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침해" 부작용 우려 여전하지만…새해 들어 노사 협의 착수
윤종원 행장, 文대통령 대선공약 이행차원에서 전격 도입 가능성도
기업은행 노사가 '노조 추천 이사제' 도입 여부를 놓고 논의를 시작해 금융권 이목이 집중된다. 금융권에선 제도 도입으로 노조의 경영권 침해와 그로 인한 금융시장 대응이 지연되는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 노사는 이르면 내달 후보 추천을 목표로 본격적인 노조추천이사제 논의에 착수했다. 기업은행은 2월 김정훈, 3월 이승재 사외이사의 임기가 끝난다. 기업은행 노조는 "노조가 사외이사를 추천할 수 있다"는 조항을 정관에 넣겠다는 입장이다. 공석이 되는 사외이사 가운데 한 자리는 노조 추천 인사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다른 금융사에서도 노조 추천 이사제 도입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난 상황에서 '시중은행 성격을 가진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논의 과정을 금융권이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다. 금융권에선 노조 추천이사제가 도입될 경우, 기업은행이 '1호'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시중은행 한 임원은 "시중은행과 동일한 성격의 기업은행이 노조추천이사제를 논의한다는 점에서 다른 공공기관이 논의를 하는 것과는 의미가 많이 다르다"면서 "실제로 가능성도 제일 높은데, 기업은행이 제도를 수용하면 금융권 전반에 도입이 빠르게 확산하는 상징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추천이사제는 노조가 추천한 전문가가 사외이사로 참여하는 제도로,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 가운데 하나로 꼽혀왔다. 기업은행이 새해들어 논의의 물꼬를 트면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등 다른 금융공공기관 노조도 노동이사제 추진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文정부 국정과제‧대선공약 이행하느냐…윤종원 행장 결정이 관건
무엇보다 제도 도입의 키를 쥔 윤종원 행장이 어떤 결정을 할지가 관건이다. 애초에 노조추천이사제 논의의 불을 지핀 것도 지난해 윤 행장이 '낙하산 행장 반대' 투쟁에 나선 노조를 달래기 위해 요구사항을 받아들이면서 비롯됐다. 윤 행장은 노조의 시위에 막혀 출근하지 못하다가 노사공동선언문에 합의하고 나서야 첫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윤 행장이 임기말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이자 대선공약을 매듭짓는다는 차원의 정치적 판단이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다. 윤 행장은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으로 문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통했다. 기업은행은 "아직까지 정해진 바 없다"며 신중한 입장이다. 기업은행 사외이사가 행장의 추천을 거쳐 금융위원장이 임명하는 자리인 만큼 먼저 '정부의 표정'을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제 도입을 국회에 건의하기로 한 것도 기업은행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다. 금융위 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회도 '금융사에 근로자추천이사제 도입 검토'를 권고한 바 있다. 이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관련 법안(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다만 지난해에도 KB금융지주를 비롯해 매년 도입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시중은행의 경우 주주총회에서 반대에 부딪혔고, 금융공공기관은 주무부처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투쟁 위주'의 한국적 노동 현실에선 경영권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반영된 결과였다. 현재 금융당국도 "공감대가 필요하다"며 제도 도입에 따른 후폭풍을 고려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금융권에선 노조 추천 이사제가 경영 투명성과 책임성 제고 등의 장점이 있지만, 국내 금융권 현실을 감안하면 경영진과의 마찰을 비롯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 '신의직장'으로 통하는 금융 공기업이 명예퇴직 위로금 확대나 처우개선 등 노조의 요구에 휘둘리게 되면 여론의 반발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기업은행 관계자도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사안"이라고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노조의 과도한 경영 개입 우려가 분명하지만 정부의 정책실현 의지에 따라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면서 "정치적 논의는 완전히 배제하고 금융시장에 맡기는 방식으로 논의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빅테크, 핀테크, 모바일 등 금융사의 중요한 판단이 필요한 시기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