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현 검사 "'미투 보도', 피해자를 성적 흥미 대상으로 소비"
미투 폭로 1년 소회 밝혀…"진실을 위해 모든 것 불살라야 하는 시대 끝나야"
미투 폭로 1년 소회 밝혀…"진실을 위해 모든 것 불살라야 하는 시대 끝나야"
1년 전 상사의 성추행 사실을 밝혀 한국 사회에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가 29일 "미투를 보도하는 많은 언론이 피해자를 성적 흥미 대상으로 소비하고, 사생활과 인권 침해에 앞장섰다"고 비판했다.
서 검사는 이날 더불어민주당이 개최한 '미투 1년, 지금까지의 변화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좌담회에서 미투 폭로 이후 △조직적 은폐 △2차 가해 △피해자다움에 대한 요구 △흥미 위주로 소비하는 언론 등으로부터 고통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언론이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거나 피해자를 보호하고 근본적 원인 해결을 찾아내 해결책을 발견해야 하지만, 거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며 "피해자를 성적 흥미 대상으로 소비하고 사생활 인권 침해에 앞장섰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의) '피해자다움'의 요구에 대해 언론의 책임이 크다"며 "부디 언론이 미투 보도를 하는 데 있어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 근본 원인 분석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서 검사는 공익제보 이후 1년 동안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밝혔다. 실제 성폭력 피해자 일부가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도 전했다.
그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을까, 아니면 성범죄를 방치하고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를 비난해온 공동체로 인해 입을 열지도 못하고 고통받으며 죽어간 것일까"라고 물으며 "진실과 정의를 말하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살라야 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제까지의 성범죄는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 집단적 범죄였고, 약자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홀로코스트였다고 생각한다"며 성범죄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을 재차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투 폭로 이후) 음모론부터 '정치하려 한다', '인간관계와 업무 능력에 문제가 있었다'는 2차 가해가 정의 수호기관인 검찰과 법무부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며 "제 인간관계와 업무 능력에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면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전문가 "비동의 간음죄, 성폭력 기본 요건으로"
성폭력 피해자 전수조사·인권특별조사단 등 요구도
이날 좌담회에는 서 검사뿐 아니라 각계 미투 운동 관계자들도 참석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문화예술계 미투 당사자인 연극배우 송원씨는 "정치권과 정부가 문화예술계 전반의 성폭력 사안에 많은 관심이 있지만, 지역 문화예술계는 또 다른 특수성이 있다"며 "지역의 폐쇄성과 학연·지연이 얽힌 가해 행위자의 두터운 이해관계, 공적지원금 독점 문제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쿨미투 집회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기획자인 양지혜 씨는 "학교 내 성폭력 문화가 만연해 있지만, 사법체계로 모두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용기를 냈던 학생들이 경찰 수사 결과조차 전달받지 못하는 상황은 고발자를 더욱 무기력하게 만든다"며 "성폭력 피해 전수조사와 성차별 교과과정 교정, 학생 인권 신장 등 학교 문화 바꾸기 등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젊은빙상인연대 권순천 코치는 "성폭력 피해의 경우 공통된 대목들이 많다. 가해자보다 피해자에 시선이 집중되고, 2차 보복의 위험이 크다. 저희도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만 솔직히 한계를 많이 느낀다"며 "운동선수가 운동선수답게 훈련장에서 원 없이 땀 흘리고 경기에 매진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인권특별조사단을 통해 좀 더 관심을 갖고 개선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호중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비동의 간음죄'를 성폭력의 가장 기본요건으로 만들었다. 성폭력은 성에 대해 가해지는 폭력이 아니라, 동의가 없음으로 만들어지는 왜곡된 성적 행동 그 자체가 폭력이란 인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번 미투 운동을 통해 권력 관계가 성폭력에 이용되는 메커니즘을 확인했다. 이제는 비동의 간음죄 신설과 함께 형법적 대응에선 권력 관계를 이용한 성폭력에 대한 근본적 처벌을 강화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며 "또 피해자 보호를 위해 신상 캐기나 악의적 정보를 인터넷에 유포할 경우 처벌하는 방안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법원은 피해자다움의 전형에서 벗어나 피해자의 목소리와 행동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법 해석을 해야 한다. 이것은 그동안 왜곡된 법이 구축한 폭력을 밑에서부터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했다.
또 국회에 발의된 미투 관련 150여 건 법안에 대해선 "비슷한 내용이 대부분이고 아무 문제의식 없이 가십거리 기사화하는 언론과 마찬가지로 대중 관심 어필하기 위해 오히려 부작용이 클 수 있는 이상한 입법 만든 경우도 꽤 있었다"고 지적하며 "국회에선 제대로 된 입법을 위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데 힘써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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