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무7조'라는 글로 관심을 모았던 진인 조은산이 23일 블로그에 '형조실록2'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정의라, 어느 세상의 정의를 말하는 것이냐"라며 검찰 개혁을 비판했다.
조은산은 "목적을 잃은 사법 개혁과 목전에 다가온 사법기관 장악은 표리부동한 조정 대신들의 입을 거쳐 아름다운 노랫말로 둔갑했다"고 지적했다.
조은산은 “180개의 칼날이 103개의 뼈에 닿았고 부러져 튕겨나갔다”고 했다. 180석의 여권이 103석 국민의힘의 반대에도 공수처법 등을 처리한 것을 빗댄 표현으로 해석된다.
조은산은 “형조판서(추 장관)는 103개의 조각난 시신을 밟으며 참판(윤석열 검찰총장) 앞에 섰다”며 “판서가 말했다.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럼에도 아직 조각으로 남아 있다.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공명정대한 세상을 향한 꿈이었다’”고 했다.
앞서 추 장관이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라는 시를 인용하며 했던 발언을 언급한 것이다. 추 장관은 지난 16일 윤 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 징계를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며 사의를 표명한 뒤 페이스북에 “모든 것을 바친다 했는데도 아직도 조각으로 남아있다”며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공명정대한 세상을 향한 꿈이었다”고 썼었다.
조은산은 이 글에서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 국면에서 문 대통령이 침묵했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전문] 다음은 진인 조은산 블로그 내용이다.
형조실록2 (바람,겨울,조각,정의)
<바람>
선비는 집을 나와 숲길을 걸었다.
소곤소곤 다가왔던 저편의 말들이
바람결에 실려 귓가를 맴돌았다.
조곤조곤 내뱉은 나의 지독한 말들은
어디로 흘러 들어갔을까.
선비는 눈을 닫고 코를 열었다.
가을의 내음은 축축한 옛것들의 역습이었다.
그는 어떤 이의 말을 기억했다.
붓에 힘이 과하면 붓끝이 상한다는 그의 말에
등불 아래 숨어들었던 필부의 긴 밤을 떠올렸다.
또 다른 어떤 이의 말을 기억했다.
그대의 붓은 큰 칼과 같거늘, 휘두르지 않고
무얼 하느냐는 호통에, 선비는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되물으려 안달했다.
상수리나무 군락에 이르러,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올라 잠시 쉬었다. 태풍이 오던 날,
그는 흔들리는 나무에게서 무수한 물음을 들었다고 말했다.
시인에게 의문을 전한 숲에서, 선비는 답을 찾아 헤매었다.
선비에게 숲은, 의문이 아닌 외침의 군락처럼 느껴졌다.
숨을 들여 마신 선비는 지필묵을 펼쳐 바람을 일으켰다.
세상의 모든 붓이 휘었으니 나는 붓을 꺾지 않을 것이다.
일필휘지하리라. 선비는 붓을 고쳐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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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잠룡이 몸을 틀어 수면 위로 비상하니
하나는 수룡이오 하나는 화룡이라
수룡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꿔 신망을 잃고
화룡은 천하만민 불길로 태워 인망을 잃는도다
물은 불 앞에 한낱 수증기에 지나지 않고
불은 물 앞에 한낱 잿더미에 불과하니
두 잠룡은 서로를 사해 소멸하고 말았네
만백성을 위해 일어난 자
현세를 디뎌 내세를 향해 날아오르니
물을 품고 화염을 견디는 자
냉철한 비늘로 견고한 지성을 감싸 안았음에
마침내, 빙룡이 승천하여 하늘을 지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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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친 선비는 힘껏 붓을 떨쳤다.
흘러나온 먹이 궤적을 그리며 원에 이르렀고,
쌓인 낙엽에 깊이 스며들어 속을 검게 물들였다.
하늘 아래 윤(尹)만 있더냐. 그대들 또한 훌륭하다.
드러난 묵적에 선비는 살며시 웃었다.
