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볼 유도능력과 좌우 타자 가리지 않고 강한 특징 높게 평가
셋업맨 또는 마무리 중용 가능성..마르티네스에 ‘보상’ 차원이라는 분석도
2010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4-1 앞선 8회 1사 1,2루에 등판해 1.2이닝을 1실점 후 포수 박경완에게 폴더 인사를 하고 ‘헹가래 투수’가 됐던 김광현은 8년 뒤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 연장 13회에 등판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은 뒤 절정의 순간을 또 맛봤다.
제시한 두 경기를 제외하면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의 KBO리그 정규시즌 세이브는 없다. 김광현은 한국을 대표하는 좌완 선발투수였다. 하지만 올해는 김광현의 마무리투수 등판을 자주 보게 될 전망이다.
21일(한국시각) MLB.com에 따르면, 김광현이 불펜으로 이동하고 5선발 경쟁자였던 카를로스 마르티네스가 선발 투수로 최종 낙점됐다. 세인트루이스는 잭 플래허티를 시작으로 애덤 웨인라이트, 다코타 허드슨, 마일스 마이콜라스, 카를로스 마르티네즈까지 5명의 선발을 확정했다.
세인트루이스 마이크 실트 감독은 “셋업맨이나 마무리투수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6월 토미존 수술을 받은 조던 힉스는 재활에 전념했지만, 당뇨병으로 인해 2020시즌을 포기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로 인한 초미니시즌 개막을 앞두고 출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힉스는 2018시즌 시속 169km에 이르는 패스트볼로 눈길을 사로잡은 뒤 지난 시즌 29경기 2승 2패 14세이브 평균자책점 3.14를 기록한 마무리 투수다.
세인트루이스로서는 뒷문이 갑자기 열려버린 셈이다. 긴급 처방이 필요하다. 현지에서도 가장 적합한 대체 카드로 마르티네스를 꼽았다. 지난해 힉스가 시즌 중 이탈한 뒤 24세이브를 올린 바 있다. 그래도 실트 감독은 마르티네스에게 선발 기회를 부여했다.
선수 개인이나 한국 야구팬들 입장에서는 다소 아쉽다. 김광현은 KBO리그에서 경력 대부분을 선발 투수로 소화했다. 통산 298경기 136승 77패 2홀드 평균자책점 3.27을 기록했다. 구원투수로서 연투는 한 차례도 없었고, 마무리투수로서 한 시즌을 소화한 경험도 없다.
캠프에서 김광현의 선발 투구 성적도 괜찮았다. 김광현은 지난 17일 부시스타디움에서 열린 자체 연습경기에서 5이닝 1피안타 5삼진 무실점 호투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스프링캠프가 중단되기 전까진 시범경기에 4차례 등판해 8이닝 무실점 쾌투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실트 감독은 김광현을 셋업맨 또는 마무리 투수로 기용하겠다고 확정했다.
마르티네스에 대한 일종의 보상과 정상 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팀 불펜의 두께를 고려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실트 감독은 선발로 활약하다 1년 반 동안 마무리 투수 역할을 했던 마르티네스에게 김광현 입단 전부터 “선발 기회를 다시 주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드러냈는데 약속을 지키는 셈이다.
힉스와 마르티네즈가 동시에 빠진 불펜에서 김광현은 셋업맨 또는 마무리로 뛸 수 있는 구위를 갖췄다고 판단했다. 실트 감독은 MLB.com을 통해 “첫 스프링캠프를 훌륭하게 잘 치렀다”고 평가하면서 “김광현은 좌우타자 상관없이 볼넷이 적은 데다 땅볼 유도능력도 뛰어나다”라며 “좌타자와 우타자를 대비한 공과 공 움직임, 승부처에서 던진 경험도 있다. 몸도 굉장히 빨리 푼다”며 셋업맨 또는 마무리투수로서 성공 가능성을 높게 봤다.
선발투수로 쌓은 풍부한 경험이 불펜투수로 뛸 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도 했다.
실트 감독은 "김광현의 훈련 파트너였던 애덤 웨인라이트도 마무리 경험이 있고 마르티네스 역시 불펜에서 뛰었다. 모두 잘 해냈다"며 "김광현처럼 수준 높은 무대에서 수많은 위기 상황을 겪은 투수라면 신뢰할 수 있다"며 김광현 불펜행이 결코 기량이 미치지 못해 내린 결정이 아님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