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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자에 동명이인까지…'깜깜이 계좌' 농협·기업銀 제재


입력 2019.07.01 06:00 수정 2019.07.01 05:54        부광우 기자

영업 현장서 금융거래 실명 확인 소홀 사례 무더기 적발

금감원, 과태료 부과 예고…20년 넘은 금융실명제 '표류'

영업 현장서 금융거래 실명 확인 소홀 사례 무더기 적발
금감원, 과태료 부과 예고…20년 넘은 금융실명제 '표류'


NH농협은행과 IBK기업은행이 영업 현장에서 금융거래 실명 확인을 철저히 하지 않아 제재를 받게 됐다.ⓒ데일리안


NH농협은행과 IBK기업은행이 영업 현장에서 금융거래 실명 확인을 철저히 하지 않아 제재를 받게 됐다. 이로 인해 이미 사망한 사람부터 심지어 엉뚱한 동명이인 명의의 계좌가 발급되는 등 웃지 못 할 해프닝들이 다수 벌어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실명제가 시행된 지 어느덧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일선 점포에서 이를 요식행위 정도로 여기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금융거래 실명 확인 의무를 위반한 농협은행과 기업은행에 대한 제재가 의결됐다. 금감원은 두 은행 기관과 관련 직원들을 금융위원회와 금융정보분석원에 과태료 부과 대상으로 통보하고, 우선 농협은행 19명과 기업은행 1명 등 총 20명의 직원들을 감봉 내지 주의 조치하도록 했다.

금감원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상 금융사는 고객의 계좌를 개설할 때 거래자의 실제 명의를 확인해야 함에도, 과거 농협·기업은행 점포에서 해당 절차가 제대로 수행되지 않은 경우가 상당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 대리인이 계좌 개설을 신청할 때 유효한 가족관계 확인 서류나 서명이 기재된 위임장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케이스들도 있었다.

위반 건수가 많았던 농협은행에서는 지점과 출장소, 지부 등 총 29개 점포에서 금융거래 실명 확인 의무를 어긴 사실이 적발됐다. 계좌를 개설하면서 고객 본인 서류를 확보하지 않거나, 대리인의 신청에 인정 불가 혹은 유효 기한 만료 서류로 절차를 대체하는 등 다양한 위반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금융거래 실명 확인이 허술하게 이뤄지면서 몇몇 지점에서는 이미 사망한 사람이나 아예 신청인과 다른 사람 이름으로 계좌가 발급되기도 했다. 농협은행의 한 지부는 통장을 대신 만들러 온 며느리가 제출한 가족관계증명서에 명의인의 사망 사실이 표시돼 있었음에도 그 이름으로 계좌를 열어줬던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른 지부에서는 고객으로부터 실명확인인증표를 받고도 전산 조작 실수로 동명이인 명의의 증권 계좌를 개설한 일도 있었다.

기업은행에서는 세 곳의 지점에서 금융거래 실명 확인 의무 위반이 확인됐다. 이들 지점은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나 배우자의 명의로 통장을 개설하러온 가족 대리인으로부터 발급일이 3개월 이상 지난 가족관계증명서만 받고 절차를 진행, 사망자 이름의 계좌를 만들어 줬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지적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일단 금감원이 내놓은 메시지라는데 있다. 금감원은 2015년부터 중단됐던 종합검사를 4년 만인 올해 다시 부활시킨 상태다. 종합검사는 금감원이 금융사들에게 내밀 수 있는 가장 강한 칼날이다. 금감원의 사소한 목소리에도 금융사들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아울러 이번에 덜미가 잡힌 사례들은 금융실명제가 현장에 아직도 깊게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금융거래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1993년부터 시행된 금융실명제는 올해로 벌써 26년째를 맞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도리어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실명제가 상당히 자리를 잡은 것도 사실이지만, 일부 점포에서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소액 계좌 개설 시 필요 서류를 임의로 간소화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나오는 등 현장의 경각심이 예전만 못한 측면도 있다"며 "올해부터 우리나라도 국제기구인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의 평가 대상이 되는 등 관련 규제 강화를 앞두고 은행들이 실태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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