불어온 바람에, 그는 가만히 앉아 귀를 열었다.
고을을 휩쓴 늦가을의 바람이 백성들의 한숨 찌꺼기를
실어 날랐고, 우글거리는 통탄의 세포들이 북서풍을 타고
숲을 향해 넘실댔다.
한 줄기 바람 안에, 집을 잃고 거리에 내쳐진
민초들의 아우성이 담겨있는 듯해 선비는 귀를 기울였다.
다시 불어온 바람에, 왕의 부재와 조정의 난기류에 휩쓸려
갈팡질팡하는 대신들의 망언이 실려와 선비는 슬펐다.
목적을 잃은 사법 개혁과 목전에 다가온
사법기관의 장악은 표리부동한 조정 대신들의
입을 거쳐 아름다운 노랫말로 둔갑했고,
을,를,이,가로 이어지는 간사한 말들이 들려와
선비는 분노했다.
짙게 내려앉은 바람이 능선 위로 몰려가
이내 흩어졌고 아지랑이가 걷힌 자리에는
독버섯들이 자라나 포자를 뿜어댔다. 흩뿌려진 포자는
이쪽 저쪽을 넘나들며 지독한 말들의 씨앗을 뿌렸다.
이쪽과 저쪽의 말들은 모두 맞는 듯했고 때론 모두
틀린 듯했는데 고단한 백성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아 처량했다.
눅눅한 울음이 배었고, 절절한 물음이 배어 가을바람은
서늘했다. 그러나 곧 시린 겨울이 다가올 것임은
아는 자만이 아는 것이었다.
'스쳐 지나길 바랄 뿐이다.'
선비는 몸을 일으켜 낙엽을 털어내었다.
<겨울>
겨울에, 백성과 백성은 서로를 죽였다.
남편이 아내를 찔러 죽였고, 스스로 몸을 던졌다.
부모가 자식을 가두어 죽였고,
자식은 부모의 목을 졸라 죽였다.
아이가 아이를 윤간했고, 끌고 가 때려죽였다.
어른이 아이를 강간했고, 아이의 속을 헤집었다.
아이는 아이라서 면죄부를 받았고,
어른은 취했다 하여 면죄부를 받았다.
술에 취한 자의 우마차에 아이가 깔려 죽었고,
조각난 시신을 어미가 울며 주워 모았다.
관원들이 말하길, 고인 피가 곧 얼어붙을 것이라 했다.
미처 거두지 못한 아이의 시신 위로 비질이 오갔고,
피는 물이 아니라며 울부짖던 어미는
핏물 위에 드러누워 혼절했다.
먼저 묻힌 이들의 봉분을 밟으며 상여꾼은 장지로 향했다.
곡성을 따르던 발자국들이 떼가 앉지 못한 무덤 위에
깊이 박혔다.
깨어지고 부서지고 잘려나간 시신들이 줄을 지어 나갔고,
무너진 봉분은 결국 관짝을 드러낸 채 평토되었다.
아랫것들에게 법은 멀어서 닿지 않는 허상과 같았고,
위엣것들에게 법은 가까이 손에 닿는 이상과 같았다.
아랫것들의 세상에서 법은 존재와 부재를 오갔고,
위엣것들의 세상에서 법은 개혁과 장악을 오갔는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진 건 매한가지여서 무참했다.
왕의 부재는 가여웠고 정쟁의 태세는 가팔랐다.
온 나라를 뒤집은 개혁의 논쟁이 참람해,
백성은 흙 묻은 손으로 눈과 귀를 막았다.
민생이 아닌 정쟁의 도구로 전락한 법치는
정신이 아닌 사물로써 자리매김했고,
정쟁에서 승리한 자들의 전리품으로 변모했다.
무너진 세상에서, 잿빛 거리에서, 붉은 산과 들에서,
백성은 백성의 몸에 칼을 깊이 박았고
대신은 대신의 입에 재갈을 물려 발설을 억눌렀다.
