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투자 발 묶인 보험업계 "골든타임 지나간다"
한도 규제 완화 소식에 해외 유가증권 비중 5년 새 3배↑
국회서 잠자는 개정안…금리 인상 바라보며 발만 '동동'
국내 보험사들의 해외투자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정부가 보험업계의 글로벌 투자 장벽을 낮추겠다는 소식에 국외 자산 보유를 한껏 늘렸지만 관련법 개정안이 최종 관문인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여기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금리 상승에 시간이 갈수록 투자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규제에 발이 묶여 자칫 해외투자 골든타임을 놓치게 될지 모른다는 보험업계의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16일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내 25개 생보사가 보유한 해외 유가증권 자산은 총 87조5721억원으로 전체 운용자산(648조4602억원) 대비 13.5%를 차지했다.
생보사들의 해외투자 비중은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려 왔다. 최근 5년 동안에만 3배 가까이 불어난 수치다. 2012년 말 운용자산 가운데 4.6%(19조8761억원) 정도였던 생보사들의 해외 유가증권 비율은 이후 ▲2013년 말 4.7%(21조9530억원) ▲2014년 말 6.1%(31조6912억원) ▲2015년 말 8.3%(47조8598억원) ▲2016년 말 12.5%(77조5901억원) 등을 기록했다.
이처럼 생보사들의 국외 투자 비중이 빠르게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수익률 개선에 있다. 저금리 기류가 장기화하면서 국내 투자만으로는 제대로 된 이익을 내기 힘들어지자 미국과 중국 등 그나마 나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대형 글로벌 자본시장으로 눈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당국이 해외투자 한도 규제를 풀 것이라는 전망에 이런 흐름에는 더욱 속도가 붙었다. 실제로 일반계정 자산 대비 해외 유가증권 비중 30% 이내 제한 규정 폐지를 담은 보험업법 개정안이 지난해 상반기 금융위원회를 거쳐 국무회의까지 통과하면서 보험업계 해외투자는 급물살을 탔다.
그런데 이 개정안은 아직도 국회에 막혀 있다. 빠른 처리가 가능할 것이란 기대와 달리 아직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도 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법안 통과 시점은 점점 예측하기 어려운 형국으로 흐르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해외투자를 크게 늘려 놓은 생보사들은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한화생명의 경우 지난해 11월 말 운용자산(84조3억원) 중 해외 유가증권 비중을 24.4%(20조4807억원)까지 끌어 올린 상태다. 현행 보험업법 아래서는 해외투자 확대 여력이 5% 정도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이밖에 동양생명(22.3%)과 처브라이프생명(22.3%), 미래에셋생명(21.5%), 현대라이프생명(21.0%), KDB생명(20.5%), NH농협생명(20.4%), 교보생명(20.0%) 등도 운용자산 대비 해외 유가증권 비율이 20%를 넘기고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글로벌 금리가 상승기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이미 지난해 세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총 0.75%포인트 인상했고, 올해 추가로 3회 내지 최대 4회 더 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규제에 막혀 당장 해외투자를 더 늘리기 힘든 보험사들에게 이 같은 최근의 흐름은 답답함을 키우는 대목이다. 저금리 시기보다는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중 금리 인상은 통상 자산운용에 호재로 평가되지만, 이는 적시에 투자가 이뤄졌을 때의 얘기다. 금리가 올라갈수록 자금 조달과 자산 투자에 드는 비용도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즉, 금리가 더 오르기 전 조금이라도 빨리 투자에 나서야 차익을 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보험사의 수익률 정체는 달갑지 않은 요소다. 가입자들로부터 받은 돈을 잘 운용해 추후 보험금을 지급하는 보험사업의 기본 틀을 고려하면 보험사의 투자 수익률이 나쁠수록 고객에게 전가되는 보험료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반면 보험사의 자산운용 성과 개선은 가입자 보험료 완화의 배경이 될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2015년 보험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율화 조치가 나왔을 때부터 해외투자 규제 완화는 보험업계에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고, 이에 맞춰 보험사들도 자산운용 포트폴리오를 조정해 왔다"며 "그런데 예측보다 국회 통과가 지연되면서 해외 투자 한도에 다다른 보험사들만 난감한 처지가 됐고, 더욱이 금리까지 오르면서 투자시기를 놓칠까 염려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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