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제도개선 후 입법과제 달성' 기조
4대 개혁입법 실패한 열린우리당 반면교사
이낙연 "우선순위와 완급 가리자"
입법 드라이브의 끝에 '빅브라더' 우려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거대정부’의 출현을 기대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를 가장 먼저 겪은 나라 중 하나인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중앙권력에 이어 지방권력을 차지한 민주당은 의회권력까지 장악하며 5공화국 헌법이 제정된 이래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됐다. 더구나 2022년 3월 대선까지 2년 가까이 큰 선거가 없어 권력을 휘두르는데 부담도 크지 않다.
일단은 저공비행이다. 이해찬 대표는 압승으로 선거가 끝나자 ‘열린우리당’을 언급했다. 권한을 주체하지 못해 분열하고 끝내 실패했던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다. 미래권력인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도 “그때(열린우리당)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며 “새로운 의제를 선정할 때는 신중하고 지혜롭게, 우선순위와 완급을 가렸으면 한다”고 군기반장 역할을 자처했다.
정치권에서는 ‘우선순위와 완급’이라는 발언에 주목한다. 의석수만 믿고 이념적 이슈였던 4대 개혁입법(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과거사 진상규명 법, 언론관계법)을 도모하려다 실패했던 전례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다수의 힘을 보다 효과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는 ‘제도’를 먼저 만들고, 입법은 그 다음수순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제도를 바꾸는 일은 진척이 꽤 됐다. 매달 임시국회를 개최하는 것을 법률로 명시함으로써 상시국회를 만들고, 짝수 주 목요일 법안처리를 위한 본회의를 의무화하며, 상임위 법안심사소위 매주 1회 개최를 강제하는 내용의 법률안이 21대 총선 기간 발의됐다. 기간 내 원구성 협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국회의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래통합당 등 야권의 저항이 불보듯 뻔하지만, 민주당은 ‘일하는 국회’를 위한 필수적인 법률임을 강조한다. 김무성 의원과 원혜영 의원 등 여야 중진들이 함께 발의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21일 연석회의에서 “여야 중진들이 일하는 국회법을 공동 발의했다. 새로운 길을 열여야 한다는 간곡함이 전해지는 일”이라며 “보기드문 명장면”이라고 추켜세웠다.
20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아도 급할 게 없다. 범여권이 190석을 장악하는 21대 국회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민주당은 ‘일하는 국회’를 명분으로 ‘상시 국회화’와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를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여당의 입법독주를 막기 위한 합법적 저지 수단이었던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부터 무력화시키겠다는 뜻이었다.
민주당은 총선압승과 ‘역대 최악’이라는 20대 국회에 대한 평가를 노골적으로 상기시키며 밀어붙일 공산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주요 정책이 국회의 문턱에서 번번이 걸리자 “민생을 볼모로 잡고 있다”며 야권을 압박했었다. 문 대통령의 복심 윤건영 당선자는 “180석을 국민들이 주신 이유는 속도감 있게 실천적 대안들을 만들라는 데 우선 방점이 있다”고 했다. 코로나 국난극복에는 ‘신속함’이 요구된다는 점도 야당의 저항을 무디게 만드는 요인이다.
입법 우선순위의 바로미터는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기 100대 국정과제를 정하고 매년 이행상황을 점검해왔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국회의 입법에 가로막혀 추진이 멈춰있는 상태다. 코로나 사태가 잦아들고 제도적 여건이 갖춰지면 일거에 몰아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수위에 있는 것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다. 지상파에 비해 적었던 종편의 분담금은 이미 지상파 수준으로 높여놨고, 방송법 시행령 개정으로 종편을 유료방송사업자의 의무송출 대상에서 제외했다. 남은 것은 KBS와 MBC의 이사 및 사장 임명제도를 바꾸는 일인데, 입법에서 막혔다. 야당은 방송장악 의도라며 버텨왔지만 백척간두에 놓여있는 상황이다.
사립학교법 개정도 중요한 과제다. 정부는 그간 사학의 회계 투명성 강화와 족벌 경영 타파를 내세워 사립학교들을 압박해왔다. 지난 3년간 16개 주요 사립대에 종합감사를 실시했고 지난해 7월 시민감사관을 도입해 상시감시체계를 구축했다. 나아가 사립대 적립금의 공개범위를 확대하고 교직원과 학생이 기금운용심의회에 참여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사학들은 자율성을 제한해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조치라고 항변했지만, 정부의 의지를 꺾기 쉽지 않다.
이밖에도 전자투표제와 다중대표소송 등이 포함된 상법 개정안, 사익편취 규제대상 확대를 담은 공정거래법, 금융감독 대상을 넓힌 금융그룹통합감독법,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위상과 독립성 강화를 위한 원안위법 개정안 등 정부여당이 추진하겠다고 밝힌 입법과제가 적지 않다. 대부분은 ‘공공성’을 무기로 규제를 강화하고 정부의 역할을 키우는 일이다. 코로나 극복을 위해 민주당에 집중된 권력의 끝에 ‘빅브라더’가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