달과 별이 합쳐 부서졌고 조각난 나라 위에 파편이 내렸다.
밤에, 부서진 관짝 모서리로 조각난 아이의 혼백이 기어 나왔다.
꺄르륵 웃던 아이는 흩어진 제 팔다리를 찾아 술래잡기를 했다.
인왕산의 들개가 짖었고, 북악산의 들개가 마주 짖었다.
밤에도, 백성은 백성을 죽였다. 금전이 오갔고 면죄부가 오갔다.
다시 상여가 오갔다. 그러나 나간 시신은 다시 오지 않았다.
<조각>
시신이 나간 성문으로 참판이 들어섰다.
이른 새벽에 교대를 마친 군졸은 귀신을 본 듯,
제 손발을 저어가며 횡설수설했다.
순찰 기병이 즉각 그의 출현을 보고했다.
검을 찾는 그의 물음이 함께 보고서에 올랐고
형조판서는 격노했다.
관아의 문을 박차고 형조의 기발이 뛰쳐나왔다.
박차를 가한 말은 좌로 기수를 틀었고,
중추부와 삼군부를 지나 광화문에 닿았다.
기발은 어문을 치고 들어가 강녕전으로 기동했다.
회랑을 오가던 궁녀들이 기겁하며 물러섰고
각 문 아래의 금군이 놀라 자빠져 흩어졌다.
강녕전에서, 어전에 임한 기발은 잠시 대기했다.
동이 텄고, 일출의 끄트머리가 아른댔다.
참판이 육조거리 위에 섰고, 나찰은 이글댔다.
울던 아이가 울음을 그쳤고, 높이 날던 새가 대신 울었다.
짖던 개들이 짖음을 멈췄고, 땅을 기며 낑낑댔다.
마른 장작이 쪼개지듯, 메마른 민심이 좌우로 갈라섰다.
좌선의 군중 사이에서 조롱과 야유가 쏟아져 나왔고,
우선의 군중 사이에서 격려와 찬사가 쏟아져 나왔다.
말들과 말들이 뒤섞여 둔탁해진 언어들이 파열음을 내었고,
정신과 정신이 뒤섞여 일그러진 결의 단면들이 파장을 그렸다.
역순으로 회귀한 기발이 다시 관아에 닿았다.
기발은 품에 안은 사령장을 판서에게 전했다.
펼친 사령장은 비어있었다. '무언령(無言令)' 에
감복한 판서는 왕의 문서에 낮게 엎드려 절했다.
북이 울렸다.
180개의 기치를 휘날리며 좌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103개의 기치를 휘날리며 우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180개의 철릭이 나부끼며 개혁이라 외쳤고,
103개의 철릭이 나부끼며 장악이라 받아쳤다.
180개의 칼이 일시에 뽑혔고, 칼날이 비명을 질렀다.
103개의 칼이 일시에 뽑혔고, 칼날이 울었다.
180개의 살의가 공세로 뻗어 나갔고,
103개의 결의가 모여 저지선을 구축했다.
180개의 칼날이 구령에 맞춰 전진했다.
이념과 정신의 구령은 웅장했고 지축을 흔들었다.
103개의 칼날이 구령에 맞춰 방어진을 형성했다.
수세와 열세에 놓인 구령은 처절했고 하늘이 흔들렸다.
눈이 내렸다. 얼어붙은 오천만의 삶이 혼을 뿌렸다.
비틀어 짜내린 세상의 액즙들이 얼고 엉겨 붙어 내렸다.
아비의 흥건한 앞섬이, 어미의 흥건한 소맷자락이 내렸다.
노인의 눈썹이 휘날렸고 아이의 솜털이 춤을 췄다.
칼이 내렸다. 내린 칼날에 눈송이가 베어져 흩어졌다.
180개의 칼날이 103개의 뼈에 닿았고 부러져 튕겨나갔다.
피가 솟아 울컥였고 벤 자와 베인 자의 몸에 함께 튀었다.
