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리스트에서 음악은 누군가에게 위로를, 누군가에게는 공감과 기쁨을 선사한다. 이같은 노래 한 곡이 발표되기까지 보이지 않는 손들의 노력이 동반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수 외 프로듀서, A&R, 엔지니어, 앨범 아트 디자이너 등 작업실, 녹음실, 현장의 한 켠에서 노래가 나올 수 있도록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봤다.<편집자 주>
UCKU(우쿠/현재욱)는 작곡팀 어벤전승으로 이름을 알린 23년차 작곡가다. 문명진의 '관심' 편곡으로 시작해 보아, 신비, 레인보우, 빅스 레오, 뉴이스트, 에이프릴, 몬스타엑스, 우주소녀 등 많은 아이돌 그룹과 작업했으며 17년째 패션쇼 음악도 만들고 있다.
고등학생 때부터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홀로 음악을 시작한 UCKU의 시작은 힙합이었다. 1999년 '2000 대한민국' 앨범 'I LOVE YOU'에서 랩을 하고 문명진의 '관심' 편곡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대중가요 업계에 뛰어들었다.
"문명진의 '관심'과 보아의 '마이 지니'(My gennie)가 아주 초창기 때 곡입니다. 작곡으로 첫 데뷔한 건 권민중 '사랑이 가기전에'네요. 정신없이 음악을 하다보니 어느새 23년차가 됐습니다."
뮤직 퍼블리싱으로부터 꾸준히 제안도 왔었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음악을 만들고 곡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뮤직 퍼블리싱은 작곡, 작사가들의 곡을 니즈에 맞는 기획사나 아티스트에게 연결시켜주며 곡을 관리하고 권리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케이팝 시장이 커지면서 아티스트들이 앨범을 준비할 때 많은 곡을 받아보길 원하면서 퍼블리싱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이런 흐름에 UCKU는 개인 작곡가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개인 작곡가들의 곡이 언제부턴가 잘 팔리지 않자, 예전에는 곡 탓이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곡도 중요하지만 판도 자체가 바뀐 것 같습니다. 많은 작곡가들이 퍼블리싱에 의탁해 곡을 팔고 수익을 나눠요. 20년 동안 작곡한 저나, 이제 막 시작한 친구들이나 똑같은 악기, 소스를 가지고 시작하는 환경이 됐어요. 과거에는 프로와 아마추어 차이가 소스와 그의 활용이었는데 지금은 똑같은 소리로 시작하니까 곡을 받아보는 입장에서 큰 차이가 없게 느껴지는 거죠. 작곡가는 퍼블리싱을 통하면 직접 곡을 팔지 않으니 영업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요. 또 소속사 입장에서도 개인 작곡가에게 2~3곡을 받는 것보다 퍼블리싱에 의뢰해 5~7곡을 받는게 더 이롭고요. 자본주의 시대에 나쁜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음악 시장에서 음악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된 것 같아 안타까워요. 이제는 음악보다는 어떤 가수가 부르냐가 더 중요해졌어요."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에이티즈, 몬스타엑스, 세븐틴 등 해외에서 인기를 얻는 가수들로 인해 케이팝의 위상도 한층 높아졌다. 국내 뿐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케이팝 시장이 됐지만, UCKU는 한국 작곡가들이 기회를 잃는 구조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케이팝은 우리나라 스태프들이 만든 곡으로 명성을 얻었는데, 지금은 외국 작곡가들을 많이 기용해 아쉬워요. 케이팝은 우리나라 음악이잖아요. 지금 이렇게 된 풍토가 아쉽습니다. 대형 소속사 아이돌 그룹의 타이틀곡 크레딧에서는 우리나라 작곡진들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케이팝이 말 그대로 케이팝이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현재 UCKU는 트랙 메이커 3명과 함께 음악 작업을 하고 있다. 높아진 연차만큼 업계 후배들이 많아진 지금, 곡 작업이 들어오면 먼저 나서기 보단,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후배를 찾게 된단다. 코로나19 때문에 가수들의 앨범이 밀리거나 엎어지는 일이 반복되자 위축된 후배들을 걱정했다.
"제 인프라를 이용해 퍼블리싱 체계로 일하고 싶진 않아요. 앞서 말했듯이 개인 작곡가들의 기회가 적어지다보니 제가 퍼블리싱은 아니지만, 곡 콘셉트와 장르를 들으면 잘할 수 있는 후배를 먼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 친구들도 얼른 잘 되야 보람도 느끼고 더 즐겁게 음악을 할 수 있을테니까요."
UCKU는 스스로 히트 작곡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많은 곡을 만든 건 사실이지만 대중을 관통하는 노래는 아직 만들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UCKU의 최근 고민 중 하나다. 그러면서 오래동안 음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건 곡을 팔 수 있는 루트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말하는 현실이 속상하지만, 지금 가요계 시장이 그렇습니다. 작곡가들이 음악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후 대중의 평가가 제일 마지막 관문입니다. 대중의 평가를 받기 위해선 차트인을 해야 하는데, 저도 거기까지 못가봤어요. 작곡가 생활을 오래 했지만 알려진 곡은 뉴이스트의 '여보세요' 뿐이거든요. 좋은 곡이 나와봤자 아무도 모르면 의미가 없어요. 요즘 제가 자주 하는 고민입니다. 저는 1위 곡이 부럽진 않아요. 1위 가수에게 곡을 주고, 자신이 하고 싶은 장르로 남 눈치 안보고 음악을 하는 것이 부러워요."
UCKU는 오래 음악을 하는 작곡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다른 곳에 눈을 돌리기 보다는 그저 노래를 만드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저는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고 현장의 생동감도 즐거워요. 제작까진 하고 싶지 않고 작곡가로서 오래 일하고 싶어요. 작곡가도 소모품이란 생각이 요즘 들더라고요. 꿈을 가지면 계속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제가 50살이 넘었을 때, 아이돌 노래 편곡을 못할 수도 있겠더라고요. 미래를 고민하지 않고 음악에서 멀어지는 순간 바로 도태되는 걸 많이 봐왔어요. 오래 음악할 수 있도록 꾸준히 자기개발을 해나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