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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신념' 병역거부자 목소리 들어보니…"전쟁의 도구되기 싫다"


입력 2018.10.28 01:00 수정 2018.10.27 21:15        이배운 기자

“강한 군대와 평화는 무관…전쟁반대 실천적 행동 차원에 병역 거부”

“개인적 신념, 입증 매우 어려워…여호와의 증인 신도 외 난항 예상”

“강한 군대와 평화는 무관…전쟁반대 실천적 행동 차원에 병역 거부”
“개인적 신념, 입증 매우 어려워…여호와의 증인 신도 외 난항 예상”


서울지방병무청 제1병역판정검사장에서 병역판정대상자들이 자신들의 판정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자료사진) ⓒ연합뉴스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계기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종교적인 사유 외에 ‘개인적인 신념’을 사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병무청에 따르면 2013년~2017년간 발생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총 2699명이며 이 중 2684명(99.4%)은 ‘여호와의 증인’ 종교 신앙으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다. 나머지 15명은 기타 개인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다.

시민단체 '전쟁없는세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용석 씨(남·38)는 2005년 12월에 입영날짜를 앞두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그는 2006년 8월에 병역법 위반으로 구속돼 1년 6개월 실형을 살고 나왔다.

무교인 이 씨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사유를 ‘평화주의적 신념’이라고 했다. 그는 “전쟁은 평화를 해치고 군대는 그 전쟁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도구다. 그런 도구가 되기를 거부했다”며 “전쟁을 반대하는 실천적 행동으로써 병역을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이 씨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결심하게 된 배경은 다양하지만 2001년 국내 최초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오태양 씨의 사례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이 씨는 “그 이전에는 막연히 군대에 가기 싫다는 생각만 있었지만 오태양 씨의 선언을 보고 병역거부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쟁의 도구가 되는 것도 싫었지만 군대 자체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도 싫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구타를 당하고 또 누군가를 구타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거부감이 들었다”며 “군 조직에 속하면 내가 생각하는 가치를 지킬 수 없게 될 것이라는 판단에 병역거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전쟁없는세상

현재 이 씨가 알고 있는 개인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는 70명 가량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유도 다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에 따르면 이들은 ‘나는 농사짓는 사람인데 농사꾼이 낫질을 배워야지 왜 총질을 배우냐’, ‘성소수자로서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군대를 거부한다’, ‘패미니스트로서 군사주의에 저항한다’, ‘사회주의자로서 거부한다’, ‘동족인 북한에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 ‘폭력이 무섭고 견딜 수 없다 차라리 감옥이 낫다’ 등의 양심을 주장하고 있다. 불교·기독교·성공회 신앙에 기반한 병역거부자도 존재한다.

복무 중에 병역거부를 선언한 사례도 있다. 한 이등병은 ‘이라크 침략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의 일원임을 납득할 수 없다’며 병역거부를 선언했고, 한 전경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당시 ‘시민들을 강제 진압하라는 명령을 따를 수 없다’며 병역을 거부했다. 복무를 마친 뒤 병역거부를 선언해 예비군 훈련 참석을 두고 논란이 된 사례도 있다.

이 씨는 “병역을 거부한 이유들은 얼핏 보면 비슷한 면이 있는 듯 하지만 자세히 파고들수록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며 “반(反)전쟁, 반폭력, 종교적 이유만으로 단순화해 엮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6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대체복무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전쟁없는세상

대체복무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개인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신념(양심)’을 검증하는 방법을 두고 큰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교리 특성상 매우 엄격한 규율을 지켜야하고 정식 신도로 인정받는 과정도 까다롭다. 이는 양심을 객관적으로 평가·검증하는 잣대를 마련하는데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그러나 기타 개인적 신념을 주장하는 이들은 마음속의 양심을 객관적으로 입증할만한 수단·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 씨는 “제가 생각해도 개인적인 양심을 입증할 방법은 마련하기 어렵다”며 “대체복무제 시행 초창기에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 외에는 많은 분들이 심사에서 탈락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어 “재판부가 평화주의 및 반전 집회 참석 이력, 본인의 신념과 관련된 책에 대한 소감문 등의 제출을 요구한 사례가 있다”며 “다만 요즘 세계적인 추세는 심사를 까다롭게 하기 보다는 대체복무기간을 좀 더 길게 함으로써 불이익을 감수하는 사람은 양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앞으로도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활동을 지속해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씨는 양심적병역거부에 접근하는 방식을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가두는 것을 중단시키자는 인권적 차원의 접근, 또 하나는 강한 군사력을 추구하는 사회의식에 문제를 제기한다는 평화운동적 차원의 접근이다.

이 씨는 “전자의 문제는 어느정도 해소된 만큼 이제는 '평화를 지키는 방식이 꼭 총을 들고 무기를 사는 것이냐'는 문제제기에 집중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으로 강군이 진리처럼 얘기되고 있지만 사실은 별 연관이 없음이 드러나고 있다. 마치 신화(神話)와도 같다”며 “지금 당장 모든 국가들이 군을 해체한다는 목표는 아직은 비현실적일 수 있지만 점진적인 군축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고 이를 목표로 활동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배운 기자 (lbw@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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