 업무적 중압감까지 가세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이는 직장내 괴롭힘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비체계적이고 부족한 신입 간호사 교육, 과중한 업무 압력 등이 일 관련 괴롭힘으로 이어진다"며 "이런 구조적인 환경들이 결국은 대인갈등으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건통계 2020'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 간호인력은 인구 1000명당 7.2명으로 OECD 평균인 8.9명보다 1.7명이나 적었다. 여기에 간호조무사까지 제외할 경우 그 절반인 3.7명 수준으로 대폭 떨어진다. 해외 선진국에서는 간호사 3명이 할 일을 우리나라는 1명의 간호사가 맡고 있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소재 대학병원 간호사는 "1년 차 간호사와 10년 차 베테랑이 똑같은 일을 하면 10년 차 베테랑이 잘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며 "한 달밖에 안 된 간호사를 가르치는 것 없이 많은 일을 시키면서 '넌 왜 이것도 못하냐'고 꾸중만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자료사진) ⓒ데일리안

"병원 돌아가려면 태움 당연하다 여기며 경연진도 외면"


전문가들은 태움 문화를 근절하려면 의료계의 폐쇄적인 조직 문화를 개선하고 충분한 인력확보가 이뤄져야만 한다고 입을 모은다. 태움을 일부 간호사의 일탈행위로 치부하고 관련 교육·캠페인을 벌이는 일회성 대책으로는 태움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구조를 깰 수 없다는 것이다.


부천 소재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간호사는 "내부적으로 불만 수리 제도가 있지만 불만을 제기했다간 다시는 의료계에서 일할 수 없다는 게 일종의 상식으로 통한다"며 "선배 간호사들은 병원이 돌아가려면 태움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병원 경영진도 일부러 외면하고 수수방관한다. 이런 잘못된 인식들이 고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태움은 병원 업무의 특수성, 병원 문화의 폐쇄성, 인건비 절감 시도, 일부 개인의 일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굳어진 문제"라며 "교육전담간호사 배치 의무화와 간호 인력 확대 노력이 간호사들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어주고, 태움 문화도 약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 치의 여유도 없는 근무 환경에서 도제식으로 신입 간호사를 가르치고 실수를 뒤처리해야 하는 선배 간호사들의 일탈은 구조적으로 어쩔 수 없는 현상일 수도 있다"며 "태움 가해자가 또 한편으로는 피해자이기도 한 측면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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