반원을 그린 은빛의 날이 붉게 물들어 환집했다.
"강철의 무지개인가. 아름답다."
판서가 입을 벌려 말했다. 벌린 입으로 아이의 혼백이
흘러나왔다. 조각난 아이는 몸통으로 바삐 기었다.
흐드러진 시신들의 팔다리를 집어 제 몸에 갖다 대었고,
제 것이 아니라며 아이는 엉엉 울었다. 고인 핏물 속에서,
윤간 당한 아이가 기어 나와 어미를 찾아 헤매었고
맞아 죽은 아이가 기어 나와 아비를 찾아 헤매었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부처의 세상에서, 인간의 조각은 각자의 도생이었고
인간의 세상에서, 인간의 조각은 서로의 살생이었다.
죽고 죽이는 인간들의 세상에서 부처는 보이지 않았고
부처를 내세운 인간의 말들이 허공을 횡행했다.
103개의 조각난 시신을 밟으며 판서는 걸었다.
판서는 참판 앞에 섰다. 판서가 말했다.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럼에도 아직 조각으로 남아 있다.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공명정대한 세상을 향한 꿈이었다."
참판이 답했다.
"썩어 빠진 세상일지라도, 하나됨이 아름답소."
제 각각의 팔다리를 이어 붙인 아이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딛고 선 왼발 옆에 허공에 뜬 오른발이 나풀댔다.
서로 다른 왼팔과 오른팔로 아이는 두 눈을 가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꺄르륵 웃던 아이는 다시 술래가 되었는지,
어느 샌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호패를 집어던진 판서가 깔깔대고 웃었다.
참판은 두손으로 눈을 집어 뭉쳤고 한 움큼 베어 물었다.
차갑게 식힌 말들이 목구멍을 타고 넘었다.
텅 빈 육조거리 위에, 피가 고여 찰랑였다.
밤새 기온이 하강했다. 피는 얼지 않고 길게 머물렀다.
<정의>
선비는 피마길을 따라 발길을 옮겼다.
배복을 피한 백성들이 운종가로 흘러들었고
끼니에 맞춰 국밥집을 찾아 모여들었다.
소의 잡뼈를 우려낸 국물이 뽀얗게 일었고
뜨끈한 김을 쏟아내며 사발에 담겼다.
토렴한 밥알 위에 우설수육이 모로 누워 몸을 덥혔고
어슷하게 썰어낸 겨울의 대파가 같이 누워 향을 더했다.
소의 형상을 한 백성들이 소반 앞에 모여 앉았다.
쟁기를 끌던 수소가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젖을 빨려 기력이 쇄한 암소의 국그릇에 소금을 풀었다.
둘러앉은 소들이 소의 혀를 잘근잘근 씹어댔고
우매한 혀를 놀려 사람의 말들을 쏟아냈다.
우적우적 밥알을 씹으며 정의를 말했고,
으석으석 깍두기를 베며 정의를 말했다.
꿀렁꿀렁 국물을 마시며 정의를 말했고,
우우 하며 울다가 이내 아아 하고 웃었다.
'정의라, 어느 세상의 정의를 말하는 것이냐.
이쪽이냐, 저쪽이냐. 아랫것이냐, 위엣것이냐.'
취한 선비는 문을 열고 나와 거리에 섰다.
달과 별이 사그라진 길 위에, 선비는 아이를 보았다.
제 각각의 팔다리를 가진 아이를 보았고,
옷이 벗겨진 채 하혈하는 아이를 보았다.
두 눈이 부어 올라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를 보았고,
입이 부서져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았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쏟아져 나온 아이들이 선비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아이야. 아이야.
내가 저리 숨을게.
너희가 나를 찾아보렴.
선비는 훤히 보이는 곳에 숨어 들었다.
아이들이 휘청이며 다가왔다.
선비는 손을 내밀었다.
아이들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다시, 술 취한 자의 우마차가 육조거리를 질주했다.
선비는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