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과 정의, 상식…중도우파 기치로 나서면 진보좌파에 우위
보수우파와 중도층 대거 흡인하는 진영 설정, 리더십이 관건
윤석열의 대권 도전은 중도층의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승패 역시 중도층의 지지 여부에 달려 있다.
제1야당 국민의힘 다수 의원과 비대위원장 김종인이 모르고 있거나, 알아도 모르는 척하고 있는 사실은 한국의 정치 지형이 현재 세계적 추세인 양극화와 다른 양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진보와 보수에 중도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3극화를 보이는 나라다.
문재인 정권에 실망하고, 586 운동권 기득권 세력으로 대표되는 진보좌파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 중에 정통 보수우파 정당, 즉 국민의힘에는 정을 줄 수 없는, 반(反) 태극기 또는 반 박근혜 심리가 엄연히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그 비율은 대략 20~30%다.
이들 유권자는 최소한 이번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 그리고 내년 대선까지는 그런 마음을 쉽게 바꾸지 않을 것이다. 서울 보선에서 안철수가 여론의 우세를 얻는 건 안철수라는 인물보다는 그의 ‘지명도+제3의 당’이라는 배경이 작용해서다.
김종인이 아무리 안철수를 무시해도 서울 시민들은 그쪽으로 더 몰려든다. 왜? 국민의힘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차피 국민의힘은 그의 문재인 정부 초기 적폐 청산 수사 지휘 원한 때문에도 그를 적극적으로 환영하지 못하는 처지다.
사퇴한 검찰총장 윤석열의 대선 출사표로 읽힌 입장문의 핵심은 이 문장이었다.
“제가 지금까지 해왔듯이 앞으로 어떤 위치에 있든지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보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국민... 이것은 좌도 우도 아니며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의 중도우파적 정치 이념을 축약해서 표현한 열쇠 단어들이다.
윤석열은 본인의 입을 통해서나 주변 사람들의 평가로 볼 때 진보 쪽은 확실히 아니다. 그렇다고 보수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도 없는 인물이다. 그냥 검사라고 해야 가장 정확한 분류인데, 보수 성향의 법치주의자라고 하면 과히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이런 정치적 진영이 4일 총장 사퇴를 밝힌 입장문에서 확인된 셈이다. 이 문장은 또 그가 사퇴 후 정치를 통해 민주법치를 회복하고 지키면서 현 정권과 싸우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자 정계 진출 선언으로 해석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윤석열의 사퇴 입장문은 그러므로 대선 출사표 성격을 띠고 있다. 그는 짧은 사퇴의 변을 이렇게 밝혔다.
“이 나라를 지탱해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지금 파괴되고 있다. 그 피해는 오로지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우리 사회가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상식과 정의가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보고 있기 어렵다. 검찰에서의 제 역할은 지금, 여기까지다.”
이 사의 표명 후 1시간여 만에 청와대는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수리했다. 하는 김에 며칠 전 사의 파동으로 소란을 일으킨, 윤석열 달래기 용도로 기용된 청와대 민정수석 신현수도 마저 정리했다. 대통령 문재인과 집권 세력이 윤석열을 어떻게 봐 왔고, 그의 선제적 사퇴 발표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으며, 향후 그의 정치 행보에 어느 정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윤석열은 퇴임식도 없이 검찰청사를 나가며 전국의 검사와 수사관들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남겼다.
“저는 이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헌법이 부여한 저의 마지막 책무를 이행하려고 한다. 검찰 수사권이 완전히 박탈되고 검찰이 해체되면 70여 년이나 축적되어 온 국민의 자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특권층의 치외법권 영역이 발생하여 결과적으로 국민이 피해를 입게 된다.”
여기에서도 민주주의, 법치주의, 마지막 책무, 국민의 피해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 그의 맹반격으로 집권 세력의 검찰 해체 작업이 적어도 주춤해지거나 무산될 수도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던 차에 그가 전격 사퇴해버린 배경은 의문이다. 이를 그의 정계 진출 결심과 연결하게 해 보는 이유다.
사퇴일을 4일로 잡은 것은 여권 의원 최강욱 등이 추진 중인 ‘윤석열 출마금지법’이라고 불리는, 판검사 즉시 출마금지법(현직 검사·법관이 출마하려면 1년 전 사직 의무화)을 의식한 것일 수도 있다. 차기 대선일은 내년 3월 9일이다. 그 법이 실제로 통과되고 소급적용까지 되도록 하더라도 피곤해지지 않게 하기 위한 택일이다.
그리고 정권이 검찰 해체를 추진하는 숨은 이유가 줄곧 퇴진 압박을 받아온 자신이 물러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도 작용했다. 그는 최근 주변에 “나 때문에 중수청을 도입해서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을 망가뜨리려고 하는 게 분명하다. 더는 지켜볼 수 없다. 내가 그만둬야 멈출 것이다”라고 심경을 토로했다고 한다. 검찰이 수사권마저 완전히 빼앗길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만큼 몸을 던져 조직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그는 자기 말대로 “법치가 말살되고 정의와 상식이 무너진”, 문재인 정권에 맞서 ‘자유민주주의와 국민 보호’를 위해 정치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청와대와 집권 민주당 강경파와 지도부는 화근(禍根)을 제공한 당사자들로서 두려운 마음으로 화내며 그를 평가절하하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윤석열은 당분간 여야 정치권과 거리를 두고 언론 인터뷰와 강연, 그리고 SNS를 통한 나랏일 걱정과 대안 제시로 정치 연습을 하며 제3지대에 좌표 설정을 하고 존재감을 부각해 나갈 필요가 있다. 검찰이 아닌 국민 전체를 사로잡는 리더십이 관건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가 강조할 메시지, 즉 민주주의와 법치, 공정과 정의, 그리고 상식은 시대정신이다. 그는 이 점에서 일단 유리한 고지에 있다.
글/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