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은행-한일은행 출신간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 지속돼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등도 통합이후 내부 갈등 잠재
상업은행-한일은행 출신간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 지속돼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등도 통합이후 내부 갈등 잠재
내년이면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병한지 20년이 되지만 여전히 완전한 통합의 길은 멀어보인다. 채용비리 문제가 우리은행 전체를 뒤흔들면서 내부적으로 곪아있던 계파간 갈등이 수면위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지난 2일 전격 사퇴한 배경에는 특혜채용 의혹에 대한 책임이라기 보다 내부적으로 뿌리 깊은 상업은행과 한일은행간 계파 갈등 때문이다.
20년전 외환위기로 정부가 부실은행을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 상업은행은 1998년에 한일은행과 합병하면서 한빛은행이 됐다. 이후에 경남은행과 광주은행, 평화은행을 추가로 편입하면서 우리금융지주로 새롭게 탈바꿈했다. 이후에도 민영화를 추진한 끝에 과점주주 매각 방식으로 지금의 우리은행 체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20여년이 되도 옛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출신간의 힘겨루기는 여전히 팽팽히 맞서는 분위기다.
98년 대듭합병 이후 상업-한일은행 출신간 힘겨루기 팽팽
98년 당시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흡수 통합이 아닌 대등 합병으로 임원 인사때마다 출신 은행들을 고루 안배해왔다. 현재 이광구 행장을 포함한 우리은행 본점 임원 25명 중 가운데 오정식 상임감사위원(옛 씨티은행 부행장과 KB캐피탈 사장 역임)을 제외하면 옛 상업은행 출신은 총 13명이고, 옛 한일은행 출신은 11명이다.
은행장도 상업은행 출신과 한일은행 출신이 번갈아하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졌다. 그러나 이순우 전 행장에 이어 이광구 행장까지 상업은행 출신이 잇따라 행장을 맡으며서 한일은행 출신들의 불만이 커진 상황이었다.
이번 채용과 관련된 내부문건을 보면 공교롭게도 특혜채용 청탁자들이 전부 상업은행 출신들이라는 점이다. 이번 문건과 관련해 한일은행 출신의 전직 임원이 국회에 제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이번 채용 청탁 여파로 직위해제된 남기명 부행장을 비롯한 두명의 인사 모두 상업은행 출신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에서는 차기 행장자리에 한일은행 출신이 올라가기 위한 노림수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우리은행은 인사때마다 출신을 따지는 관례 때문에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출신의 화학적 통합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실제 임원 인사 때 상업과 한일은행 임원 동수를 구성하는 것이 관례화됐다. 오히려 이런 방식이 우리은행의 지배구조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때문에 이 행장이 사상 최대 실적달성과 민영화를 성공시킨 장본인임에도 지주사 전환 이후에 지주회장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공공연히 밝힌 것이라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오히려 이러한 계파간 갈등의 최대 피해자는 합병 이후 신입 행원으로 들어온 직원들이 중간간부가 될때까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상 시중은행들은 여러 은행들 간의 인수합병이라는 태생적 취약점을 가지고 있을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갈등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조직내 통합이 사실상 힘들다"고 말했다.
은행간 인수합병에 따른 부작용 잇따라…내부 인사 제도화 정착 필요
하지만 이러한 출신 은행간의 잠재된 갈등은 우리은행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금융권 전반의 견해다. KB국민은행도 옛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출신간의 자리 안배 인사 문제가 잠재해 있었다.
하지만 옛 장기신용은행 출신의 허인 국민은행장 내정자가 이번 임원인사 안배를 어떻게 할지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오히려 그간의 계파간의 미묘한 경쟁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KEB하나은행의 경우 2015년에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통합 이후 갈등을 잠재울 통합 시너지가 어떻게 나타날지가 최대 관심사로 급부상하고 있다. 실제 하나와 외환 출신 노조위원장이 공동으로 노조를 구성하는 등 화학적 통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직급체계 등도 여전히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들이 지배구조 문제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임원인사나 CEO를 외부의 검증기관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며 "CEO에 쏠려있는 힘을 분산시키고 인사제도를 투명화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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